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이들에게 화낸 당신에게
'콜록콜록'
언니보다 먼저 일어난 둘째 딸(티커, 4살)이 아침부터 거실에서 기침을 했다. 티커가 기침하는 게 싫었던 첫째 딸(제리, 6살)은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제리는 거의 울듯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티커 싫어!! 입도 안 가리고 기침하잖아!!"
라며 온갖 짜증을 내고 있었다. 감기 바이러스를 두려워하며 방에서 거실을 빼꼼 내다보고 있었다.
"제리야 나와~이제 밥 먹고 유치원에 가야 돼"
어제 화를 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기에 나는 최대한 친절하게 말했다. 애 둘 엄마는 아침부터 시간에 쫓긴다. 8시 40분에 유치원 차가 오기 때문에 8시부터 시계를 수십 번은 쳐다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쉬도 해야 하고, 프로바이오틱스와 초유단백질을 먹어야 하며,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아침도 먹어야 하고, 머리도 묶어야 하며, 양말도 신기고, 가방도 싸야 하는데 제리는 징징거리며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가방을 싸고 계란프라이를 하며 말했다.
"제리야 나와 이제 30분 뒤면 유치원 차가 와. 지금 준비해야 돼 "
그 사이 티커의 기침 소리는 더 커졌고 , 제리는 공포 가득한 얼굴로 티커를 향해 더 짜증을 냈다.
"티커가 기침하잖아!!! 나 방에 있을래"
"제리야 내가 좋게 말할 때 들어줘. 지금 나오라는 소리 10번도 더 했어."
슬슬 나의 말투도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다.
"나 안나갈래"
"야!!!!!!!!! 나오라고!!!!! 몇 번을 말해!!!"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결국 직접 가서 거칠게 제리의 팔을 붙잡고 거실로 나오는 동안 제리는 원망 섞인 표정으로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아파. 무서워. 엄마가 또 화냈어"
그 표정을 보고 있다가 어김없이 자책을 한다.
'아차! 또 화내버렸네. 수백 번 화를 내고 사과를 하고 후회하고.... 난 대체 왜 이모양이지. 진짜 내가 싫다 정말 싫다 , '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두통이 세게 몰려왔다.
'구제불능, 나쁜 엄마, 주변사람한테 싫은 소리 입도 뻥끗 못하면서 내 새끼들한테만 매일 화내고 소리 지르는 사람. 차라리 내가 애를 안 키우는 게 아이들에게 좋을 지도 모르겠다. 애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야.'
대충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법이 심호흡을 10번 정도 하라는데 심호흡을 할 기운도 없었다.
"엄마가 제리한테 오늘도 화를 냈네~? 엄마가 아침엔 바빠서 여러 번 말하기가 힘들어. 아침에는 엄마 말을 잘 들어줄래? 엄마가 노력하는데 잘 안된다. 어제도 화 안 낸다고 약속해 놓고 또 화를 냈네. 많이 놀랐지? 엄마가 계속 노력해 볼게"
이렇게 부드럽게 말하고 꼭 안아줬다. 제리는 내가 이중인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제리는 늘 이럴 때 나를 용서해 준다. 괜찮다는 말대신 나를 꼭 안아줬다. 수없이 잘못해도 나를 안아주고 나를 원한다. 그 와중에도 내가 옆에 앉아있어야 밥을 먹겠다고 주장하며 내 팔을 만진다. 너무 미안해서 눈물조차 안 났다. 나를 쉽게 용서하는 걸 보면, 이럴 땐 오히려 딸에게 많은 걸 배우게 된다.
