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세계 하에서의 선과 악
현대 사회에서의 선과 악에 대해 이야기하다.
한국은 500년 넘게 성리학 국가였다. 성리학에서는 성선설을 기반으로 하여 사람의 본성을 수양을 통해 성선 한 존재로 변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 하에 우리나라는 식민지 시대를 거치게 되었고, 그 후에 산업 자본주의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리학적 '선과 악'의 영역은 여전히 우리나라 사회와 문화의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본주의에서 추구하는 '이기성'과 이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선과 악'의 개념은 모순을 이룸으로써 아직도 많은 사회에 문제가 되고 있다. 오늘은 이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1. 자본주의에서의 이기성
사전적 의미의 자본주의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두고 이윤 획득을 위해 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경제체제.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그렇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는 개인의 사유권을 인정한다. 사유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개인이 자신이 생산한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존재로 삶을 영위한다는 인간의 '이기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가장 유명한 사회주의자인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특징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였다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상품 생산이 이루어진다는 점, 노동력이 상품화된다는 점, 생산이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자본주의에대한 대안을 마련하고자한 마르크스위의 3가지 특징에서 당시 인간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점은 개인적으로 노동력이 상품화된다는 점을 들고 싶다. 인간의 욕구를 최대로 긍정하고 그를 위한 생산력을 갖추기 위한 기계를 발명하는 것을 중시하던 산업시대, 인간 또한 자본의 하나로써 작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권유린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 것을 무마하기 위해 사회주의가 등장하였다. 사회주의는 초창기에는 공상적 사회주의 단계로서 공동체적 집단 사회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마르크스 이후 체계적인 사회주의 체계를 위한 국가적 단계의 사회주의를 추구하고자 하였고 이는 레닌 시기에 더 정비되어 소비에트 연합정부로서 실현되었다.
독재자 스탈린의 존립 자체가 공산주의 이념에 모순되었다 하지만 스탈린 시대를 거치면서 이는 일당 독재로 이어지게 되었고 개인의 욕구를 통제하고 철저하게 국가의 계획하에 생산과 분배를 통제한다는 계획 경제는 2차 세계대전 하에 스탈린의 독재로 인해서 철저하게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2차 대전 후 미국과 소련 간의 군비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소련은 생산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압력을 넣기 시작했고, 결국 마르크스가 주장한 '세계의 모든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는 문구의 의미가 점차 약화되면서 위성국들이 독립하고 89년 소련이 무너짐으로써 사회주의는 실패하게 되었다.
철거되는 레닌동상하지만 그 사회주의와 체제 경쟁 과정에서 자본주의 또한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고 29년 경제공황, 그리고 45년 냉전체제하에서의 군비경쟁 과정에서 사회주의 체제하의 계획경제 및 분배 시스템을 차용하여 '수정자본주의'란 새로운 사상 세계를 만들게 되었고 이는 현재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물론 시장의 자율성과 분배의 정도의 차이는 시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국가의 개입이란 수정자본주의의 큰 틀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2. 성리학에서의 선과 악
성리학에서 처음부터 인간의 욕구를 부정하였던 것은 아니도. 오히려 정도전의 불씨잡변에서는 불교에 대해 비판할 때, 불교가 인간의 성 안에 있는 '심', '정' 중에 심만을 택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모두 포괄하지 못했다고 비판하였고, 이 심, 정을 포괄한 성의 개념을 강조하여 인간 욕구를 어느정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도전의 이러한 뜻을 기반으로 해서 만든 조선은 초창기 세종 조를 비롯해서 과학기술에 지대한 역량을 발휘함으로써 건실한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회가 황폐화되고 신분제가 해이해지자, 조선의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신분제가 몰락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성리학을 교조화시킴으로써 신분제 해체란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인간의 욕에 해당하는 과학 기술, 신분 상승 욕구, 상업을 억압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호락논쟁이다.
호락논쟁이란 서울 노론과 경기 노론 간에 인성, 물성을 두고 한 논쟁이다. 이는 인성과 물성이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논쟁으로서 인, 물성이 같다고 주장한 이 들을 호론, 일, 물성이 다르다고 주장한 이 들을 낙론이라 한다.
낙론의 대표주자였던 이간의 집낙론은 당시 이간을 대표로 한 서울 노론들이 주도하였고, 호론은 한원진을 대표로 한 경기 노론들이 주도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인성과 물성이 무엇을 비유하냐는 것이다. 인성은 성리학을 의미하고 그 성리학 사회를 주도하는 양반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인문 지식을 말하고 그를 추구하고자 하는 조선 사회를 의미하고자 한다. 그에 반면 물성은 성리학 이외의 모든 학문(서학)을 의미한다. 그리고 양반 이외의 모든 상민 계층, 중인들을 의미하며 과학기술을 의미하며, 조선이 적대시하는 청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인물성동론을 주장하고 과학기술 및 청문화 수용을 주장한 낙론은 실학으로 계승되었고,
호론의 대표주자 한원진의 사진인물성 이론을 주장한 이들은 후에 위정척사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문제는 결국 대다수의 사대부들은 인물성 이론을 주장함으로써 주체적으로 서양 문화를 받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지게 되었고 조선의 마지막 등불이자 인물 성동론적 사고방식을 갖춘 많은 실학자들을 등용하여 개혁을 추구하던 정조대왕의 승하를 끝으로 조선은 완전히 도태된 국가가 되고 만다. 그러고 나서 조선은 개항 이후 무기력하게 일제의 식민지가 되게 되었다. 그 식민지 하에서도 양반 지주들은 일제로부터 은사금 등을 지원받음으로써 향촌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실제로 갑오개혁은 폐지되었지만 신분제가 향촌 내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었다고 한다.
