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는 선택 ― 리바이 아커만

by 가장자리

많은 사람들이 리바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는 완벽한 사람도,

정의로운 사람도,

착한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다.




리바이의 표정은

그가 어떤 상태로 세상을 견디고 있는지

말해준다.



피곤하다.

신경이 곤두서 있다.


왜 그랬을까.


그가 남긴 유명한 말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후회하지 않을 쪽을 선택해라.

리바이는 알고 있었다.


절대적으로 옳은 선택은 없음에도

선택을 피할 수 없으며,

그 결과와 책임은

오직 선택한 사람의 몫이라는 것.


그래서 선택은,

다른 누구도 아닌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조사병단의 이인자가,

여성형 거인과의 사투 중에,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의 목숨이 걸려있음에도,

그 선택을 신병 에렌에게 되돌려준다.




혹자는 이걸 결정을 회피하는 것으로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리바이의 전제는 분명하다.


상대를 나와 동등한

선택의 주체로 존중하는 것.


그리고 내가 그 결과를 대신 감당할 수 없다면,

권위로 그 선택을 빼앗지 않을 것.


에렌은 그 상황에서 ‘거인이 되기’보다

‘동료들을 믿기’로 선택한다.

그리고 리바이반 동료들은 모두 죽는다.


만약 에렌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의 결과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에렌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리바이는 수많은 죽음과 후회 속에서

‘후회 없는 선택’을 살아낸 사람이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참, 역설적이다.

후회가 없기 때문에

‘후회 없는 선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너무 깊은 후회를 견뎌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 그의 표정은 말한다.


”더 이상 후회하고 싶지 않아.“


그럼에도,

“후회할 수밖에 없다면, 내가 선택할게.“


그는

자신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감당할 것인지를

선택할 뿐이다.




선택의 무게를 견뎌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선택도 존중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사람이다.


엘빈이 조사병단에 “심장을 바쳐라”라고 할 때,

리바이는 “죽지 마라”라고 말한다.


한지가 에렌의 거인화 실험 결과에 흥분할 때,

리바이는 먼저 에렌이 괜찮은지 확인한다.


부하에게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을

의식적으로 잊지 않는다.


그가 엘빈을 살리지 않은 순간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의 태도는 이런 사소한 장면에서 새어 나온다.




리바이 불쌍해.


그는 엘빈이나 한지 같은,

영혼까지 신뢰하던 동료들을 모두 잃었다.


그는 아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그저 장애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세상은 그에게 남겨준 것이 거의 없었다.


아무 보상도 없는 그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는 도저히 리바이처럼 살 자신은 없다.


하지만 분명히 남아있는 것이 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아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적어도 나는, 나를 끝까지 배신하지 않았다.


리바이는 그렇게

자기 자신과 함께 남아 있다.


그리고 이 감각이야말로

그가 잔혹한 세상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힘이고,

스스로에 대한 깊은 혹은 변하지 않는 만족감이며,

우리가 흔히 ‘삶의 의미’라고 부르는 것일 거다.


이것만은,

세상이 절대 리바이에게서 앗아갈 수 없다.


그는 행복한 사람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나는,

그를 불쌍하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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