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가 끝난 자리에서

우리는 왜 여전히 자신을 증명하려 하는가

by 가장자리

슬프게도, 인간에게는 급이 있다.


수능 시험은 학습능력을 기준으로 1~9등급,

회사에서는 성과를 기준으로 S~D급,

보유한 자산을 기준으로는

0.01% 포인트까지도 세분화된다.


이 모든 등급을 묶는 키워드는 ‘생산성’이다.


사회는 우리를 시험한다.


”너는 남보다 더 생산적이니?“


남들보다 더 많은 영어 단어를 외우고,

남들보다 더 회사의 매출에 기여하고,

남들보다 더 자산을 잘 굴릴 수 있는지 묻는다.


비교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는

모두가 동일하게 24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어쩐지 내 시간은 남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설명하기 어려운 패배감에

‘그래도 얘보다는 내가 낫지 않냐’며 자위한다.


그런데 아뿔싸.

‘인공지능’이라는 놈이 나타났다.


-


이 놈은 마치,

조기축구장의 ‘손흥민’이나

지역축제의 ‘장원영’이나

대학 독서소모임의 ‘한강’과도 같다.


비교하는 순간, 승패는 결정되어 있다.


솔직하게,

내가 지금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의 대부분은

인공지능이 나보다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할 거다.


“인공지능을 업무에 이렇게 활용하세요.”


왜? 인공지능이 하면 되는걸.


-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면,

그 옛날 기계를 부쉈던 사람들처럼

데이터센터를 부숴볼까?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떠오른다.


“알파고 걍 망치로 깨부수면 끝.“


그런데…

그건 세돌이도 마찬가지 아니냐?


-


막다른 골목처럼 느껴진다.

지금처럼 인간을 생산성으로 정의한다면 말이다.


인간은 더 이상

생산성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어렵다.


인공지능 앞에서

인간들 사이의 차이는

너무나 사소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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