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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감성소년의 두 번째 단편소설

by 감성소년

1장 – 초인종 앞에서

겨울바람이 낡은 아파트 보도 사이를 파고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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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초인종 앞에 서 있었다.

그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일이었지만, 손가락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딩동.”

잠시 후,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엄마... 저예요. 미영이.”

철컥. 문이 열렸다.

“미영아! 여기 왔구나. 이것도 오랜만이네... 일단 안으로 들어와. 추워~”

여자는 평소보다도 더 반갑게 그녀를 맞이해주었다.

오랜만에 오는 집. 상견례 이후 거의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

오랜만이지만 모든 것이 낯익은 이곳.

어릴 때부터 내가 살아오고 성장해 온 모든 것들이 묻어 있는 이곳이었다.

그럼에도 익숙함 속에서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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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마주 앉았지만, 침묵이 식탁을 채웠다.

주전자에서 물 끓는 소리만이 거실의 정적을 길게 끌고 갔다.

한참이 지나, 미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 임신했어요.”

말끝을 다물며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공기 중에 감정의 먹먹함이 목 끝까지 밀려 올랐다.

그 순간, 미영은 오래전부터 묻어두었던 말을 꺼냈다.

“엄마... 왜 그때 아빠를 떠나지 못했어?

어릴 적 그 모든 싸움, 그 고통 속에서...

엄마는 왜 거기 남아 있었던 거야?”

식탁 위의 정적이 방안을 짓눌렀다.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

“미영아, 나는 너를 지키고 싶었어. 하지만... 엄마는 그때 나 자신도, 너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어.

지금도 그게... 너무 후회돼.”

그 말에 미영은 고개를 떨구었다.

따라오는 싸늘한 냉기 속에서, 오래 숨겨온 진심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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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 나는 저렇게 안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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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이던 해, 미영은 처음으로 ‘엄마가 울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명절날 집안은 북적였고, 엄마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부엌에서 전을 부치고, 국을 끓이고, 상을 차렸다.

남자들은 거실에서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고, 시어머니는 틈만 나면 눈치를 주었다.

“우리 집에 저 원숫덩어리가 들어와서 우리 잘난 아들 다 망쳐놨어.”

“하는 짓이 어디 살림하는 여자냐, 뭐가 저리 굼떠?”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칼질을 이어갔다.

하지만 손끝이 떨리는 것을, 미영은 봤다.

그날 밤, 미영은 물을 마시려다 작은 방에서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조심스레 문틈을 들여다보니, 엄마가 무릎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그 장면은 어린 미영의 마음속에 깊게 새겨졌다.

그리고 그날, 미영은 단단히 다짐했다.

‘난 절대 저렇게 살지 않을 거야.’

엄마처럼 울면서도 참고, 고통을 삼키는 삶은 살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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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년 뒤, 미영은 대학에 입학하고 독립했다. 미영은 이후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다. 과외, 서빙 등 그러면서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했다.

그녀는 스스로 되새겼다.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누군가에게 기대지도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겠다. 그리고 거의 집과 연락을 단절했다. 그녀의 굳은 의지였다.

미영이 치열하게 살아갈 때쯤, 엄마는 그 무렵 아버지와 이혼을 결정했고, 조용히 혼자 남았다.

그녀의 그런 마인드는 계속된다. 아르바이트 면접하러 갈 때도,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 앉아 있을 때도,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칠 때도, 마치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그런데 사람 일은 참 알 수 없는 일이라…



3장 – 사랑이란 착각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저녁이었다.

미영은 평소처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바쁘지도, 한가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평일.

주문을 받으러 다가갔을 때,

한 남자의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감사합니다.”

그 말투에, 미영은 문득 멈칫했다.

익숙한 어조. 말끝을 흐리지 않는 부드러운 단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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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낯설지 않은 말씨였다.

그 순간, 스쳐 지나가는 장면.

‘엄마... 이 목소리, 엄마가 좋아했던 그 말투랑 비슷해.’

그게 처음이었다.

다음 날도, 그 남자는 왔다.

그다음 주에도.

항상 같은 자리, 같은 음료, 같은 미소.

어느 순간부터 그와의 짧은 인사에 미영은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했다.

몇 개월 후, 미영은 작은 회사에 취업했다.

출근 첫날, 그는 아침부터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는 정성스레 싼 도시락과 손편지.

도시락을 열자, 미영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가지런히 놓인 동그랑땡.

