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인 39세 여자를 보는 시선
나는 육아휴직 중인 6살, 4살 아이의 엄마이다. 육아휴직이 끝나면 40대 초반, 재취업은 요원해질 전망.
올해 초 육아휴직을 사용했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고 있다. 물론 본래의 목적에 맞게 육아도 더 잘하기 위해 스스로 단련(?)도 하고 있다.
운동하기,
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
글쓰기 등
체력과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 루틴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시아버지와 이번 추석명절에 둘이서 밤을 까면서 소소하게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말씀이 많지 않으시고 조용하시지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땐 간단히 핵심만 말씀하시는 편이시다. 주저리 주저리 할 말이 너무 많은 며느리의 이야기를 거의 들어주신다.
"며느리야, 그래도 일은 해야 하지 않겠니?"
말을 듣는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몇 초 망설였다. 시부모님과 며느리 관계에서 오고 가는 말 중에 조금 민감한 주제에 속했다.
첫째 아이를 낳고 6개월 뒤쯤 정확히는 회사의 퇴직 처리가 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을 시점이었다. 시어머니와 직장이야기로 대화를 하게 되었다.
"며느리야, 나중에 직장은 어떻게 하고 싶니?"
"아 제가 회계 경력도 8년이 넘으니까 아무래도 이쪽으로 다시 취업할 것 같아요."
"그래도 애 키우면서 직장에 다니려면 공무원 준비를 해보는 게 어떻겠니?"
"아 공무원도 좋지만, 공부만 하루 8시간 이상해도 떨어지는 시험이라 애 키우면서 집중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제가 공무원에 관심도 없고요."
"그래도 애 키우기엔 공무원이 좋단다. 나중에 연금도 나오고... "
"아 그렇죠. 좋긴 한 것 같아요."
이렇게 몇 분의 대화 끝에 어머님은 댁으로 돌아가셨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아이를 다시 돌봤다.
첫째 딸 제리는 조금 섬세하고 감각이 예민하며 통잠을 자지 않는 아이였다. 어머님과 대화했던 그 전날밤도 역시 제리는 밤새 뒤척이고 깨서 또 울었고, 3시간마다 모유수유하고 분유보충까지 했다. 트림을 안 해서 아이를 소파에서 안고 간신히 2~3시간이나 잤을까 했던 그런 날 중 하루였다.
화가 나기보다 좀 서러운 그런 날이었다. 잠은 부족하고 젖은 한두 시간이면 빵빵해져서 내 의사와 별개로 알아서 모유가 나와 축축해져 있었다. 귀여운 아이는 엄마만 하루 종일 찾아댔다. 이유 없이 아이가 울어댈 땐 , 성장통은 아닌지, 열이 나는 건 아닌지, 배가 고픈 건지, 그런 걱정을 하다가도 곧이어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까지 두려워지면서 심각해졌다. 매일을 전전긍긍하고 조마조마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 혼자 울었던 것 같다. 가슴에서는 모유가 흘러 수유패드를 적시고 있었다. 내 눈과 젖꼭지에서 동시에 울고 있었다. 눈도 울고, 젖도 울고 환장할 노릇이다.
결혼할 시점 남편과 나의 연봉은 똑같았다.
나도 어디 가서 꿇리지 않아!!라는 노래 가사도 있듯이, 매출 30억의 중소기업 회계팀장이었고, 나름대로 인정받는 인재였다. 심지어 나는 직장에 다니며 틈틈이 공부해서 회계자격증도 많았고, 주말마다 세무회계 학원을 다니며 자기 계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애 낳기 전까진 쉴 틈 없이 꽉 찬 인생을 살아왔다.
우리는 어쨌든 간에 사회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애를 낳고 난 순간부터 조용히 나의 사회적 평가는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맞벌이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양가의 육아도움으로 악착같이 버티고 버텨서 경력을 유지했고 연봉이 상승했다. 맞벌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 상황이 상당히 안정적으로 보였다. 공무원 집안에서 자란 나로서는 그게 정답으로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아이를 돌보는 것을 선택했다.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게 꿈이 되었던 것 같다.
우리 언니는 성공한 맞벌이 가정이다. 언니가 돈 쓰는 게 부러워서 돈을 벌고 싶었던 적도 있는데 언니가 그랬다.
"나는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 직장에 나가지만 난 일 안 하고 애 보는 네가 부러워. 집에서도 눈치 보고 회사 가서도 눈치 보는 게 워킹맘이야. 그리고 40세가 넘어가니 직장 다니는 것도 만만치가 않아. 계속 새로운 걸 배워야 하고 밑에선 치고 올라오고, 경력도 의미가 없어. 나이 어린 게 최고의 경력이더라 "
참 어렵다.
