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넬로페 데자뷔

『오디세이』를 읽고

by 램즈이어

파우스트는 약 3000년간의 서양문학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한다. 1권은 그런대로 진도가 나갔는데 2권은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어려웠다. 셰익스피어, 바이런, 호메로스를 좋아했던 괴테 답게 그 책 속 인물들 인용이 많아서 2권을 읽기 전에 『일리아스』『오디세이』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미리 읽기로 했다. 청소년 시절 만화나 간략 본으로 겨우 만나서 이번만큼은 제대로 읽어보려 했는데, 두께가 어마어마했다. 결국 이번에도 진형준 교수의 고전 축역본을 이용하고,『오디세이』는 내용이 매력적이라 파우스트를 끝낸 후 다시 천병희 교수의 정본을 읽었다.

『오디세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오디세우스와 그의 아내 페넬로페가 20년 만에 재회하는 장면이다. 노래하는 세이렌 자매를 지나가는 장면이나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를 눈멀게 하는 에피소드 보다 더 인상적이다. 내 나이 탓인 것 같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신화적 요소가 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치 요즈음 안방 드라마의 대단원 장면을 보는듯하여 호메로스의 클라이맥스 구성 솜씨에 감탄했다.

정본에서는 재회하는 부부가 "이상한 여인이여~" "이상한 분이여~" 하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심리 묘사가 세세하다.

그녀는 이층 방에 내려가며 마음속으로 거듭해서 생각했다. 떨어져 선채로 사랑하는 남편에게 물어보아야 할지, 가까이 다가가서 머리와 손을 잡으며 입 맞추어야 할지

한편 오디세우스는 눈을 내리깔고 높다란 기둥 옆에 앉아 착한 아내가 두 눈으로 자기를 보고 자기에게 무슨 말이든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얼떨떨한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상한 여인이여! 올림포스에 사시는 분들께서는 분명 모든 여성보다도 그대에게 더 모진 마음을 주셨구려. 천신만고 끝에 이십 년 만에 고향땅에 돌아온 남편에게서 이렇듯 굳건한 마음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여인은 정말이지 이 세상에 달리 아무도 없을 것이오."

아침이 찾아오는 장면은 어김없이 '훌륭한 옥좌의 고귀한 새벽의 여신이~',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 나타났다'는 문장으로 표현되어 호메로스의 문학적 향기가 느껴진다.


부부애의 주제와 페넬로페의 일편단심에 흡족하면서 재회 장면을 여러 번 읽다가 이 부분에 유난히 끌리는 이유를 깨달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 데자뷔-를 일으켜서다. 사랑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다가 다시 만나는 절절한 재회의 장면들.

제일 먼저 조선시대의 많은 열녀 설화가 떠오른다. 으뜸으로는 단연 성춘향이 될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늙은 걸인으로 변장하여 구혼자들 앞에서 아른 거리는 것은 이도령이 거지차림으로 변사또의 혼인잔치에서 술상을 달라는 부분과, 아무도 다루지 못한 오디세우스의 활을 능숙하게 쏘는 모습은 이몽룡이 멋진 풍자 시를 읊는 모습과 교차한다. 천한 신분으로 가장해서 사랑하는 아내 앞에 처음 나타나 마음을 떠보는 장면도 비슷하다.

부부간은 아니지만 김동규의 노래 <낯선 재회/파사칼리아>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오랜만에 몰래 마주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애달픔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마음을 흔든다.

기억 속에 있나요 오래 전의 옛 모습

마주 잡은 우리의 손, 처음인걸 아시나요

외면하며 돌아서요 혼자만의 낯선 재회

당신 아닌 다른 사랑 아직도 생각 못해


우리 부부도 삶의 어느 시기에 뭉클한 재회가 있었다. 남편은 천신만고 모험과 고생길에 있고 나는 시부모 모시며 가장(家長) 역할을 홀로 감당하던…. 자신의 스토리가 조금 투영되었다고 느껴서 페넬로페에게 끌리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소상히 풀어낼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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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의 그림: RIPPL-RÓNAI József <Woman with a Bird-Cage> 1892 헝가리 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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