완벽하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우리 아이들은 완전한 행복과 풍요로운 사랑 속에서 결핍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상처도 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육아 휴직 후 책을 많이 읽고 나니, 결핍이 없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하고 도전을 망설이게 키우는 거라고 하더라. 하지만 그걸 알기 전까진 내 새끼들은 안전한 온실 속에서 예쁘게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잔잔한 강물처럼 마음에 동요가 없고 편안한 사람처럼 보여서 애들에게 화낸다고 말하면 믿지 못하였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처럼 항상 애들에게 웃어줄 것만 같단다. 내 꿈이었던 '결혼과 출산'을 이루고 나니 나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워진 것처럼 느꼈고, 스스로 꽤 행복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겉으로 좋아 보이는 삶 속에 불안과 어둠을 감추고 살고 있다. 어릴 적부터 나에 대한 평가에 박하며 내가 뭔가 잘하지 못하면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자각하기 전까진 무의식 속에서 있어왔고, 내가 그렇다는 걸 자각하고 나서도 이 생각을 끊어내지 못했다.
20살 때 처음 나를 좋아하는 이성을 만났는데 '나 같은 사람을 왜 좋아하는 거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냥 단순 궁금증 같은 게 아니라 세상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의 청소년기에 자존감은 바닥이 아니라 지하 깊숙한 곳 지구의 내핵 어딘가쯤에 있었던 것 같다.
대학교 중간고사 시험기간 동안 도서관 1층을 지나가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미술치료를 해주겠다고 말을 걸어왔었다. 그때 집을 그려보라고 하길래 도화지 가운데에 작은 집을 그렸다. 나에게 이 집에 누가 사냐고 물었을 때, '여기엔 아무도 살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아무런 생명체도 집에 살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넓은 들판에 오로지 작은 집 하나 덜렁 있다는 상상을 했었다. 그 대답을 듣고 사람들이 놀랐다. 보통은 나와 가족이 산다고 대답을 한다고 한다. 이 그림의 해석에 따르면 나의 안중에 '나'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서 심리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 그 대답에 사실 제일 놀란 건 나였다. 그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며 살아왔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왜 행복하지 않은 채로 살고 있는 걸까? 지금은 여러 책을 읽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하는 생각들이 상당 부분 착각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들임을 깨달았지만 , 여전히 사람들이 날 싫어하진 않을까 눈치를 보며 거절도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에 내 마음이 좋은 건 해당되지 않는다.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궁금해서 한동안 나의 과거에 몰입한 적이 있다. 엄마는 삼 남매를 키우느라 바빴고, 일과 집안일 육아까지 병행을 하셨다. 내가 크던 시절에 아빠의 육아도움은 주말에 산에 가거나 할머니댁 방문 정도였다. 그것도 아빠가 많이 도와주는 편이라며 생색낼 정도로 그 시절엔 엄마에게 모든 책임이 몰려있었던 것 같다.
어릴 적 , 엄마가 도착했다는 엘리베이터 소리가 '땡'하고 들리면 삼 남매는 집안 곳곳으로 숨거나 자는 척을 했다. 집안을 발 디딜 틈 없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고 늘 새로운 형태의 사고를 쳤다. 엄마는 들어오자마자 화를 내셨다. 그런데 우리가 자거나 숨어 있으면 화를 내지 않으셨다. 자는 척하는 걸 알았더라도 그렇게까지 하는 우리를 보면서 굳이 깨워서까지 화를 내고 싶진 않으셨나 보다. 우린 워낙 많이 혼나면서 자랐다. 엄마의 훈육은 사실 짜증에 가까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애 둘도 이렇게 힘들어서 매일 화내는데 애 셋이라니 정말 상상도 안될 만큼 버겁고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어떻게 셋이나 키우셨지~?'라는 생각에 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지금도 청소기 소리를 들으면 너무 무섭다. 엄마는 늘 화를 내며 청소기를 돌리셨다. 청소기 소리가 끝나면 우린 또 혼나야 되기 때문에 그 소리가 들리는 것도 끝나는 것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때는 우리가 집안을 어지르고 장난을 많이 쳤기 때문에 잘못으로 인해 혼나는구나 싶었지만 웬일인지 엄마가 오시기 전에 나서서 치우는 사람은 없었다. 훈육을 하면 통해야 하는데 우리는 늘 어지르고 장난치고 혼나는 걸 반복했다. 생각해 보면 순간의 재미에 취해 다음 일을 생각 못했던 것 같다. 우리 애들도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구나.