아이 둘을 낳고 둘째가 13개월쯤 되었을 시점에 나는 하루 7시간 근무하는 직장에 직전연봉의 20프로 정도를 삭감해서 재취업을 했다.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직장이라 애들의 등하원을 내가 책임질 수 있다고 판단되어서 꼭 합격하고 싶었던 자리였다. 나의 경력공백은 약 3년 정도였다. 경력을 다시 새로 쌓더라도 이전 경력을 이어놓아야 직장인으로서 미래가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나의 가치가 육아로 상당히 희석되어 보이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돈을 벌어야 인간의 가치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땐 돈이라도 벌어야 가치가 있는 것 같았다. 성취지향적인 삶을 살다가 끝도 없는 집안일과 육아를 하는 삶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전업주부로 쭈굴쭈굴해진 나의 자존심을 되찾고 싶었다.
그때 아버님은 별말씀 없으셨지만 어머님은 한 말씀하셨다.
"연봉이 너무 낮지 않니? 그 정도 받고 다닐 바에야 아이를 키우는 것에 집중하는 게 어떠니? 난 안 다녔으면 좋겠다."
다시 작고 소중한 연봉부터 새로 경력을 쌓아보겠다는 나의 다짐이 저평가되는 순간이었다.
평생 교사로 일하시면서 아들 둘을 당신 손으로 키우지 못하고 많이 안아주지 못하신 것을 미안하게 여기셨고, 아들이 결혼하면 며느리가 아이를 최소 36개월은 돌봐서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해주고 싶다고도 말씀하셨던 분이시라 말씀의 취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나도 시부모님께서 말씀하시면 최대한 해드릴 수 있는 건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줏대 없이 흔들리는 갈대 같은 사람이었다.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다.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결정하고 밀어붙이면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말은 그저 엑스트라의 대사에 불과하다.
[누칼협]이라는 신조어를 들어봤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다른 사람 말이 신경 쓰이는 걸까?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얼마나 짧은 시간 생각할지를 생각해 보라. 내 삶에 대해 제일 많이 생각하는 건 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른 분들의 의견은 참고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경험해 본 세상만 이해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상상밖에 할 수 없을 뿐이다. 심지어 경험하지 못한 삶은 두렵기까지 하다. 평생 한 가지 직업을 업으로 삼으셨던 부모님 입장에서 아들 내외의 생활은 굉장히 불안해 보였을 것이다.
내가 우리 아이들이 실패하는 게 무섭듯이 부모님도 우리가 실패하거나 망할까 봐 두려우실 것이다. 어쩌면 우린 변동성이 많은 세상에서 안전하게 자라온 사람들이었다. IMF때 많은 사람들이 실직을 겪고 경제적으로 곤궁에 처하는 걸 봤지만 남편과 나의 집안은 그런 위험에서 벗어나있었다. 양가 부모님들은 그때 경험하시기를 "넘어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라는 교훈을 얻으셨을지도 모르겠다. 넘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넘어지는 건 두려운 일이다. 나도 그렇다.
추석 때 아버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했다.
"네 저도 일하는 것이 좋죠. 그렇지만 지금은 아이를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하고 제리아빠도 그러길 원해요. 본인이 일에 집중하고 싶어 하는데 제가 직장에 다니면 그게 힘들대요. 본인도 육아에 참여해야 되는 게 체력적으로 힘이 드나 봐요.
또, 제가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아이들을 누군가는 돌봐주셔야 하는데 아버님, 어머님의 시간을 제가 빼앗을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언니도 양가부모님이 애를 돌봐주셔서 지금까지 맞벌이를 하니 경제적인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되었고 안정이 된 건 사실이지만 그 사이에 희생된 양가부모님의 시간과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언니부부의 연봉엔 부모님의 희생이 녹아있다고 생각해요. 제리아빠는 한평생 일하신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는 걸 원하지 않아요. 부모님의 시간의 가치가 우리 것보다 훨씬 높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 말에 저도 동의해요."
아버님은 별말씀 없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셨다. 그저 생각에 잠기신듯했다.
삶에 옳고 그름이 없고 선택만 있을 뿐이다. 세모도 살고 네모도 살고 동그라미도 살듯 사람들은 제각각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들이 닦아놓은 성공한 길이 있더라도 우리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 길은 우리가 갈 길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부족하더라도 아이들과 더 시간을 보내고, 눈을 맞추고, 아플 때 돌봐주고,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삶을 선택하게 하려면 나 먼저 그런 선택을 하는 걸 보여줘야 한다.
내가 실제로도 초보운전이고 내 인생도 초보운전이라 아직 갈팡질팡하며 위험해 보이지만 내 운전대를 남에게 넘기지 않겠다. 앞으로 내 인생의 운전대는 나만 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