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노력해 온 날들

내가 가면성우울증일까?

by 알쏭달쏭

괜찮은 사람으로 살다가 나의 상태를 자각한 건 25살 때쯤이었다.


늘 웃어서 행복한 사람으로 평가받았고 걸음걸이가 씩씩해서 장군감이라는 소리도 들어봤다. 대학교 동기들은 내가 06학번에서 제일 기가 센 아이라고 이야기했고 난 정말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친언니와 노량진 자취방에서 맥주 한잔을 할 때였다.

언니는 내가 어릴 적 매일 아침 배와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고 했다. 내가 아팠던 게 일부러 거짓말을 하려고 했던 적은 없었기에 그게 이상하다고 여긴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어째서 매일 아침 그토록 반복적 지속적으로 아팠었고 그 이유조차 찾지 못했을까?

언니는 내가 꾀병일 것이라고 여겼고 아마 엄마도 그랬을 것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어쩐지 그러고 보니 내가 아픈 걸로 한 번도 병원에 간 적은 없었다. 엄마도 내가 그냥 아프다고 한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25살 때, 삼성화재 인턴으로 선발되어 한 달간 일을 할 때 만난 오빠가 나에게 말했다

"혹시 가면성우울증인가~? 매일 웃는 얼굴 뒤에 어둠이 보이네"

라고 말했을 때 머리가 띵했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했다는 게 놀라웠다.

늘 웃고 다니고 늘 감사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행복한 내가 어째서 가면성우울증일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듣고 말았던 것 같다.

이처럼 사람들이 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내가 다를 수도 있구나 싶었지만 나의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는 몇몇의 사람들 덕분에 그때부터 나는 줄곧 나에게 마음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나는 기뻐서 웃는 게 맞을까?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이해하는 척하는 거 아닐까?

안 괜찮다는 말을 못 한 건 아닐까?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걸까?

나는 내 감정을 존중하지 않는 건가?

남들도 나처럼 속마음을 감추며 살아갈까?

아무것도 즐거운 게 없는 상태가 정상인 걸까?


우울증으로 진단받은 적은 없어서 아직 확실치는 않다. 한의원에서 산후무기력증을 진단받은 적이 있고, 건강검진에서 경미한 우울증이라고 나온 적은 있지만 사실 정신과를 가봐야 정확한 검사가 나올 것이라는 것도 안다.

동네 첫째 아이 친구 엄마가 정신과를 추천해 준지가 벌써 2년이나 되었지만 아직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무서웠던 것 같다.

정말 우울증이면 어쩌지? 나 스스로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순 없을까? 정신력으로 이겨내 볼까?

39세 , 올해 초 육아휴직을 쓰고 6살, 4살 아이를 돌보며 매일 1시간씩 운동을 했다. 한 번도 나를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가 본격적으로 작년 9월부터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헬스장에 간 것이다.

나는 내 목숨보다 소중한 두 딸에게 매일 극도의 화를 내고 있었다. 정말 내가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이 든 순간 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화를 내고, 자책하고 사과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 자체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은영 교수님 책을 읽으며 화를 내지 않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심리학책과 자기 계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댔더니 하나 의미 있는 해결책을 발견했다. 바로 매일 30분 이상의 운동이었다. 중요한 건 30분이 아니라 '매일'이었다.

바로 변하진 않았지만 조금의 성취감과 벅참을 느껴갔고, 아이들에게도 화를 다스리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알렸다. 집에서도 스트레칭을 하며 '쉬지 않고 운동하는 엄마'라며 말했더니 첫째 딸이 웃으며 나를 따라 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에는 무언가 성취를 위해 달리기보다는 좋아하는 걸 찾는 시간을 갖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이들을 등원하고 나서 좋아하는 걸 하고,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하면 더 가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에게 매일 쫓기고, 시간에 쫓겨 빨리 성공해야 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걸 찾아보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은 이모티콘 그리기였다. 3세트를 카카오에 제출해 봤지만 결과는 미승인이었다. 글을 써보려고 16부작의 대본도 써보았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또 무기력해졌다.


나란 존재는 그 어떤 것도 기쁜 것이 없는 이상한 인간이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심지어 여행도 명품도 그 무엇도 나를 지속적으로 기쁘게 하는 게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돈을 벌 때만 나 스스로가 가치가 있고, 돈을 벌지 않을 땐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오랜 무의식 속에 가치관이 뿌리 박혀있었다.


사실 그건 진실이 아니다. 돈을 벌지 않아도 나는 육아와 집안일을 하고 있고 , 내 건강을 위해 매일 운동을 하며 그간 미뤄왔던 사색을 위해 도서관에 와서 철학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그 어떤 시간보다도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휴직기간엔 화내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요리에 관심이 늘어나 야채와 단백질의 식단을 늘리고 있다.

책을 뒤집어 놓고 갑자기 든 생각이 '얼른 글을 쓰고 싶다 '였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와 상관없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글로 적어서 책으로 출판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내가 눈을 감는 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잘한 일 딱 한 가지를 꼽자면 갑자기 내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지금 이 순간이 되기를!


끝도 없이 무기력하지만 그래도 살아내려고 계속 노력하겠다는 다짐이다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라고 스스로에게 오늘도 말하려는 결심이다.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괜찮게 살아내겠다.

잘해야 하고 ,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성공한 모습을 보여야 사랑받는 게 아니라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 딸들에게 들려줄 엄마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