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거짓말

by 가장자리

나에게는 딸이 한 명 있다.


제법 컸다고 뭐든지 혼자,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고 한다.


나는 매번 미처 예상치 못하게

그녀의 버튼을 눌러버리곤 한다.


분을 이기지 못하고 우는 얼굴을 지긋이 보다 보면,

딸이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


그녀가 태어난 날이 떠오른다.


나는 수술실에 누워있었고,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서 아기를 떼어냈다.


처음 들어본 목소리,

처음 본 주름지고 찡그린 못난 얼굴.


왜인지 모르게 계속 눈물이 났다.

내가 만들어버린,

새로운 생명에 대한 책임을 마주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딸에 대한 책임감은,

이상하게도 나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어졌다.


딸에게 못나고 부족한 엄마가 되기 싫었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예전 같으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야’ 하고 대충 넘기던 일도,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됐다.


딸에 대한 사랑은, 타인에 대한 개방으로 이어졌다.

‘이 사람도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생각에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아주 얇은 연결감을 느꼈다.


눈에 띄지 않아도,

그녀가 태어난 이후

나 스스로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 모습이 싫지 않았고,

삶이 조금은 더 풍요로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나 스스로를 변화시킬 만큼 딸을 사랑하고,

그녀에게 강한 책임감을 느꼈음에도,

오늘 당장 죽어도 아쉬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떠오를 때마다 내 마음을 괴롭혔다.

저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두고,

죽어버려도 괜찮다고 느끼다니.

도대체 이게 엄마 된 사람이 할 생각인가?


-


육아가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다고 죽을 만큼 힘드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워킹맘이었고,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녔고,

하원은 외부의 도움을 받았다.


힘든 게 문제가 아니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육아 시작이었다.

그리고 딸을 재우다 함께 잠들곤 했다.

다음날 아침에 같이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같았기에

오늘도 내일도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딸과 눈을 맞추고,

서로의 이마와 코를 비비는 그런 찰나의 순간들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렇지만 내 하루 중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


딸이 태어나기 전에는 꽃꽂이를 취미로 배웠다.

다양한 색과 모양, 크기, 높낮이.

이런 것들을 아름답게 배치하는 것이 즐거웠다.


당시에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회사 관두고 꽃집 차리고 싶다고 얘기했더랬다.


사람들과 식사를 하다 보면,

늘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퇴근하고 뭐해요?”

“취미가 뭐예요?”

“뭘 좋아해요?”


운동, 요리, 베이킹, 게임, 퍼즐…

각자 대답을 하고 나면,

나에게도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저요? 글쎄요.

예전에는 꽃꽂이를 배웠는데,

지금은 못하고 있어요. “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회사에서의 직급 외에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나를 뒤로 미루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나로 서 있을 곳이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딸을 얼마나 사랑할지는 선택할 수 있지만,

내가 없으면 딸을 사랑할 수가 없다는 것을.


-


사랑하기 때문에 멈추고,

사랑하기 때문에 거리를 둔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남긴다.


사랑이 충분히 커지고 나서야,

그 말이

내 삶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