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독서 전투 에세이
2013년 고려대 화공과 김용준 교수님께서 번역해 주신 책으로 처음 읽어 보았다. 독일어 스터디 모임에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자서전을 번역했고, 책으로 출간까지 하게 된 것이다. 내용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한 번은 다시 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2021년 클럽 하우스의 독서모임을 통해 다시 읽어 보았다. '정식 한국어판'이다. 전문 번역사의 느낌이 물씬 느껴지고, 감수의 흔적도 보인다. 독자로서 읽기가 편해졌다.
이번 독서에서도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참고로 저자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는 1901년에 태어난 원자 물리학자이다. 이번 독서에서는 철학, 세계 패권의 변화, 과학자의 역할 부분이 머릿속에 남았다.
책의 시작과 마무리는 플라톤의 철학을 논의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철저히 철학적 사유에 의해 과학적 접근을 했다. '플라톤의 이데아'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동굴 속에 그림자로 표현할 수 있다. 즉 실재하는 것은 동굴 밖의 있는 무엇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그것이 투영된 그림자이다. 실재 (현상의 본질)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사유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젠베르크는 수학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삼각형 내각의 합이 수학적으로 180도임을 알고 있다. 우리 머릿속(관념 속)에 그려지는 삼각형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내각의 합을 180도로 그리기는 매우 어렵다. 아무리 정교한 기계장치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미세 구조를 확인해보면, 미세한 오차는 존재할 것이다. 즉 우리는 '실재'를 볼 수 없고, 머릿속의 상상만으로 삼각형을 볼 수 있다. 즉 수학적으로 실재에 접근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으로 하이젠베르크는 원자의 기본단위와 그것의 형태를 유추한다. 불확정성의 원리이다. 우리는 미시세계에서 물체를 관찰하고자 할 때 그것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높이게 되면 (관측 파장을 낮게 하면), 높인 에너지는 물체의 위치에 영향을 주게 되어 운동량이 변하게 된다. 반대로 운동량을 파악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낮게 하면 (관측 파장을 높게 하면), 우리는 물체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놀라운 사유의 결과물이다.
저자의 글에는 과학적 사유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시대상을 볼 수 있다. 2차 대전 전후의 시대이기 때문에 극적으로 느껴진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세계 패권의 변화가 느껴진다.
1900년대 초반 독일은 과학 분야의 선두 국가였다. 하이젠베르크는 독일 뮌헨대학에서 학위를 마친다. 이후 강연할 기회가 생겨 미국으로 가게 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신세계이다. 미국의 연구자들은 좀 더 실용적인 것을 추구했다. 유럽에서는 상보성의 원리와 같이 정확해 보이지 않는 과학적 원리는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유럽인이 보기에 1900년대 초반 미국은 오늘날 실리콘 밸리와 같이 자유가 넘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2차 대전 중 독일의 원자폭탄 연구를 이끈다. 그러나, 원자폭탄은 미국이 먼저 개발하게 되고, 독일은 패망한다. 핵분열에 대한 개념은 독일은 오토 한, 리제 마이트너 등 그의 연구진들이 먼저 발견했을지라도, 최종 산출물은 미국이 먼저 앞서 나간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고, 하이젠베르크는 시카고에서 페르미를 만나고 올 기회가 있었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가는 배에는 제법 사람들이 있었지만, 돌아오는 배에는 거의 사람이 없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미 사람들의 이동은 일어나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이동이 미국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냈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디로 모이고 있을까?
전쟁 직후 하이젠베르크와 그의 동료들은 연합군에 체포된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팜홀로 이동하여 조사를 당한다. 그곳에서 과학자들은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 소식을 듣는다. 핵분열을 발견한 오토 한은 매우 침통해한다. 그럼 과학자로의 역할을 무엇일까?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오토 한이 없었다면, 아무도 핵분열을 발견할 수 없었을까? 아인슈타인이 없었다면, 질량 변화가 에너지로 변한다는 상대성 이론을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아인슈타인이 아니어도 로렌츠 등에 의해 얼마든지 상대성 이론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고, 핵분열도 페르미 등에 의해 밝혀졌을 것이다. 과학은 큰 흐름을 갖고 발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 생각에 과학은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동시에 만들어 내기도 한다. 플라스틱 활용이 대표적 예이다. 플라스틱을 소재로 사용한 이후 인류는 가볍고, 저렴한 소재를 다양한 곳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에 적용되면서 무게가 줄어들고, 연비를 늘릴 수 있게 되었다. 플라스틱 병도 저렴하고, 가볍게 활용할 수 있어서,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플라스틱은 부패하지 않는 단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활용되지 않으면 쓰레기로 쌓이게 된다.
이러한 과학의 양면성 때문에, 우리 모두 범 지구적 책임감을 갖고, 상호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무리하며,
책에서 다양한 지명이 나온다. 로드무비를 보는 느낌이다. 지도가 별첨 부록으로 추가되면 독자로서 너무나 좋을 것 같다.
글에서 하이젠베르크가 케임브리지 카번디쉬를 가보았다고 서술한다. 책에서는 카번디쉬라고 표현했지만, 영국에서 발음은 캐번디시로 표현한다. 현재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Cambridge Cavendish) 연구소는 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존에 있던 연구소는 구 캐번디시 (Old Cavendish)라고도 하고, 현재는 재료과학과 (Department of Material Science and Metallurgy)가 있는 장소이다. 필자가 석사 시절 수업을 받고 실험을 했던 장소이다. 그곳의 공기가 그리워진다.
언어의 유한성이 떠오른다. 예를 들어,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원리를 언어로 표현하는 데 한계를 보일 것이다. 수학이 자연과학을 서술하는 언어일 텐데,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전환하는 것도 또 하나의 도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빛의 물리학,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