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명히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는데,
대화는 이렇게 끝나버린다.
“괜히 말했어.”
밥 먹다가 싸우기 일쑤다.
싸우면 늘,
남편은 내게 말한다.
“이기려고 하지 좀 마.”
“단어에 집착하지 좀 마.”
그러면, 나는 말한다.
“아니, 사실을 정확하게 합의하자는 거야.”
“그 단어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결론은 늘 같다.
“그만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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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3년 넘게 반복하면,
이내 침묵이 더 편한 선택지가 된다.
그리고 싸움을 만들었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반복된다.
결국, 그 상태가 누구에게 더 편한가의 문제다.
나는 불편한 쪽이었다.
그래서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날 존중하지 않아.”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겠어.
-
남편은 늘 내게
‘말 좀 예쁘게 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고마워.”
“수고했어.”
그냥, 당연한 일들에도
이런 말들을 붙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았다.
“말 좀 예쁘게 하면 좋겠어.”
반면, 내가 남편의 행동에서
불편하거나 싫은 점을 이야기하면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널 사랑해서 그래.”
날 사랑해서 그렇다는데,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
나와 남편은 정말 다르다.
이건 둘 다 알고 있었다.
가치관도, 생활방식도, 성격도
비슷한 점을 찾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남편은 몰랐다.
우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기로 결정한 건,
서로의 차이를 비용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란 걸.
반면, 나는 몰랐다.
그 비용을 두 사람이 나눠 지불하지 않아도
관계는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남편은 나를 ‘고쳐야 할 사람’으로 보았다.
나는 남편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았다.
우리는 같은 대화를,
전혀 다른 자리에서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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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순간부터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가사가 있다.
Loves all of you
Love your curves
And all your edges
All your perfect imperfections
나는 늘 내가 사회의 기준과 어긋나 있다고
느끼며 살아왔다.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남편만은
이런 내 모습도 ’perfect imperfection’으로
봐주기를 바랐다.
그 기대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3년이 넘게 걸렸을 뿐이다.
그래.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너는 날 존중하지 않아.”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너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너는 날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 중에
어느 쪽이 덜 아플지는 모르겠다.
다만, 숲을 숲으로 보고
바다를 바다로 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