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네마 Nema /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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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

'망할, 망할...'

뒤늦게 뒤풀이 파티장에 도착한 남자가 정장의 소매로 이마의 땀을 찍어내며 마키스를 급히 찾는데, 가슴팍에 버젓이 꽂혀 있는 손수건은 잠시 잊은 듯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다시 확인해 보지만 여전히 묵묵부답.

'하, 이 녀석아, 한 시간에 한 번 정도는 확인해라.'

앞에 지나가는 웨이터를 잠시 멈춰 세우고 트레이 속 랍스터 카나페 하나를 집어 입속에 바로 넣었다.

‘오.’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맛에 웨이터가 떠나기 전, 서둘러 양손에 하나씩 쟁여 든다. 스트레스와 함께 카나페를 씹어 넘기며 잔뜩 찡그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천장을 올려보는데, 셀 수 없이 많은 샹들리에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밝게 내리쬐어 짜증이 난다.

2,500명 규모의 파티장에서 연락도 되지 않는 사람 하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오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은 찾아야 할 사람이 이 파티의 주인공인 만큼 비교적 찾기 수월할 것이라는 기대다.

'분명 눈에 띄는 곳에 있을 텐데...'

시간이 없다. 미어캣처럼 턱을 위로 쭉 들어 올린 채 까치발을 하고 사방을 둘러보지만 그렇게 크지 못한 키에 이런 식으로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망할, 차라리 높은 곳에서 찾아야겠어.'

로비의 중앙 계단을 한 단씩 오르며 아래층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3층에 다다를 때쯤... 찾았다! 저기 2층 피아노 옆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 잔잔한 클래식 연주는 점잖은 드레스와 양복을 갖춰 입은 많은 사람을 감싸고, 그들 가운데 샹들리에의 은은한 불빛을 입은 마키스가 화려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을 축하해 주는 사람들에게 답례 인사를 보내고 있는 저 남자가 바로 이번 휴토상의 수상자, 마키스 아크멕(Makis Akmec)이다. 감히 세계 최고의 상이라 부를 수 있는 휴토상을 수상받은 마키스는 10년 동안 만날 사람보다도 더 많은 사람을 한 번에 만나고 있었다.

'허, 저 녀석, 꽤나 즐기고 있구만.'

그는 네마의 일원이며 AI 과학자이자 아르티아(Artia) AI연구소의 연구소장으로서 혁신적인 AI의 설계와 AI 교육이론 등을 통해, 전 세계의 AI 성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큰 공로를 인정받아 휴토상을 수상받게 되었다.

"잠시만요, 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 지나갈게요."

3층에서부터 2층까지 달려온 텔레스트 레오겔(Telest Reogell)은 마키스에게 다가갈수록 점점 두터워지는 인파에 지쳐갔고 결국 잠시 숨을 고른다.

'뭐가 이렇게 많아, 살을 빼든가 해야지.'

텔레스트는 자신에게 밀쳐져 인상을 쓰는 사람들을 외면한 채, 사람 사이를 뚫고 뚫어 마키스에게 접근한다.

'미안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어요. 이게... 마키스 등 맞겠지?'

사람 사이로 비집어 뻗은 오른손으로 한 남성의 등을 쿡쿡 찌른다.

"마키스, 마키스, 잠깐 따라와, 할 이야기가 있어."

등의 찔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친근한 얼굴이 보여 하마터면 웃을뻔했지만, 이내 마키스는 반가운 마음을 밀어내고 그의 눈을 가볍게 쏘아붙인다.

"어, 형, 왔었구나, 왜 이제서야 오는..."

마키스에게 친한 사람을 나열하라고 했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가까운 형이기에 가장 먼저 축하해 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대기실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시상식장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으며 뒤풀이 파티장에서조차 이렇게 늦게 나타난 것도 모자라서 만나자마자 축하한다는 말도 없었던 이 상황에서 마키스는 썩 유쾌하진 못했다.

'이 형 뭔가 이상한데?'

유쾌하지 못했던 기분에 가려져 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를 자세히 바라보니, 늘 단정하고 멋들어졌던 턱수염이 정돈되지 않은 채, 흘리고 있는 식은땀이 눈에 들어온다.

"안색이 안 좋아, 혹시 무슨 일 있어?"

식은땀을 한 번 더 찍어낸 텔레스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공중에 휘휘 저으며 따라 나오라는 몸짓을 취한다.

'갑자기, 이게 무슨...?'

텔레스트는 그나마 남아있던 조금의 매너까지 전부 내려놓고 일급 경호원처럼 한층 더 공격적으로 무리 속에 파고들었다. 그가 인파를 갈라내며 길을 터 냈고, 마키스는 대화 중이던 상대에게 양해를 구한 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를 따라간다.

사람을 피하고 피해서 돌고 돌다가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문 4층까지 올라가게 된 텔레스트는 서랍을 터는 강도처럼 외부 발코니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낸 후 마키스에게 손짓한다.

