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과 백일홍을 만나다
그라나다에 와서 끝까지 알람브라 궁전을 가보지 않았다는 어떤 괴짜 작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때는 이상하게 여겼으나 막상 알람브라 궁전을 방문하는 날이 되니 그 마음이 수긍이 갔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같은 기타 곡을 탄생시킬 만큼 영감을 주는 장소를, 여러 블로그에서 그토록 찬란하게 등장하는 궁전을 직접 두 눈으로 본다는 것은 마음 설레는 일이다. 그런데 왠지 부담스럽기도 하고 기대가 커서 실망하게 될까 봐 걱정스럽기도 했다.
나스르 궁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맛있고 화려한 음식을 짧은 시간 내에 먹어야 하는 일과 흡사해서, 한나절을 보냈지만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하다.
천국의 꽃이라는 뜻의 아라야네스 중정과 그곳의 연못, 코마레스 탑, 대사의 방과 발코니는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서 겉돌며 지나갔다. 언젠가 다시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데 도대체 죽기 전에 다시 올 수 있을 것인지?
사자의 궁전에서는 오래전『알람브라 이야기』를 쓴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을 생각했다. 이곳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궁 안의 어느 방에 머물며 사자의 샘 옆에서 종종 정찬까지 들었다니! 그런 호사가 어디 있는가? 열두 마리 사자가 받치고 있는 원형 분수 주위를 맴돌며 나는 어빙을 부러워하느라 제대로 감상을 못한 것 같다. 우리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정해진 시간 내에 지나가야 했으니까.
아벤세라헤스의 방과 두 자매의 방에서는 천장을 뒤덮은 무수한 종유석 모양의 모카라베 장식에 매료되었다. 빼어난 문양으로 가득한 공간이 무시무시한 옛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어서 기분이 묘했다. 이토록 매혹적인 방에서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무수한 남자들이 역적으로 몰려 참수형을 당했다니….
두 자매의 방은 이름에 걸맞게 예쁜 창문으로 환하게 알바이신 지구 정경이 들어왔다.
왕의 방에서는 천장에 그려진 열 명의 술탄을 쳐다보느라 목이 아팠다. 많은 성당과 박물관에서 계속 그리스도교 성화만 보다가 기다란 검을 차고 터번을 두른 아랍 왕들의 그림을 보니 독특한 감흥이 일었다.
나스르 궁에서 나와 파르탈 정원에 이르러서야 모든 감각이 놀람에서 벗어나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듯했다. 연못에 비치는 귀부인의 탑에 마지막 안녕을 고하고, 사람들이 별로 없는 한적한 쪽 정원을 걷기로 했다.
여름 궁전 헤네랄리페로 가는 길에는 석류나무, 감나무 등 다양한 나무와 꽃이 심겨 있고 중간중간 높이 솟은 탑이 있었다. 그중에는 세 공주의 전설이 얽힌 탑도 있는 것 같았다. 그 옛날, 공주들이 아버지 술탄의 명을 거역하고 이교도 청년의 사랑을 따라 숨 막히는 도주 행각을 벌인 곳. 열정적인 공주를 기리듯 유난히 장미가 많았다. 주홍, 진노랑, 흰색 장미들은 시월인데도 싱싱하고 향이 살아 있었다.
“여러분 제네랄라이프가 아닙니다.”
한 무리의 서양 사람들을 이끌고 지나가는 가이드 음성이 귀에 들어왔다. 나도 처음에는 헤네랄리페를 영어식으로 제네랄라이프로 읽었었다.
아래쪽 저지대에서 한 농부가 열심히 괭이질하며 수확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가 주렁주렁 모으는 것이 호박 비슷하나 한국에서는 못 보던 종(種)이라,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한 동생이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 사람이 영어를 모르는지 우리 얼굴만 빤히 쳐다보자 옆에서 어느 남자 관광객이 스페인어로 다시 물었다. 그것은 에스파냐 가지라고 했다. 통통하며 투박한 연녹색 가지라니? 보랏빛으로 매끈하게 예쁜 우리나라 가지가 새삼 자랑스러웠다. 그 밭은 옛날에도 궁에서 쓰는 채소를 경작했다고 한다.
헤네랄리페 정원에 거의 다다르니 코스모스와 일 년생 백일홍이 나를 반겼다. 한국에서의 모습 그대로여서 정겨움이 느껴졌다. 청록색 씨프러스 나무를 지나 사람들을 피해서 갓길로 들어섰을 때 담벼락을 보고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벽을 덮은 덩굴 식물사이로 남색 나팔꽃 봉오리가 여기저기 방긋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온 벽에 가득한 모닝 글로리였다. 서울에서도 나팔꽃을 그리워하며 살았는데 이곳에서 조우하다니.
헤네랄리페 가는 길 시프러스 나무옆의 백일홍
카를로스 궁전을 보기 전에 잠시 함 숨을 돌리려고 벤치에 앉았다. 옆에서는 한 부부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후두두둑! 갑자기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떨어져서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꽤 알이 큰 밤송이들이었다. 함께 공격받은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까르르 웃었다. 밤은 꽤 크고 딱딱해서 머리에 맞았더라면 정신이 아찔할 뻔했다. 동생은 옆 부부와 밤나무에 이어 다른 이야기꽃을 피워가고 나는 세계의 온 인종이 모인 것 같은 관광객을 구경했다. 차도르를 쓴 아랍 여인들도 있었다. 이 무어인의 후손이 지나가면 그들의 표정을 눈여겨보았다. 그들은 알람브라에서 어떻게 느낄까 생각하면서. 조상들이 이 같은 건축미의 극치를 창조했다는 자부심일까? 그것을 빼앗긴 슬픔일까?
** 코로나가 유행하기 직전의 10월, 동생과 함께한 2주간의 스페인 여행 중 이틀간 머무른 그라나다를 회고하며.
여행사들의 광고는 뜨겁고 여기저기서 들 떠나느라 한창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우선 글쓰기로 추억 여행을 떠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