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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우 Dec 24. 2020

크리스마스 '츄리'

    날이 한층 쌀쌀해지고 겉옷을 하나 더 챙겨 입어야 하는 계절이 다가왔다. 눈이 곧 올 것만 같은 흐리고 축축한 바깥을 바라보며 실내에 앉아있을 때였다. 


“엄마도 크리스마스 츄리 하고 싶다.”

“엄마 그거 싫어했잖아.”

“안 싫어했어. 그땐 살기 팍팍해서 그랬던 거지.”


    곧장 핸드폰을 켜고 빨간 장식이 잔뜩 달린 트리 하나를 주문했다. 우리 집도 드디어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한다는 생각에 두근거렸다. 하지만 막상 택배가 도착했는데 엄마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알아서 예쁘게 꾸며봐라.” 라며 뒤돌아서는 엄마를 보고 ‘역시 안 좋아하면서…’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트리를 조립했다.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펴준다. 장식은 먼저 전체 개수와 사이즈를 확인한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전체적인 균형을 맞춰 달아 준다. 맨 상단은 역시 별을 달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S자를 그리며 전구를 배치하고 불을 켜주면 완성이다. 


    우리집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는 일종의 금기어였다. 철없던 막내딸이던 내가 엄마 아빠에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하고 싶다고 졸랐다가 혼쭐이 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던 단어였다. 혼이 난 게 서럽고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던 마음은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가슴 한편에 상처처럼 남아 있었다. 


    옛 기억을 떠올리며 트리를 장식하는데 엄마가 다가왔다. 


“엄마 트리 예쁘지?”

“응. 너무 좋다. 너무 예쁘다.”

엄마의 눈빛이 소녀처럼 반짝였다.

“엄마 우리 어릴 땐 왜 이거 안 했을까?”

“그때는 우리가 많이 어려웠어. 사는 게 팍팍하고 힘들어서 너랑 언니가 하고 싶다고 해도 못 해주는 게 많았어. 나중에 이렇게 후회가 될 줄도 모르고. 그때 다 해주고 살걸. 이렇게 예쁜데…”


    눈가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서운했던 내 상처만 되새기느라 정작 엄마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다. 하고 싶은 걸 거절당한 기억만 내 상처라고 생각했다. 가난 때문에 자식들이 바라는 것을 해주지 못한 엄마의 상처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릴 적에도 엄마는 자식들에게 못 해줘서 미안했고, 지금도 그것이 후회가 되어 미안하다고 한다. 엄마는 늘 더 해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한다. 그것이 엄마의 사랑이었다. 남들 앞에서 입 바른말, 어른스러운 말을 잘도 내뱉던 내가 엄마 앞에서는 늘 철없고 나 밖에 모르고 욕심 많은 응석받이가 되어 버린다. 


“엄마 우리 그동안 못 해본 거 다 해보면서 살자. 크리스마스 '츄리'처럼.”


    반짝이는 전구와 화려한 장식이 달린 ‘첫 크리스마스 츄리’를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은 여전히 소녀처럼 빛이 난다. 오늘의 엄마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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