어릴 적, 엄마가 종종 싸주던, 그 익숙한 반찬.

편지를 펼치니 글씨가 뚝뚝 눈에 들어왔다.

사랑하는 나의 미영에게.

오늘도 고생해. 너를 응원해.

네가 빛나는 하루를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어.

그게 나야.

그 순간, 미영은 확신했다.

‘이 사람이라면, 함께 살아도 괜찮겠구나.’

엄마의 그늘 속에서, 그녀를 따뜻하게 품어줄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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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 이상적인 결혼이라는 착각

미영은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잘 지내?”

4년 만의 연락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영아?”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

순간, 울컥해질 뻔했지만 미영은 꾹 눌렀다.

“엄마, 나… 정말 좋아하는 사람 만났어.

엄마랑 같이 보고 싶어.”

그렇게 해서, 세 사람은 한 식당에서 마주 앉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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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함이 공기처럼 떠다녔다.

“어머님, 처음 뵙겠습니다.”

예비 신랑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이야기는 들었어요. 저희 딸… 잘 부탁해요.”

형식적인 인사, 억지로 끌어낸 대화들.

미영은 엄마를 마주한 것이 반가우면서도, 불편했다.

그녀 마음 어딘가에는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생각.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그 감정은 벽처럼 두 사람 사이를 막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조용한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가족과 친구들 몇몇만 초대한 소박한 자리였다.

결혼 생활은 무탈했다.

남편은 늘 말을 잘 들어주었고,

주말이면 설거지를 도맡았다.

빨래, 청소, 요리…

함께하는 삶은 편안하고 부드러웠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

미영은 스스로 되뇌었다.

이게 바로 내가 바라던 삶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데도, 어느 밤

라면을 끓이다 문득 멈칫했다.

남편이 나지막이 말했다.

“내일은 내가 김치볶음밥 해줄게.

엄마가 예전에 자주 해줬던 거 있잖아, 그 스타일로.”

그 말에 순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울컥 솟구쳤다.

‘엄마…’

미영은 여전히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엄마의 삶을 경계하고 있었다.

애증의 끈처럼, 얽히고 설킨 감정들이

결혼 이후에도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왜 이렇게 복잡할까…

그냥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미영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엄마를 놓지 못하고 있다는 걸.

그게 허전함의 정체였다.

그것이 곧,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는 마음의 그림자였다.



5장 – 임신 그리고 다시 알게 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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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임신 맞습니다.”

짧은 말 한마디가 미영의 귓속에서 오래 울렸다.

진료실을 나서는 순간, 세상의 소리가 잠시 멎은 듯했다.

길을 걷는 사람들, 병원 로비의 안내 방송, 진동하는 휴대전화마저 먼 일처럼 느껴졌다.

‘엄마… 나, 진짜 엄마가 되는 거야?’

사실 엄마가 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조차 해본 적이 없을 만큼

그녀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감정적으로 너무 먼 존재였다.

그저, 어린 시절의 아픔과 억눌린 감정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생겼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상하게도 ‘엄마’를 자꾸 떠올렸다.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는 어땠을까.

그때 엄마도 이런 막막함을 느꼈을까.

결국 미영은 오랜 망설임 끝에, 전화를 걸었다.

상견례 이후 몇 번의 명절을 지내며 얼굴은 마주했지만,

진심을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피상적인 안부와 의무적인 방문만 오갔던 지난 시간.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엄마… 나, 보고 싶어요.”

간간이 봤던 딸의 얼굴이었다.

상견례 때도, 결혼식 날도, 설과 추석 즈음해서도 마주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딸은, 그때와는 어딘가 달랐다.

표정이 조금 더 조용해졌고,

말수가 줄었지만 눈빛은 깊어져 있었다.

무언가 담긴 듯한, 말하지 못한 마음이 얼굴에 어른거렸다.

엄마는 그 낯선 익숙함을 오래 바라보았다.

말없이 마주 앉은 두 사람.


미영은 이제껏 하지 않았던,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말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엄마, 나 어릴 때...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왜 그때,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참기만 했어?”

“왜... 나까지 그 집에서 그렇게 살게 했던 거야?”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영아. 그땐 내가, 너무 무서웠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네가 있어서 버틸 수밖에 없었어.”

눈물은 없었다.

대신 한 줄 한 줄 말로 새겨지는 고백이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배고프지? 엄마가 밥 해줄게.”