양육과정에서 엄마가 힘들 게 되면 그 영향은 아이들에게 간다. 매일 혼나는 게 내 환경이었지만 삼 남매 모두 나처럼 자존감이 낮게 자란 것은 아니다. 언니와 남동생은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완벽할 정도로 힘찬 에너지로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 반전으로 상대적으로 여유시간이 있고 행복해 보이는 나는 무기력과 우울과 싸우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의문인 건 아침엔 운동, 오후엔 도서관에서 독서하거나 카페에서 글쓰기를 하며 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내 마음이 왜 이렇게 힘든 것이냔 말이다.
남편이 어제 그랬다
"스스로 상처를 주고 나서 그걸 치료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그 말을 듣고 빵 터졌다. 맞는 말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런 말도 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본인의 스트레스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잘해주는 것과 못해주는 것을 퉁치지 않고, 못해주는 것만 기억하고 되뇌는 성향"
왜 이렇게 남편은 맞는 말만 할까~?
'쳐 맞는 말 '
동네 언니들에게 아침에 애들에게 화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 장면을 재연을 했더니 언니들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공감과 속상함의 표현이자 '네 마음 내가 안다'라는 표현이었다. 너무 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어서 웃는데 웃는 게 아닌 그런 웃음이다. 우리 모두 애 둘씩인데 다들 고만고만한 2~3살 터울을 키우며 같은 처지에 놓여있어서 더욱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번에 이해를 한다. 우린 어제도 화냈고 오늘도 화냈으며, 1년 중 어쩌다 며칠인 '화를 내지 않는 날'이 반갑고 기쁘기에 앞으로도 화를 내지 않고 살겠다는 다짐을 하며 살고 있었다.
내가 화를 내는 포인트는 제리가 너무 예민함을 드러낼 때이다. 나는 상대적으로 둔한 편, 지저분한 편에 속한다. 그리고 남에게 싫은 티를 내는 걸 극도로 꺼려한다. 그래서 아무리 싫어도 괜찮은 척하며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성격이다. 그러나 제리는 나와는 다른 성격이고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제리는 코로나시절 태어난 아이라 태어나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낀 걸 봐왔고, 어린이집에서도 마스크가 의무였기에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알게 모르게 자라났을 것이다. 나는 강박적으로 손 씻기를 교육시켰고, 입에 손을 넣는 것을 금지시켰다. 제리는 누군가 기침을 해서 본인도 감기에 걸릴 수 있다는 걸 무서워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가르치면 규칙을 잘 지키고 그걸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라서 다른 사람이 그런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을 불편해했다. 도서관에서 누군가 조금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면 그 공간에 있기 힘들어서 집에 가야만 하는 아이인 것이다.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두 가지의 생각이 든다.
첫 번째, 내가 너무 아이를 예민하게 키웠구나.
두 번째, 다른 사람이 제리를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이 두 가지가 나를 두렵게 한다. 화가 올라오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지!' 라며 다그치고 아이는 울게 된다. 내 화가 제리에게 훈육으로 다가가지 않고, 그냥 엄마는 또 화를 내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아이는 더욱 배우지 못할 것이다.
제삼자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언니들이 말해줬다.
"제리에게 '괜찮아. 감기 걸려도 그렇게 큰일이 아니야. 무서워하지 마'라고 말해봐. "
그래도 다행인 것은 티커는 언니가 기침 때문에 피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저 언니 왜 저러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들은 조금 강하고 의연해 보일 때가 많다.
아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가르쳤던 것들이, 아픈 걸 두려워하게 만들었다니... 약 먹고 나으면 그만인 것을..
제리야
엄마가 많이 부족하지?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아직은 쉽지 않네.
엄마도 매일 배우고 깨닫고 성장하며 살고 있어.
내 말에 상처받지 말고, 엄마도 인간이라 부족한 게 많구나.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래도 나를 매일 용서해 줘서 고마워. 점점 조금씩이라도 나아진 엄마가 되어볼게. 사랑한다 우리 딸
오늘의 깨달음
[아이가 절대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게 엄마의 마음이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넘어져도 일어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오히려 많이 넘어지는 것이 일어나는 법을 잘 알게 되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