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저 Jun 27. 2023

제1장

그녀는 늘 불안했다. 어디로 가는지 몰랐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방향이 없으니 길을 잃어버리는 것은 당연했다. 길잡이가 없으니 현재의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암흑 속에서 두 손만 더듬거리며 간신히 한 발짝 한 발짝 떼는 게 전부였다.


그녀는 늘 혼란스러웠다. 정답을 찾기 위해 애썼지만 이 세상에 정답이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리석게도 믿었다. 어딘가 정답이 있을 거라고. 그리하여 그녀는 계속 빗금 치는 엑스표 속에서 도망쳤다. 그 엑스표 안에 갇히지 않도록.


그녀는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똑똑한 아이로,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부유함으로. 예쁘고 어리고 똑똑한 여자로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나도 쉬웠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온실 속의 공주님’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늘 흔들렸다. 부족함 없이 자라다 보니, 갈망하는 것이 없었다. 세상과 부모님이 정해준 목표들은 너무 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늘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답을 알려 줄 수 없었다.


대학교 졸업반 때, 그녀는 지도교수로부터 진로에 대해 적나라한 질문을 받았다. 그때 그녀는 앞이 깜깜한 게 어떤 것인지 처음 깨달았다. 아무리 상상해보려고 해도, 그 어떤 미래도 그녀의 머릿속에 펼쳐지지 않았다. 지도교수는 그런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졸업 후 평범한 회사에 취직했다. 일은 재밌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회사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며 속이야기를 나눴다. 술잔이 부딪힐 때마다, 그녀의 회사생활은 공허함으로 가득 찼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우울증이라는 나쁜 손님이 찾아왔다. 사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고 그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아니, 행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일컫는 불운, 가난이나 가정의 불화, 실패한 삶은 그녀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이라는 나쁜 손님은 그녀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키가 160cm인 그녀의 몸무게가 36kg까지 빠지다가 몇 달 새 20kg가 찌는 것이 반복되었다. 무엇 하나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없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계속해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밤새 먹고, 토하고, 우는 날들이 많아졌다. 커튼을 열지 않고 햇빛을 보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다.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하루가 지나갈 때도 있었다.


그녀는 주치의에게 많은 것을 털어놓았다. 아주 어린 아기 때 시절부터 최근까지, 인생사 모두를 몇 시간에 거쳐 뱉어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누렸었는지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렇기에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불안하게 하는지 더욱 몰랐다.


주치의는 그녀가 외부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선택하기보다, 누군가가 선택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 했다. 자기 주관보다는 이 세상에 맞춰 살아가기에, 자기 자신을 제일 모르는 바보라고 했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스스로 결정을 내린 적이 없었다. 아니, 당시에는 스스로 결정했다고 생각했으나 타인의 입을 빌려 들은 자신의 인생은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대학 전공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 당시 교제하던 남자친구가 추천해 준 학과를 선택해 진학했다. 그녀는 가뿐히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합격했지만, 크게 기쁘지 않았다. 그저 부모님을 안심시킬 수 있었고, 남자친구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에 대해 모른 채로 27년을 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범적이고 누구보다도 안정적인 그녀의 삶은 사실 아무것도 채워진 것이 없었다. 그녀의 주치의는 그녀에게 무모한 것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런 용기가 그녀에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녀는 이런 고민들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 우울증부터 주치의와의 상담, 그리고 회사의 절친한 동료의 이직으로 인한 마음의 동요가 그 어느 때보다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맥주를 들이켰지만 머릿속의 이미 엉켜버린 실타래는 도무지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취하고 싶어도 취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한번 돌이켜보기로 했다. 지난날들에서 그녀 자신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스물일곱 번의 해라는 짧은 역사를 되짚어 보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