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다의 기타리스트

누에보 다리의 추억

by 램즈이어

스페인에서는 거리의 악사들을 많이 만났다. 바르셀로나의 지하철 환승 통로에서 내 취향의 기타곡이 들리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지하의 구석 자리지만 미소 지으며 기타를 켜던 소박한 중년 남성에게서 정겨움 마저 느꼈다. 마드리드의 솔 광장에서는 현악 합주 팀을 만났다. 큰 몸짓으로 열정을 드러내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주목하다가, 첼로 쪽으로 넘어가니 뭔가 이상했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첼로 주자는 곡을 건성으로 따라가며 활 긋는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닌가? 일명 활싱크.

으뜸가는 연주는 뜻밖에 산악지대 론다에서 만났다. 동생과 내가 뒤편에서 협곡을 보려고 누에보 다리를 건넜을 때 경치보다 공터의 기타 듀엣이 먼저 시선을 끌었다. 삼, 사십대로 보이는 두 남성은 빡빡 깎은 머리에 청바지와 스키니 차림으로 비틀스의 <헤이 쥬드>와 에릭 크랩튼의 <티어즈 인 헤븐>등의 곡을 이어갔다. 경쾌히 기타 줄을 튕기는 한 사람의 팔은 털이 수북했고, 다른 이는 마치 청 무늬 스카프를 두른 것처럼 흰 살결 위로 푸른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소리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선글라스를 낀 포즈도 세련되어 마치 프로 기타리스트가 야외 음악회를 열고 있는 듯했다. 그늘진 쪽이라 선선해서 사람들이 점점 모이며 앞에 놓인 기타 케이스에 동전과 지폐가 쌓여갔다.

타호 협곡은 몹시 깊어서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줄기를 확인하려니 아찔했다. 조금 더 가면 다닥다닥 붙은 하얀 집들 가운데 헤밍웨이가 집필했던 곳이 있다는데 별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때는 이곳이 어떤 영감을 주었을지 모르겠는데, 이제는 여기저기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니.

한쪽 돌바닥에 앉아서 계속 재즈를 듣기로 했다. 맑은 기타 소리에 한참 귀를 기울이다 보니 불현듯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 듣고 싶어졌다. 곡이 끝나기를 기다려 신청곡을 말하자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누에보 다리 앞에서 생음악으로 듣는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은 독특했다. 맑은 트레몰로 선율 사이로 전날 나르스궁에서 보았던 궁전 문양들이 지나갔다.

사람들의 갈채가 들리자, 꿈속에서 깨어난 것처럼 엉겁결에 나도 엄지 척을 하며 박수를 보냈다. 그 후로도 한참 듀엣 주변을 맴도니 나중에는 서로 안면이 트여서, 허물없이 궁금한 것을 묻게 되었다.

“연주 무척 좋습니다. 주로 어디서 활동하세요?”

전문 연주자임이 틀림없으니 어디선가 일을 할 것이고, 거리 연주는 자투리 시간에 하는 것이라고 짐작한 터였다.

“이 근방에서 활동합니다.”

“어디서 사시는데요?”

“론다에서요.”

그러면서 더 젊어 보이는 쪽이 자신들 곡이 담긴 시디를 소개했다. 시디를 감싼 얇은 표지에는 수채화로 그린 협곡과 론다 파라도르 정경에 ‘Cabezas Negras’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까베자스 네그라스? 누구 이름인가요?”

“우리 그룹 이름이에요. ‘검은 머리’라는 뜻이죠.”

두 사람 모두 대머리 스타일로 머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의아해하자 그가 서툰 영어로 설명을 이어갔다.

“야외에 오래 있다 보니 머리 살갗이 햇볕에 타서….”

화가인 동생이 표지 스케치를 보고, 멋지다며 반색을 하니까 친한 친구가 그려 주었다며 뿌듯해했다. 우리는 이미 감상비용을 두둑이 동전 통에 넣었건만 또 시디까지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하며 동생과 기타리스트들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들은 저녁에 이 근방 어디 클럽에서 일할까?”

“낮에 내내 연주했는데 저녁시간까지?”

“그래도 자신들이 속한 어떤 곳으로 일하러 가겠지? 그렇게 실력이 좋은데 ….”

“그래. 이 근방 어딘가에서 활동한다고 했어.”

“그런데 …, 그곳이 바로 누에보 다리 아닐까?”

“그런가?”

“뭐 다른데 꼭 갈 필요 없잖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어?”

“그렇긴 하지.”

이제 음악 보다 그들의 일과 수입이 더 궁금해져서,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밤이 되니 거리 음악은 그치고 누에보 다리가 다시 환해졌다. 벽 사이사이와 바위틈에 커다란 조명등(燈)이 숨겨 있어, 기둥과 아치 사이로 금빛 실루엣이 만들어졌다. 조명 철제품이 낮엔 전혀 눈에 띄지 않았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협곡은 산마을을 배경으로 커다란 무대장치가 되어, 마치 금방이라도 막이 오를 것만 같았다.

쌍쌍의 커플이 다리 난간과 파라도르 담벼락에 목을 길게 빼고 서 있다. 사방 깜깜 한 데서 사람들이 숨을 죽이는 가운데, 천장에선 별들이 총총, 협곡 깊은 곳에서는 강 물줄기가 굽이친다. 곧 웅장한 서주(序奏)가 울리며 안달루시아의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다.

한적한 시절 머물렀던 헤밍웨이를 부러워할게 아니었다. 론다는 아직도 문학도들에게 뭔가를 일깨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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