3. 자본주의 단계에서의 성리학과 자본주의적 이기성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주체적으로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국가가 아니다. 그리고 식민지를 거치면서 제대로 일제 문화를 청산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청산되어야 했었던 성리학적인 문화가 잔존하고 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미국의 원조경제를 통해서 발전하게 되었지만 박정희 정부 들어서 차관 경제를 통해 성장하게 되었다. 차관을 받은 한국 정부는 만주 또는 소련의 계획 경제 이념을 차용하여 1,2차 경제 걔발계획과 3,4차 경제 걔발 계획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전두환 전권에서 이를 이양받아 유지하여 지금의 경제 수준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연 성리학적 선과 악의 개념과 자본주의적 이기성은 어떻게 변모하였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엄연히 자본주의 국가이다. 자본가가 있고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구매하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 노동자를 고용한다. 노동자는 일을 하고 월급을 받음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형태로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가 지배권을 갖는다. 자본주의 핵심은 생산 수단이고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자본주의는 하나 더가 추가된다. 이 자본가가 선과 악의 개념에서 선에 해당하게 된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경제적 우위성을 갖춤과 동시에 도덕적 우위성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경제적 우위성은 도덕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한국의 재벌들은 성장과정에서 정경유착 과정에서 성장하였고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대우를 통해 성장했기에 도덕성에서는 굉장히 거리가 있었던 상황이지만 위와 같은 문화환경이었기에 그 누구도 성리학적 도덕성과 경제적 우위성을 갖춘 자본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었다. 1970년대 열악한 노동환경 14시간이 넘는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하는 소녀 공들의 모습을 보다 참지 못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란 말을 했던 전태일 열사는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수 없는 상황에 절규하며 자신의 몸을 불살라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너무도 굳건한 한국식 자본주의의 영향 때문이었다.
즉 한국식 자본주의는 경제적 우위가 도덕적 우위를 갖는다는 개념을 가지며 강력함을 행사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 사회 2022년. 지금도 여전히 한국형 자본주의는 강세를 발휘하고 있다. 돈이 있는 자들에 대한 사법 재판부의 관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너무 많은 사례가 있기 때문에 더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4. 진짜 하고 싶은 말
이제 우리는 강대국이다. 성장할 만큼 성장하였고 세계 군사력 6위에 무역 수출 규모 9위에 해당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문화적으로는한국형자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선과 악의 개념과 이기성은 양립하기 참 힘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공연하게 선과 악의 개념을 남용하기도 한다. 너무나 슬프게도 경쟁 사회 속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선택받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그 경쟁 속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어떤 경우, 이 것에 대해서 선택받지 못한 나를 '선'이라 칭하고 선택받은 사람들에 대해 '악'이라 칭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사실 이 것은 슬프지만 나의 자존감을 약화시키는 상황만 나올 뿐이다. 너무도 슬프다. 맞다 사회 구조의 모순도 있고 너무나 많은 요인으로 나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슬프다. 하지만 이러한 자본주의적 경쟁 시스템 하에서의 경쟁에서 '선과 악'으로 구분하여 사람을 나누고 사회를 바라보는 것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병들게 할 수도 있는 요인이다. 그러므로 일단 혹시 그 경쟁 구도에서 졌다고 해도 당신은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다. 당신은 그저 당신일 뿐이다. 그리고 그 당신은 오로지 당신만이 케어해 줄 수 있다. 세상 유일무이한 당신이란 존재에게 선과 악과 같은 그 어떤 프레임도 씌우지 않길 바란다. 당신은 존재만으로도 정말로 존귀한 자니까. 동시에 상대도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다만 그 시험 조건에 유리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이일뿐이다. 그 시험 조건에 맞을 뿐이지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도 아니고 그냥 사람일 뿐이다. 그 들에게도 프레임을 씌우지 않길 바란다. (당연 사회 부조리, 인맥 등을 통해서 올라오는 경우는 제외다)
사실은 이 글을 쓰기 이전에 수많은 혐오 글을 보고 오는 중이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상대 집단에 대한 주홍글씨들에 대해서 참 슬프게 생각한다. 혐오에 대한 혐오는 결국 혐오로 끝날뿐이다. 그리고 혐오하고 있는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구조로 마무리 된다. 그러한 슬픈 시스템이 유지되질 않길 바란다. 당신은 소중한 존재이니 부디 프레임에서 벗어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