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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소년 Mar 28. 2024

건국전쟁에서 말하지 않는 이야기 2번째

역대급 무능을 보여준 국민방위군 사건


4번째 이야기다 오늘은 625전쟁을 이끄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두가지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2010년 후반, 박근혜 정부시기 어떤 한 국방부 장관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현재 방산비리는 생계형 방산비리다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 



한민구 국방부 장관 “방산비리는 생계형 비리?” - 고발뉴스닷컴 (gobalnews.com)


내가 기억하는 방산비리 행위자 중 최고의 멘트라고 생각하는데, 역대급 방산비리는 따로 있었다. 


바로 오늘 소개할 국민방위군 사건이다. 




1.배경

중공군의 개입( 출처: 위키백과)


때는 중공군이 개입했던 시기, 이승만 정권에서는 전쟁을 주체적으로 끝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신설부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50년 12월 21일 국민방위군 설치법이 개설되었고, 17세 이상부터 40세에 이르는 남성에 대해서 응모를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약 50만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들을 수용, 훈련 할 장소로 경상도 일원에 51개의 교육대를 설치하였다. 간부는 대체로 대한청년단의 사람들로 임명하였고, 이 과정에서 대한청년단의 김윤근은 준장으로 고속 승진하게 된다. 



2. 경과

국민방위군 입대를 기다리는 청년들(출처: 위키백과)


중공군의 공세가 계속 되었고, 서울이 점령당하는 등 위협이 계속되자, 정부에서는 국민방위군을 남쪽으로 내려보내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들을 훈련시키고, 유지하기 위한 유지비 예산을 편성하는데, 역 209억의 예산안이 편성되었다(3개월분) 


이는 50만명을 유지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하지만, 이 예산안이 군인들을 위해 사용되지 않았다. 예산안 중 10억에 가까운 돈이 간부들이 부정횡령했던 것이다. 


부족한 예산안에서 또 일부를 착복하니, 병사들에게 제대로 식량이 공급되기 힘들었다. 이에 수 많은 사람들(약 1,000여명)이 굶어 죽게 되었고, 1월~2월의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약 8만여명의 사람들이 영양실조, 또는 동상으로 사망하게 된다. 아래는 이를 목격하였던 최경록 헌병사령관의 증언이다 



1951년 1월 중순경, 나는 동래의 포로수용소를 시찰하고 대구로 향하던 길에 어느 초등학교 앞에서 가마니를 뒤집어 쓴 군인들이 거지처럼 서성이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군기가 이 꼴이 되다니...’하는 생각이 들어 소속을 물어봤으나, 그 들은 경례는커녕 멸시하는 눈매로 나를 보았다. 그래서 뭐하는 놈들이냐고 호통쳤더니 한 녀석이 ‘각하께 꼭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고 하면서 학교로 들어가자고 하길래 가서 보니 교실마다 5~6명씩 거적을 쓰고 누워 있는 자가 있는데 자세히 보니 굶고 병들어 죽은 시체들이었다. 몇 녀석이 울면서 ‘우리는 국민방위군인데 얼마동안 쌀 한 톨, 약 한 봉지 주지 않아 마을에서 밥을 얻어먹어 연명하고 있으나 제대로 먹지 못하여 아사자, 병사자, 동사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헌병사령관이 되기 전에는 일선에만 있어서 국민방위군이란 이름조차 처음 들었는데 이것은 보통일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철저히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최경록의 증언( 출처:625전쟁시 예비전력과 국민방위군) 


이후 이종욱 의원에 의해서 국회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종욱의원 및 14명의 국회의원은 국민방위군을 보고 나서 '제2국민병 처우에 대한 긴급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고 국회 본회의에서는 1월 16일 제2국민병 처우개선 건의안 6개항을 작성하여 채택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방산비리의 당사자였던 김윤근은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김윤근( 출처: 위키백과)

여기에 대해서 문제시하는 것은 일부 불순분자의 소행이다 


김윤근 ( 출처: 도서 625전쟁 시 예비전력과 국민방위군) 



이러한 국민방위군 참상이 국회에 알려진 것은 당연하였다. 이종욱 의원에 의해 국회에 알려진 것은 부신 피난 국회 개원 이틀째인 1051년 1월 15일이었다. 이종욱 의원 외 14명의 국회의원은 국민방위군을 보고 나서 ‘제2국민병 처우에 대한 긴급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고, 국회 본회의에서는 다음 날인 1월 165일 제2국민병 처우개선 건의안 6개항을 작성하여 채택하였다. 



