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떠나보내다.1
더 이상 치료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 요양병원에 아버지를 모신 그 주 주말에 조카들을 비롯하여 모두 모여 면회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 큰언니에게 아버지가 위독하시니 얼른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도착하니 조카들까지 모두 와 있었다. 방 한편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란다.
깡마르신 얼굴에 아버지는 눈을 감고 계셨다.
손을 잡아드리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리니 눈물만 흐르고 아이들도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언니들과 오빠들에게 연락을 할 건지
같은 병원에 계신 엄마에게 아버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지 상의를 했다.
'후회할 일은 하지 말고 우리 할 도리만 하자'로
엄마도 모시고 오빠들에게 연락도 하기로 하였다.
대학병원에서 아버지가 위중하시고 오빠들을 많이 보고 싶어 한다는 메시지까지 보냈는데도 안 오던 오빠들인데 임종하신다고 오실까?
대표로 내가 전화를 했다. 수신거부
딸들 모든 전화는 거부되었나 보다. 최근에 번호가 바뀐 폰번호로 작은오빠에게 전화를 하니 처음에는 안 받다가 콜백이 와서 아버지의 상황을 말했더니 온단다. 큰오빠에 거 연락도 한단다.
그래. 온다니 다행이네.
병실에서 내려온 엄마는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시고는 니 아버지 왜 이렇게 누워있냐고 되물으시고
"이봐요 나여요. 대답 좀 해봐요."
자꾸 아버지를 채근하셨다. 그래도 전혀 반응이 없던 아버지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움찔움찔하시는 게 엄마인 줄 아시는가 보다. 온전한 이별도 힘들게 하는 치매라는 병은 슬픔인 것 같다. 늘 아들바라기인 엄마는 사위들에 조카들까지 다 있는데 왜 아들들은 없냐고 하시며 아들들을 찾으신다.
엄마의 이런 마음을 오빠들은 왜 모를까?
아버지께 귓속말로 말씀드렸다. 지금 오빠들 오고 계시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힘겹게 힘겹게 버티시며 아버지는 오빠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았다. 작은오빠가 도착하고도 한참이 지나도 큰오빠는 아직이지만 아버지가 정말로 기다리시는 사람은 큰오빠인 것 같았다.
신기하게 큰오빠가 1층에 도착하여 2층으로 올라오는 사이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아마도 큰아들의 건강함을 아버지는 보셨을 거고 안도를 하시며 먼 길을 떠나신 게 아닌가 싶었다.
아버지 고생 많으셨어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례절차 등은 실제상황
모든 게 현실이었다. 다행히 언니들과 미리 상의해 놓은 대로 진행하게 되었다.
천주교식 장례
장지는 공원묘원으로
상조는 딸들 가입된 곳으로
아버지의 임종은 봤지만 오빠들은 아우사이더.
우리가 상의한 대로 진행에 대해 말했은 때 별 말이 없었었다. 주도하기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주도적 진행은 장례식장에서 오빠들과의 트러블의 빌미가 되었다.
악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작년 9월 말에 아버지를 떠나보냈는데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리 효녀도 아니었던 나인데도 아버지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병원에서 하루 간병하면서 아버지가 주사기를 마구 빼시는 걸 보고 아버지 팔을 잡고 짜증 냈던 내가 생각나 아버지께 죄송했다. 아버지 정신 온전하실 때 한마디라도 더할걸 후회도 되고. 이제야 추슬러본다.
아버지를 잘 보내드린 장례식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우리만의 생각.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