그 말은 어쩌면, 가장 오래 묵혀둔 위로이자 사랑의 표현이었다.

엄마는 부엌으로 가 조용히 된장찌개를 끓이고,

오랜만에 동그랑땡도 정성스레 준비했다.

방 안에 퍼지는 익숙한 냄새.

어릴 적, 가끔 엄마가 기분 좋을 때 해주던 바로 그 냄새였다.

그렇게 차려진 밥상 앞.

두 모녀가 단둘이 앉아 밥을 먹은 건 거의 10년 만의 일이었다.

미영은 평생 엄마를 원망하며 살아왔지만,

사실 이런 자리가… 너무도 그리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미영은 마음속에서 처음으로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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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 천천히 닮아가는 중입니다


출산 예정일을 10일 앞둔 밤, 미영은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아이의 태동은 잦아졌고, 불규칙한 진통이 간헐적으로 찾아왔다.

거실에 홀로 앉아 조명을 줄이고,

미영은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데워 한 숟갈 떠올렸다.

구수한 냄새가 입안을 맴돌았고,

그 순간 문득 엄마가 아이를 낳았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때 엄마는 몇 살이었을까?

병원 침대 위에서 무섭진 않았을까?

출산의 고통과 함께 마주했을, 새로운 생명에 대한 그 복잡한 감정들.

그제야, 미영은 깨달았다.

엄마는 그저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낸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사랑받지 못한 아내로, 홀로 버틴 엄마로.


“나도 이제 곧 누군가의 엄마가 되네…”

미영은 배를 감싸 안으며, 살며시 웃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엄마와 같은 삶은 살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지금 그녀는 그 길을 천천히, 그리고 고요히 걷고 있었다.

아이의 이름은 ‘하윤’으로 정했다.

‘하늘처럼 너그럽고, 윤택하게 살아가라’는 의미였다.

엄마가 이름을 듣자 가장 먼저 눈물을 흘렸다.

“이름 참 곱다… 네가 이렇게 예쁜 이름을 지어줄 줄이야…”

그리고 출산 당일.


병원 복도에 나란히 앉은 엄마와 미영.

진통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딸 옆에서

엄마는 말없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미영은 그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 나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그때 왜 아무 말도 못했는지,

왜 나를 위해 참았는지…’

수술실 문이 열리고,

새로운 울음소리가 병원 복도에 울려 퍼졌다.

“따님이에요. 건강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영은 아이보다 먼저 울었다.

그리고 엄마도 함께 울었다.

말없이, 조용히, 함께.

밤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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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이는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들었다.

미영은 창가에 서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어느덧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그 얼굴.

그토록 닮기 싫어했던 바로, 엄마의 모습.

하지만 지금은 그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따뜻하고, 조금 든든했다.

“엄마, 나…

천천히, 닮아가는 중이야.”


에필로그 – 봄이 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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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엔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하윤이는 이제 두 돌을 앞둔 아이였다.

짧은 다리로 종알종알 말을 배워가며

세상의 모든 것을 질문했다.

“엄마, 이거 뭐야?”

“엄마, 이건 왜 그래?”

미영은 한참을 대답해주다가 문득 웃었다.

이젠 자신이, 엄마가 되었구나… 실감이 났다.

그날은 봄 햇살이 유난히 따뜻한 날이었다.

미영은 하윤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엄마의 집을 찾았다.


엄마는 여전히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작은 화분들 사이로 고구마줄기가 자라 있었고,

베란다 한켠엔 그녀가 어릴 때 썼던

낡은 선풍기와 인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엄마, 우리 왔어요.”

현관문이 열리고,

엄마는 가장 따뜻한 미소로 그들을 맞았다.

하윤이는 익숙한 듯 할머니 품에 안겼고,

엄마는 조심스레 아이를 안고 다정히 말했다.

“미영이 어릴 때도 이렇게 안아줬는데…

그땐 왜 그렇게 시간이 빠른 줄 몰랐을까…”

식탁 위엔 또 다시 동그랑땡과 된장국,

미영이 좋아하던 가지볶음이 올라왔다.

네 사람은 마주 앉아 함께 밥을 먹었다.

시간이 흐르고,

서로를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꼭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랑’이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눈빛 하나, 밥 한 끼, 손등을 스치는 손길에

모든 말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하윤이를 재운 미영은 작은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내가,

결국 엄마처럼 살게 되었다.

그게 불행일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그건 하나도 불행하지 않았다."

"나도 엄마가 되어갔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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