인간이 인간보다 낮은 수준의 존재가 되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인간이 인간보다 높은 수준의 존재가 되는 방법은 단 하나도 없다.
인류는 한계를 넘어서 진화할 수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고 한계에 머무른다.
인간이 한계를 넘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자신만의 허상의 한계를 만들고 그걸 뛰어넘는 것뿐이다.
돌파할 수 없는 한계가 있기에 난 그 범주 아래의 존재를 인간이라 부른다.
인간으로서 자신과 같은 레벨의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보통 인간의 수명은 반려동물보다 길기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간은 새끼일 때부터 그 동물을 키워내면서 그 동물의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지켜보고 함께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그 한 개체를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이해를 확장하여 그 종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곤충으로 실험할 때 실험 대상이 될 곤충을 선정하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생물학적 특성을 확인한다. 초파리처럼 유전자 연구가 잘 된 모델이 적합하다. 그다음으로 번식과 유지의 용이성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윤리적 측면이나 비용과 접근 용이성을 확인한다.
이렇게 그 종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상태에서 실험이 진행되었을 때 비로소 그 종의 생물학적 이해가 시작된다. 수많은 초파리에 대한 실험이 진행되어 왔지만, 아직 인간은 초파리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태이다. 하물며 초파리처럼 강력한 조건의 실험을 진행할 수도 없고 비슷한 수명을 공유하며 비슷한 레벨의 인간을 어떻게 서로 이해할 수 있을까.
어렵겠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주어진 정보들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인간들이 누가 진행하는지 모를, 언제 시작했고 언제 끝나는지 모를 실험에 이미 참여 되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실험의 결과와 과정들이 상세하게 적혀있는 역사라는 것이 있다. 그 역사에 대해서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일단 존재한다. 그 역사를 알고 이해하는 게 인류와 인간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로는 과거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분명 아쉽게 느껴진다. 인간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개개인의 사고력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떤 방식의 사고가 인간을 이해하기 용이할까.
요즘 들어서 인간은 못하면 짐승, 잘해야 인간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게 됐다. 처음에는 내가 인간보다 높은 수준의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타인을 이해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 끝인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았다. 높은 존재가 되어 넓게 내려 볼 수 없다면 같은 높이에서 넓게 펼쳐져 보는 방법이 있다. 바로 스스로를 하나라고 단정 짓지 않는 것이다. 한 곳의 하나가 아닌 넓게 펼쳐져 이곳저곳의 여럿이 되는 게 높은 곳에서 내려보는 것과 가장 비슷한 효과를 주지 않을까.
회피하자는 말이 아니다. 기억과 책임은 공유하되,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다양성을 지니자는 것이다. 여러 가지를 지닌 하나가 아닌, 실제로 여럿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연계성을 지닌다. 어제의 내가 그랬으니, 오늘의 나도 그렇게 하고 내일의 나 역시 그렇게 할 것이라는 연계성. 그게 자연스럽긴 하다만, 자연스럽다는 의미는 내게 틀에 박혔다는 뜻이다.
주체를 잃자는 말이 아니다. 스스로 누군지 명확하게 이해하는 게 먼저고 그 존재가 어떤 변화에도 휩쓸리지 않는 상태가 되었을 때, 다양성이라는 우주에 뛰어들자는 것이다.
주체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신념이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 신념이란 강한 믿음, 스스로 무엇을 믿을지 정할 수 있을 만큼의 판단력 또한 필요하다. 판단력에는 경험의 시간과 지식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이미 있는 걸 믿기 싫다면 새로운 믿음을 만들 창의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믿음이 옳은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의심이 필요하다. 그 이후 그 의심에 걸러져 남은 믿음이 있다면 그게 바로 당신의 신념이다.
신념은 절대적이지 않은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자주 바뀌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번 정한 신념을 오랫동안 믿는 만큼 주체의 형태가 선명해질 것이다.
뭐, 평소보다 길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그거다.
먼저 자신이 누군지 명확하게 이해한 뒤, 한 곳에 국한되지 않고 스스로를 여럿으로 나눠 감각을 여기저기 펼쳐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발전의 방식이고 이 방식이 인간보다 높은 존재가 될 수 없는 인간으로서 비슷한 레벨의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