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5개월 정도 헬스장 인포로 일하며 나보고 살이 쪘다느니 , 다이어트할 생각은 없냐느니 이런 말을 꽤 들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당신들은 나를 모른다고 생각해서 웃겼다. 나는 21년 1월 방에서 쓰러졌고 119에 실려갔다. 그 당시 겨울 옷을 다 입은 채 잰 몸무게가 34kg였다. 일주일간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나를 본 의사 선생님은 내가 정말 자다가 죽어도 이상한 상태가 아니라고 했다. 이때 당시 나는 하루종일 멍했고 살 말고도 근육이 다 빠져버려서 뛰지도 못했다.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고 새벽을 새고 아침 해가 뜨면 그때 잠들었다. 자다가 죽을까 봐 무서워서 잠에 들지 못했지만 쌀밥 또한 살이 찔까 무서워 일 년 넘게 엄마 밥을 안 먹었다.
거식증은 남들이 보기에 잘못된 다이어트의 연장선으로 음식을 거부해서 생기는 병이라 생각하지만 겪고 나니 정말 복잡한 병이다. 입원했던 대학병원 정신과 선생님께서 거식증을 6개월 앓는다면 회복하는 데는 최소 1년 이상 걸린다 했다. 나 같은 경우는 1년 정도를 앓았고 정상적인 사고로 돌아오고 생활을 하게 된 게 정말로 2년이 넘게 걸렸다.
거식증이라는 병은 마음의 병이 시작인데 나는 우울증을 동반하여 자해하는 방법으로 사용했었다. 나는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 음식을 앞에 두고 먹어도 될까?라고 끊임없이 되묻기. 먹어도 되는 음식 먹으면 안 되는 음식, 이런 생각들이 나를 지배했고 나를 갉아먹었다.
나중에 가서는 허기짐에 중독되었고 음식에 대한 자제력을 잃으면 나 스스로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의 사진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 숨을 쉬고 있다고 다 살아있는 게 아니다. 나는 그때 죽어있었다. 그리고 다 쓰러져가던 삶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옆에서 도와준 가족들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극복하지 못했을 거다. 지금의 나는 다시 태어난듯하다. 그전보다 더 단단해졌고 밝아졌다. 흔들리기는 해도 무너지진 않는다.
작년 미국 여행을 갔을 때 살면서 처음으로 다양한 체형을 보았다. 옷 가게에 옷 사이즈가 2XS~4XL까지 다양하다니. 말 그대로 문화충격이었다. 뉴욕에서 40일 넘게 지내며 진짜 중요한 것은 내 겉모습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느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국에서 "살 빠졌다"가 칭찬으로 쓰이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외모 칭찬도 결국은 평가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 이젠 남의 겉모습을 가지고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새로 한 머리를 보면 "잘 어울린다" 그게 끝이다. 예쁘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이니 내가 절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진짜 내 친구들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내 겉모습을 가지고 먼저 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