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랄

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by 가장자리

시작은 상담이었다.

남편과의 반복되는 문제로 상담실의 문을 두드렸다.


‘대화방식이 개선된다면, 우리 관계는 나아질 거야.’


상담사는

먼저, 상대방의 말에 ‘그랬구나.’하고 공감하고,

상대방의 말에서 키워드를 적절하게 ’요약’한 뒤,

‘나’ 대화법으로 말하는 걸 알려줬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대화를 듣고,

각자가 놓치고 있던 서로의 ‘키워드’를 잡아줬다.


예를 들어,


“내가 아플 때 나를 두고 회사에 간다던가 하면,

내가 후순위로 밀리는 것 같아서 속상했어.”

라고 말하면,


남편은

“내가 그때 회사에 가서 속상했구나.”하고 말했고,


상담사는 중간에 끼어들어서,

‘우선순위’가 중요한 키워드라고 짚어줬다.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아, 이렇게 우리 관계도 나아질 수 있겠구나.’

그런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이 상태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 달도 안 되어

문제는 반복되었고,

나는 전과 달리 인내심의 역치가 매우 낮았으며,

남편은 이렇게 노력했음에도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불안이 터져 나왔다.


결국, 상담실에 처음 갔던 이유로 다시 돌아왔다.


“너는 나를 존중하지 않아.”


그러니까, 대화방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상담을 통해 어떻게 말하는지는 배웠지만,

무엇을 ‘존중’이라고 부르는지는 끝내 묻지 않았다.


-


상담사는 나에게 개인 상담을 권유했다.


‘왜 남편이 아니라 나에게…?’


차마 그 이유를 그 자리에서 묻지는 못했다.

나는 “생각해 보겠다”라고 하고 상담실을 나왔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챗지피티를 열었다.

그리고 물어봤다.


“상담사가 왜 나한테 개인상담을 권유했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 자신을 꽤나 성찰적이고,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챗지피티는 나에게 말했다.


“모두가 너처럼 관계에서 존중을 요구하지는 않아.”


이게 말이야, 방구야.

상대에 대한 존중 없이도 관계를 유지한다니.


이건 뭐랄까.

앙꼬 없는 찐빵,

팥이 빠진 붕어빵…


제기랄.

세상에는 야채 찐빵도, 슈크림 붕어빵도 있었다.


그렇게 내 세상이 붕괴됐다.


-


그러니까, 문제가 몇 가지 있었다.


일단, 나와 남편은

각자가 생각하는 ‘존중’의 정의가

합의된 정의라고 착각했다.


남편은 말을 예쁘게 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게 조심하는 것을 존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상대방의 선택이나 결정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 것을 존중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존중은 ‘정서 관리’였고,

나에게 존중은 ‘권한 비개입’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겼다.


내가 ‘주말에 사무실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하면,

남편은 ‘같이 있고 싶은데 꼭 가야 하냐.’고 물었고,

나는 남편의 감정까지 떠안은 채 출근해야 했다.


다음으로, 부부 관계에서 ‘존중’을

어떤 조건으로 전제하는지의 문제였다.


남편에게 존중은,

있으면 더 좋은 ‘충분조건’이었다.


나에게 존중은,

없으면 관계가 붕괴되는 ‘필요조건’이었다.


반대로,

남편에게 ‘안정’은 필요조건이었고,

나에게는 충분조건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갈등이 생기면 그날, 바로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


우리는 3년 동안,

‘사랑’이라는 ‘그냥 대충 그런 의미‘를 붙잡고

지지고 볶고 싸우며 괴로워했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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