"마키스, 여기로."

마키스는 자신에게 대화를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정중히 거절을 표하며 텔레스트가 터놓은 길을 따라 발코니 안으로 들어왔고, 발코니 안으로 들어온 뒤에도 이리저리 둘러보며 둘 이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텔레스트는 발코니의 유리문을 닫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하아아, 드디어... 좋아. 마키스, 일단 휴토상 축하한다."

"고마...워,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텔레스트는 발코니의 문이 유리로 되어있는 게 신경이 쓰였는지, 힐끔힐끔 뒤를 확인해 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예전에 우리 연구소의 차기 소장이 될 수도 있을 정도로 유망한 친구가 들어왔었다고 말했던 것 기억나?"

텔레스트 역시 마키스와 같은 네마이며, 천체물리학자이자 시무스(Siimus) 천체물리학 연구소의 연구소장이다. 그리고 네마란 Next Maker의 줄임말인 Nema로, 세계 연맹 토파이오로부터 인류의 다음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인간이라고 인정받은 자에게 부여되는 칭호다.

"음..."

"그 있잖아, 내가 아끼는 후배."

마키스는 자신의 뇌 속을 들여다보듯 눈알을 굴리며 기억을 찾아냈다.

"아아, 그 사람? 기억하지, 그때 형이 드디어 연구소에 들어왔다고 막 신나서 얘기해 줬잖아."

담배에 취하지 않고는 꺼내기 힘든 이야기인지, 텔레스트는 정장 안주머니에서 담배케이스를 꺼내 담배 하나를 물고, 마키스에게도 하나를 건넨다.

"형? 딸 낳고 금연했었잖아, 왜 다시..."

텔레스트가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를 켜는 순간, 어둠 속의 라이터 불은 밝은 조명으로 가득한 파티장에서 알아챌 수 없었던 그의 그림자를 얼굴에 드러나게 했는데, 시체의 눈을 박아놓은 듯한 그의 죽은 눈이 마키스를 순식간에 납득시켰다.

연기와 함께 조금의 불안을 뱉어낸 텔레스트가 이어서 말한다.

"그 친구가 오래전부터 연구해 온 천체물리학 방정식이 있는데, 처음에는 빈틈투성이였지만 점점 좋아졌고 지금은 나도 인정하는 방정식이야. 뭐, 내가 많이 도와주긴 했지만."

쓴웃음과 함께 텔레스트는 한층 더 무거워진 목소리로, 떨리는 불안감을 눌러가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두 달 전에 우리 연구소에서 분해능이 월등한 우주 망원경을 새로 올렸고 더 많은 관측 데이터를 얻어낼 수 있게 됐거든."

"어, 그 소식은 들었어, 역사상 최고 성능이라며."

어느새 마키스도 담배에 불을 붙였고, 텔레스트의 말에 집중한다.

"새로 올린 우주 망원경으로 어딜 관측할지 고민하다가 오래전부터 데이터상으로 분석했을 때 아주 이상하고 신기했던 XTG8873이라는 구역을 관측하기로 했었어."

텔레스트는 눈을 감고 한숨을 푹 내쉰다.

"결국, 그곳을 정밀하게 관측해 내는 데 성공했고 이전에 얻을 수 없었던 방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는데, 문제는 도출해 낸 모든 데이터 값을 아까 말한 방정식에 넣어봤더니..."

텔레스트가 구역질을 참으려는 듯 침을 연신 삼키며 말을 뱉지 못하자, 마키스는 떨고 있는 어깨에 왼손을 얹으며 차분히 눈을 응시했고, 그제야 텔레스트는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간다.

"거대한 블랙홀 하나에 쌍성계를 이루는 두 개의 중성자별이 끌려간다는 결과가 나왔어... 마키스, 약 10개월 정도 후에 감마선 폭발[GRB(Gamma Ray Burst)]이 일어날 거야."

텔레스트의 어깨 위에 얹혀 있던 마키스의 손이 힘없이 떨어진다.

"단순히 보기에는 아주 먼 미래에 발생할 것처럼 보이지만, 방정식을 통해 시간 계산을 해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308일 후에 발생할 게 분명해. 여기서 문제는 그 광선이 지구에 도달할 확률이 0%가 아니라는 거야. 심지어 몇 주 전에 계산한 결과값보다 값이 더 컸졌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커질 거야."

텔레스트는 마치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가 자신에게 일어났던 잊고 싶은 기억을 세세하게 떠올리며 증언하는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건, 이건 이제껏 인류가 관측한 모든 감마선 폭발 중에서도 미친 듯한 규모이야. 하필이면 거짓말처럼 회전축이 우릴, 태양계를 향하고 있어... 내가 이걸 믿을 것 같아?"

아직도 짙게 남아있는 강한 충격에 텔레스트는 잠시 실성이라도 한 듯, 사실을 말하는 동시에 그 사실을 부정하려 한다.

