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할 수 없는 선택

도저히 답을 모르겠어서

by 가장자리
리바이는 왜 엘빈이 아닌
아르민을 살렸을까?



진격의 거인 속 답 없는 질문들 속에

내가 끝끝내 놓지 못한 질문이다.


조사병단의 일개 단원인 아르민이 아니라

단장인 엘빈을 살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임은 차치하더라도,


어쩌면, 엘빈도 살고 싶지 않았을까?

리바이가 왜 엘빈의 의지를

대신 판단하고 선택한 거지?


이걸 ‘사랑’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폭력적이고,

‘인간적‘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오만하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잠시 내려두기로 했다.




리바이는 엘빈을 사랑했다.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늘 그의 옆을 지켰다.


엘빈의 가장 깊은 욕망을 알게 되었을 때도,

리바이는 공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을 테지만

이내 욕망을 가진 엘빈을 받아들이고 말한다.


나는 너를 여전히 신뢰한다.




리바이의 ‘인간적인 면모’는

여기서 드러난다.


엘빈이 부재한 상황에서 “나는 여기까지 밖에 모르겠다”라고 인정하는 솔직함

엘빈의 목숨이 걱정되는 나머지 전투에 나가지 않도록 설득하는 낯선 모습

혹시, 엘빈이 살아있을 가능성에 바로 짐승거인의 숨통을 끊지 못하는 주저함

반사상태의 엘빈을 보자마자, 아르민을 살리려 했던 선택을 철회하는 냉정함


이 순간들에서

리바이는 강한 영웅도,

합리적인 인간도 아니다.


그저 누군가를 의지하고,

놓지 못하는 한 사람의 인간이다.


그의 진심이 너무 느껴지는 나머지

나는 차마 그의 선택을

‘사랑‘이나 ‘이해’로 덮지를 못하겠다.




엘빈은 전투의 승패와

조사병단 전원의 목숨이 걸려있는 순간에도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런 엘빈을

인류의 희망이라 불러도 될까?


인류의 승리를 위해

엘빈이 필요하다는 말은

또 다른 욕망이 아닐까?


아마도 리바이는 끝끝내

모른 척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엘빈이 인류의 희망이어야만 하는 것은 어쩌면

엘빈을 살리고 싶은 자신의 욕망일 수도 있다는 것.


엘빈은 이미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고

죽기를 선택했었다.


그는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욕망의 노예에서 스스로 해방된 것이다.


내 욕망을 이유로
타인의 선택을 대신할 수 있는가?

그래서 리바이는 그저

자신의 욕망을 접고

엘빈의 선택을 존중하는 결정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리바이는

아르민을 살린 것이 아니라,

엘빈을 보내준 것이다.


리바이는,

“왜 나를 살렸나”하는 아르민의 물음에

“나는 엘빈이 죽을 자리를 선택했다.”라고 답한다.




엘빈이 떠난 자리에는

리바이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리바이는 프록에게

엘빈 대신,

엘빈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엘빈이 다하지 못한 책임을

자신의 선택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이 모습마저 그는 참 일관적이다.


리바이는

인류 앞에서도, 사랑 앞에서도

스스로를 배신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리바이는

영웅이나 인간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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