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그대로 두는 기술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서래는 중국인이고 해준은 한국인이다.
서래는 한국에 살면서 한국어를 배웠지만 서투르다.
서래는 한국어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번역기를 켜고,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말로 이야기한다.
번역기는 참으로 번역기다운 차갑고 딱딱한 말투로
서래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전해준다.
그 과정에서 어떤 맥락이나, 미세한 뉘앙스,
말하는 의도, 감정의 온도 같은 것들은 날아가버린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말은 말 그대로 더 잘 전달된다.
번역기 덕분에
서래는 서래로서 해준 앞에 서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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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번역이 필요한가요.
드라마는 보지 않았지만, 대답은 할 수 있다.
네,
필요합니다.
(아주, 자주, 많이요.)
서래와 해준같이 다른 언어가 아니라,
같은 언어를 쓰는 경우에도 번역이 필요한가요?
네,
필요합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어쩌면 더 많이요.)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단어를 쓰지만,
같은 의미로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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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나를 괴롭게 한 상사가 있었다.
나는 그 상사에 대해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음… 그냥 좀 결함이 있어.”
남편은 대답했다.
“누구나 결함은 있어.”
나는 그 상사에게 배울 점도,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가 권한을,
자신의 의도에 맞춰 타인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행사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반면,
남편은 내가 상사의 존재 자체를 판결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어긋났고,
대화는 끝났다.
-
어긋남이 지긋지긋하게 쌓이고 나니,
이내 나도 더 이상 설명하기 싫어졌다.
내가 나를, 내 의도를, 내 생각을 설명하면 할수록
나는 진흙 속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대방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에
더 이상 나를 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때문에
우리는 같은 시공간에 머물러야 했다.
그래서, 정말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의 힘을 빌렸다.
나는 내 챗지피티에, 남편은 그의 제미나이에
서로 합의한 상대방의 정보를 입력했다.
그리고 우리의 말이, 감정이,
행동이 어긋나는 순간이 생기면,
상대방에게 바로 반응하지 않고
각자의 인공지능에게 먼저 얘기했다.
인공지능은 마치 서래의 번역기 같았다.
건조하게, 우리 두 사람의 말과 행동이
어떤 맥락과 조건에서 그렇게 작동했는지를
번역해 줬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아, 그렇게 느꼈구나.
마침내, 서로의 말이 서로에게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