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개월 된 딸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단연코 역할놀이다.
두 살 즈음부터 질리지도 않고 한다.
병원의 의사, 간호사, 환자
어린이집의 선생님과 친구들
마트의 직원과 손님
그 외에도 엄마와 아기, 엄마와 아빠, 언니와 동생…
순간순간 나에게 역할을 정해주고,
할 말을 알려준다.
“아니, 그게 아니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딸에게 쿠사리 맞기 일쑤다.
어떤 역할이라면,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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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놀이는
어른이 되어도 계속된다.
집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역할로 규정하고는 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배우자이고,
부모이고, 자식이며,
동료이고, 직원이고,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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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가장 어려운 역할은 무엇일까.
결혼 전에,
예비 시댁에서 식사를 했던 일이 떠오른다.
예비 시부모님, 예비 시누이, 예비 남편과 함께
예비 시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먹고 있었다.
“결혼하면 종교를 가질 거지?”
잠깐의 침묵 사이를 뚫고,
예비 시어머니는 내게 물었다.
“아뇨. 그럴 생각 없는데요?“
나는 예비 시어머니의 말씀이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라는 느낌에
적잖이 당황해서 오히려 단호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럼 우리 집안사람이 될 수 없어.”
예비 시누이의 말에,
화가 났다.
나는 종교를 가질 거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에 대해 질문받은 적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동의도, 거부도,
생각해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나한테 뭐라도 맡겨놓은 듯이 그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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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예비 며느리’라는 역할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며느리 될 사람이기 때문에,
사전 탐색이나 합의 없이
식탁에서 대뜸 입장을 요구받았다.
내가 며느리 될 사람이기 때문에,
‘종교를 가질 의사가 없습니다.’라는 말은
’예비 시부모님께 반기를 듭니다.’라는 정도의 말로
번역됐다.
내가 며느리 될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집안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어떤 위협처럼 작동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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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나는 시댁에서 침묵을 선택했다.
내가 그저,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으면
모두가 편안했다.
시부모님은
며느리가 진국이라던가,
마음에 없는 말은 안 한다던가.
그런 말씀은 종종 하신다.
하지만,
진심으로는 절대 하지 않는 말씀이 있다.
“며느리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래서 나는
생각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역할놀이는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