국민병 처우 운운하나 최후승리를 위해서는 돌발적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희생이 적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제 5열의 준동이 가장 위험한 일이니 제 5열의 책동에 동요되지 말기를 바란다. 


신성모 국방부장관 



신성모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성모 국방부 장관은 계속 이를 은폐, 축소하고자 하였고 그의 의도대로 군사법정에서 판결은 경범죄정도로 취급되었다. 그는 자신의 친구인 국방부 정훈국장 이선근을 재판장에 임명하였고, 김윤근에게 무죄, 윤익현에게 징역 3년 6걔월 형을 선고하고 마무리짓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여론이 들끓게 되었다. 



결국 국회의 요청으로 인해서 재수사가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간부들에의해서 약 10억에 가까운 공금이 횡령되는 등의 문제가 발견되었다. 결국 이에 이승만은 신성모를 해임하고 이기붕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하여 사건 해결을 지시하였고, 김윤근등 주요 간부 인사 5명을 사형하고 그해 국민방위군을 해체함으로서 일은 마무리 되었다. 


이후 군사법정에서 이 사건의 해당자이자 거창양민 학살 사건의 주동자인 신성모를 법정으로 출두하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승만은 신성모를 주일대사로 임명하여 도피케 한다.



결국 최고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았고 그는 이후 91년 사망한 후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어있다....



사형이 집행중인 국민방위군 사건 해당자들(출처 위키백과)


최경록 헌병사령관은 아래와 같은 증언을 남겼다. 






이렇게 많은 돈이 어떻게 유용되었는지를 조사했더니 횡령액 중 1/3은 국회의 신정동지회에 정치자금으로, 1/3은 관계요로에 무마비로 1/3은 국민방위군 간부들의 유흥비로 소비되었다. 이 사건은 신성모 국방부장관이 국회 내에 자기를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만들려고 70명의 선정동지회에 정치자금을 지원한 데서 일어난 사건이다 




출처: 625전쟁시 예비전력과 국민방위군 








최경록 헌병사령관( 출처: 위키백과) 







3. 하고 싶은 말 


역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하며, 역사가의 주관이 반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랑케 사학의 뜻을 존중한다. 그리고 이는 어떻게 보면 역사가의 소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모든 면에서 건국전쟁은 객관성을 빙자하면서도 객관적이지 않은 영화였고 이승만 숭상을 통해서 정치적 의도를 달성하려하는 영화였다. 



625전쟁 당시 개인이 일탈하여 대전으로 도망하였고 이로인해 발생한 행정 공백을 야기한 장본인이자, 제주43사건, 여순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등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했으며, 


나라를 구하려 모였던 20~30대의 장병들을 한국 역사상 최악의 방산비리를 야기했던 군통수권자였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정치적 의도를 도출할 수 있는 사실만 보는 것은 올바른 역사이해가 아니다. 그러므로 


건국전쟁은 상당히 정치적 의도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교양적이지도 않고, 문화적이지도 않으며, 객관적이지도 않은 다큐라 할 수 있겠다.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반성했을 때,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건국 당시의 혼란기, 우리는 그 때 당시의 우리 역사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억울하게 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유린되는 상황도, 없을 것이고 민주주의가 혼란에 이르는 일도 방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입틀막'당한 의사 임현택, 차기 의협회장 당선…강경투쟁 예고(종합2보) | 연합뉴스 (yna.co.kr)







19년 전 사진으로 157억 횡재...우리나라..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518 시기 계엄군에게 끌려가고 있는 시민들(출처: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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