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슬픈 이별 식

아버지를 떠나보내다 2.

by 미카

2남 4녀에 손자손녀 증손까지

연세도 88세이신 어르신의 부고장을 받는다면 그래도 호상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의 마지막은 그리움이었다. 증여로 인한 갈등으로 당신의 전부였던 아들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병실에서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섬망증상에서도 아버지는 아들들을 보고 싶어 하셨지만 끝내 오빠들은 병실을 찾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모든 게 큰언니의 지시 아래 차근차근 이루어졌고 오빠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임하신다는 느낌이었다.

실제적으로 계산부터 사소한 일처리는 막내인 내가 진행하고 오랜만에 보는 올케 언니들과 조카들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사촌이면 정말 가까운 사이인데 아이들은 부모들의 갈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큰소리가 나기도 했지만 큰언니가 말씀하셨다.

"아버지 보내드리는 길이다. 해달라는 게 있으면 해 주고 절대 큰소리 내지 말자"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도 모셔와서 아버지 가시는 길 봐야 하지 않냐는 의견에 엄마를 모셔왔다.

친척분들이 오셔서 엄마한테 인사하지만 엄마는 그냥 웃기만 하셨다. 기억에 없으신 거다.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시더니

"니 아부지 죽었어? 응? 죽어라 일만 하고 고생만 했는데 불쌍해서 어떡하냐"

하시며 대성통곡을 하셨다.

그래도 아부지는 엄마가 인정해 주신 인생이시니

100점 만점 인생이시다.

"제 큰아이 아녀? 우리 큰아들인데 "

북적북적 손님들에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엄마의 눈에는 큰오빠만 보이신 거다. 오빠한테 가서 엄마 좀 아는 체 하라고 해도 싫으시단다.

얼마나 보고 싶은 아들이었는데 야속하기만 한 시간이었다.


내일이 발인이고 늦은 밤.

돈통 정산과정에서 결제할 금액이 필요해서 잠깐 통을 열고 일부정산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오빠들 관련자(자녀들)가 없었다는 이유로 순식간에 돈을 빼돌리는 파렴치한이 되어있었다.

상황설명했고 추후 정산과정에서 오빠들 자녀들이 함께해서 현금과 봉투 금액이 맞는 걸 확인하고서야 큰소리가 잦아들었다. 후 ~~~ 무섭다.


한쪽 테이블에 6남매가 모였다.

서로의 서운함이 오고 갔다.

본인들 자녀 결혼식에 오지 않아서 서운했고

우리가 본인들 세금 더 내게 하려고 했다는 억측의 소리도 했다. 큰언니가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왜 오빠들은 아버지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는데

안 오셨냐고. 얼마나 아버지가 기다리셨는지 아냐고. 다들 말이 없었다.

서운함은 그동안의 추억으로 상쇄된다.

그동안 큰소리 낸 거에 대해 막내인 내가 먼저 사과를 하고 나의 서운함을 이야기하고 나름

어려서의 추억이야기에 맘속에 서운함을 조금씩 풀어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꼬박 밤을 새우고 새벽 아버지 연도하는 자리에 6남매가 처음으로 함께 앉아 아버지를 추도하고 큰오빠가' 아버지 앞에서 죄송합니다.

이제 동생들 잘 챙겨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사죄하는 모습에 나름 안도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장지로 떠나면서 금전적으로는 정산 후 500만 원 정도 남는데 어떡할까요?

오빠들에게 물으니 육 남매 통장 만들어서 넣어 놓으란다. 모여서 밥도 먹고 하게. 헐 ^~~


"언니들 오빠들이 이제 모임도 하고 해서 돈을 모아놓으래" 언니들은 깜짝 놀랐다. 오빠들이 하자고 하면 그렇게 해. 그대로 장례식이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열심히 모임통장 만들고 초대하고 한 수고가 부끄럽게 그다음 날 작은오빠의 카톡에 우리는 경악을 했다.

내 손님이 많이 왔고 다 통장보다는 현금을 냈으니

남은 돈 500만 원은 다 본인 꺼라 본인이 가져가야 된다고 ㅠㅠ

본인에게 들어온 이름과 금액을 공유하니

공유한 이름 중에 다른 형제의 손님이 있어

그래요 계산해 봅시다. 저녁 내내 다들 봉투계산에 돌입했고 각자 들어온 돈에서 경비를 동일하게

나누어 계산한 작은 오빠. 들어온 봉투대로 밥 값계산을 해서 빼야 된다는 나의 계산차로

남은 돈에서 200만 원을 작은오빠 나머지는 딸들 몫.

큰언니도 200만 원이 넘게 가져가는 걸로 계산되었지만 그냥 딸들 계좌로 넣으라 하셨다.

육 남매 모여서 다 풀었다 생각했는데 집에 가서 배우자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바뀌었보다.

올케 언니들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얼마나 좋은 날 이었을까. 시댁도 안 챙기고 좋은 날이었는데 갑자기 하하 호호 모임도 하자. 엄마 요양비도 함께 내자 하니 얼마나 싫었을까. 이해가 간다.

장례식 이후로 오빠들을 본 적이 없다.

여전히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를 찾아오지 않으시고

큰오빠만 한번 면회 오셨다고 하신다.


공동명의로 인한 임대관련 해서만 통화하고 톡만 한다. 이 인연도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넘보다 못한 형제에 이젠 화도 안 나고 그냥 오빠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 남매 모여 이야기할 때는 참 외로우신가 보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갑자기 맘을 다 잡으셨나 보다.

그려요 오빠들 부자 되셔요.

우리들은 그래도 엄마랑 행복합니다.


작가의 이전글#18.마지막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