"형, 연맹에는... 보고한 거지?"

"... 아니."

"아예 알릴 생각이 없어 보이네."

대답 대신 연기를 뱉는 텔레스트.

마키스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얇게 뜬 눈으로 그를 압박한다.

"잠깐만, 그렇게되면... 아니, 애초에 지금 형이 나한테 말하는 것 자체가 연맹법 위반이잖..."

"연맹법? 마키스, 하..."

텔레스트는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에 빨간 자국이 선명하게 생길 정도로 목을 벅벅 긁어댄다.

"마키스, 10개월 뒤에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확정적으로 죽게 됐는데, 지금 연맹법 따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몰랐던 마키스는 입을 한껏 오므리며 고개를 살짝 돌린다.

'모든 생물이 확정적으로 죽는다고? 그 정도였던 거야?'

마키스도 대답 대신 연기를 뱉는다.

"잘 들어, 이건 미리 알고 있다고 해서, 인류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레벨이 절대 아니야, 제아무리 토파이오라 하더라도 별수 없어."

텔레스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얼마나 힘을 줘서 흔들던지, 그의 단발 곱슬머리가 용수철처럼 튕기며 탄성을 자랑한다.

"외부에 알려지면 오히려 사회에 혼란만 더 가중시킬 거야."

마키스도 텔레스트도 자신들의 행동이 연맹법 위반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텔레스트가 꺼낸 내용은 연맹법보다 무거웠기에, 마키스는 이에 대해서 더 이상 잘잘못을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래, 그래서 확실한 거야? 형의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혹시 장비의 결함이라던지..."

텔레스트는 몇 가지의 감정이 섞여 만들어진 허탈한 헛웃음을 내보인다.

"허, 그래, 말 잘했다, 처음에는 나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고, 발견한 지 몇 주가 지나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사실을 인정하게 된 거야. 새로운 우주 망원경을 올리고 나서 최초로 얻게 된 데이터가 인류의 종말을 나타내는 걸 내가 믿을 수가... 그래서 감마선 폭발의 위협을 처음 발견한 날부터 어제까지 수백 번도 넘게 확인했다고."

텔레스트의 얼굴이 구겨지면서, 그동안 쌓인 공포와 불안과 슬픔과 무력감이 뒤섞이며 터져 나온다.

"망할 장비에 결함 검사도 다시 했고, 망할 사진을 다시 찍기도 했고, 망할 방정식에 오류 검사도 다시 했고, 망할 계산도 다시 해 봤어."

감기지 않은 채 동그랗게 떠져 있는 텔레스트의 왼쪽 눈에서 결국 눈물이 흘러내렸는데, 그의 눈물이 직선으로 흐르지 않을 정도로 그는 얼굴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랬는데도 모든 결과값이 완벽하게 같았어. 마키스, 나는 말이야, 연맹에 감금되다시피 잡혀서 계속 결과값 계산만 보고하다가 죽긴 싫어. 인류가 종말한다는 망할 결과값을 두 번 다신 보고 싶지 않다고!"

혹여 누가 듣게 될 것을 의식한 텔레스트는 큰 소리로 말하지 못했지만, 치아가 떨어지지 않고 낼 수 있는 가장 큰 외침이었다.

"나,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 앞으로 내 모든 시간은 가족이랑 보낼 거야. 어제와 오늘처럼 혼란 없는 평화로운 세상 속에서 내일도 그저 모르는 듯이 살다가..."

그는 담배를 놓친 손으로 눈물을 훔쳐내더니, 이내 떨군 고개를 들어 마키스의 눈을 무섭게 노려본다.

'왜...?'

마키스는 텔레스트의 눈빛에 밀려 고개를 뒤로 내뺀다.

"마키스, 방금 말했듯이 이건 인류가 어떻게 대응해 볼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야."

마키스는 텔레스트의 감정에 압도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에도 지금 너에게 말하는 이유는, 너라면... 너의 AI라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이야."

"아..."

텔레스트는 자신의 모든 마음을 담아내어 간절하게 마키스를 바라봤고, 마키스는 그의 눈빛으로 전달된 무거운 기대를 분명하게 인지했다. 그는 한동안 허공을 뚜렷이 바라보며 깊이 생각한 후 대답한다.

"형, 일단 모든 데이터와 아까 말한 방정식을 바로 보내주고, 새로운 결과값이 나올 때마다 계속해서 알려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책을 찾아볼게."

텔레스트는 어둠 속에서 한 줄기의 희망을 확인한 듯,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고마워, 고맙다, 바로 보낼게."

대화가 끝나고 마키스는 가벼운 목인사를 하며 발코니 밖으로 나가려는데, 텔레스트가 그의 오른팔을 낚아채듯 붙잡는다.

"깜짝이야, 왜?"

"절대... 절대로 이 얘기가 외부에 유출돼서는 안 된다. 사회는 물론, 연맹에도. 종말 이전에 전쟁과 혼란으로 세계가 붕괴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