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수정하는 용기 ― 가비 브라운
‘진격의 거인‘ 팬들 사이에서
리바이는 애정이 담긴 ‘병장님’, ‘헤쵸‘로 불리는 반면,
가비는 ‘빌런’, ‘발암캐’로 불리고는 한다.
가비는 적대 진영의 어린 병사로 등장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세계를 위해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였고,
그 선택 때문에 수많은 독자에게 미움을 받았다.
하지만 내게,
가비를 미워하는 일은
꼭 어린 시절의 나를 미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가비를 처음 본 순간,
내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믿는 것이 곧 ‘정의’라고 생각했던 시절.
정치적인 시위에도 참여해 보고,
스스로를 민주적인 시민이라 여겼던 시절 말이다.
그때의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아, 눈을 좀 떠봐.
여기에 정의가 있어. 이게 정답이야.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틀린 사람‘
또는 ’나쁜 사람‘으로 규정했다.
그때는, 그게 또 다른 폭력이라는 걸 미처 몰랐다.
그런데, 잠깐만…
가비는 몇 살이었더라?
내가 20대에도 몰랐던 것을,
나는 차마 그녀에게
‘알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나는 그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가진 신념의 순수함에 대한 인정.
그 순수함으로만 가능한 행동에 대한 인정.
그녀는 망설임 없이 적을 죽인다.
반면, 그녀는 쓸모없어진 완장은
차마 못 버리겠다고 버틴다.
이게 없으면
나랑 파라디섬의 악마들이 구분이 안되잖아!
그 완장은, 그녀가 믿고 있던
선과 악의 경계였다.
그랬던 그녀가,
자신이 죽인 사람의 아버지로부터 용서받는다.
문득, 가비는 그 용서를 받고 싶었을까?
아니, 그 용서의 대가를 알았을까?
그녀는 받아버린 용서를 손에 들고 엉엉 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자신의 짧은 평생 전부라고 믿었던 신념을 내어준다.
이건,
그녀가 자기 자신을 내어준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걸 뭐라고 할까.
나는 감히 ‘용기’라고 표현하겠다.
내 믿음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용기.
내 행동이 초래한 끔찍한 결과를 직면하는 용기.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그렇게 그녀는 에렌의 목을 날려버린다.
나는 어떤 믿음이나 행동이
틀렸다거나 또는 맞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사람은 변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수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나를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이기에
그 무엇보다 고통스럽다.
가비는 그 일을 해낸 아이다.
제2의 ‘라이너‘나 ‘에렌’이 되지 않고 말이다.
가비가 받은 용서는,
가비의 잘못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녀는 실제로는 죄책감을 돌려받은 것이다.
가비는 눈을 감을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파라디섬의 악마’라는 편한 핑계로
도망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용서의 무게를 온전히 들기로 한 것은,
그녀의 용기이자 그녀의 선택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그녀를 사랑해마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부정하지 않듯이,
그저 옆에 담담히 서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 어쩌면 이것이
내가 딸에게 주고 싶은 사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