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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Jun 30. 2024

예술가의 탄생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고

1. 책의 제목에 대하여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가 베스트셀러라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잘 모르는 어떤 사람의 생활 에세이는 우선순위에서 밀려왔다. 6월 독서모임 책이라 읽게 되었는데, 제목에서 느낀 첫인상과는 다른 반전이 있었다. 영문 원제목-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All the Beauty in the World)-이 정확히 내용을 요약하며, 반갑게도 예술(미술)과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국어 출판을 하면서 판매부수를 올릴 수 있는 한 문장 카피로 제목을 바꿨나 보다.   

 두 살 터울의 형을 잃고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기로 하고, 그곳에서의 십 년을 회고한 글이다. 상실감과 애도의 마음이 여물어가는 과정, 작품들과 마주하며 느낀 감동, 예술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현대적이며 세련된 문장 속에 담겨있다.

 

형을 잃은 후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2. 애도 중에 있었기 때문에


 고난이 담긴 그림을 묘사한 글은 몹시 독특하고 깊이가 있다. 사랑하는 형을 떠나보낸 지 얼마 안 되서인지 어느 누구보다도 통렬히 이해한 마음이 엿보인다. 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를 받으며 애도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잘 선택한 것 같다.


메트에 소장된 작품들 중 가장 슬픈 그림은 베르나르도 다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일 것이다

죽음이라는 그 단도직입적인 사실, 불가해한 수수께끼, 거대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최종적 단호함만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다. ---- 내가 이해한 건 다디는 고통 그 자체를 그렸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은 고통에 관한 것이다. 고통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말문을 막히게 하는 엄청난 고통의 무게를 느끼기 위해 그림을 본다. 그렇지 않다면 그림의 정수를 보지 못한 것이다.


3. 예술을 접하는 시선에 대한 가르침

 

 미술관에 갔을 때 첫 관람은 도슨트 신청을 하지 않는 편이다. 우선 내 마음을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고 선입견 없이 느끼고 싶어서였는데, 저자의 생각과 일치하여 반가웠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름다움을 모아둔 저장고 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작고 하찮은 먼지 조각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즐기십시오. 감각되는 것들을 묘사할 말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거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어쩌면 그 침묵과 정적 속에서 범상치 않은 것 혹은 예상치 못했던 것을 경험하는 행운을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자가 메트에서 경비원 일을 한 것은 숙련된 CIA  요원이 평범한 시민으로 위장하고 비밀작전을 수행한 것과 비슷해 보인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잡지 <뉴요커>에서 일했고, 박식한 예술과 인문학적 배경에다, 계속 독서를 하는 지식인이었다. 사람들은 저자가 경비원 제복으로 묵묵히 서있을 때 명화에 철없이 접근하는 관람객을 가려내는 일에 몰두하는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큐레이터 버금가는 안목이 있고, 거기에 더해서 저자만의 깊이 있는 사색과 감성으로 송송송 이야기를 만들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메트 박물관 입장으로는 비교적 단순한 일을 하라고 사람을 뽑았는데, 그 일을 하는 척 가장 그 반대의 일을 하는 사람이 들어온 셈이다.

  

 <잠든 하녀> 그림을 보다가 페르메이르가 포착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 나는 깜짝 놀랐다. 가끔 친숙한 환경 그 자체에 장대함과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가 바로 그 느낌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었다.


 경비원이라는 육체노동은 또 다른 힘듦이 있는 것인데, 그 부분은 간과하고 그림과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 커다랗게 부각되어 몹시 부럽기도 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대목도 나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서 피카소에서 좌회전, 세잔에서 우회전...


4. 뜻밖에 글쓰기의 팁도


 12장에서 저자는 미켈란젤로의 드로잉 전을 보고 그의 일상과 작업에 대해 감탄한 내용을 세세히 적었다. 마치 자신과 우리의 글쓰기를 염두에 두며 적은 것만 같다. 천재 화가도 그저 하루하루 묵묵히 그날의 일과를 수행했을 뿐이고 그것으로 족하게 여겼다면서. '하루의 일'은 소홀히 하면서 성과만을 헤아리는 나의 현주소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매일아침 미켈란젤로와 그의 조수들은 새로 바른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날 완성해야 할 부분에 대한 밑작업을 했다. 이것을 이탈리아어로 '하루의 일'이라는 뜻의 조르나타 (giornata)라고 하는데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는 사실 이렇게 작고 불규칙한 모양의 작은 성취들이 경계선이 거의 보이지 않는 모자이크처럼 모여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지름길도 없고, 인내심을 가지고 한 획 한 획 긋는 것 말고는 일을 진척시킬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 겸허한 작업인 것이다.


5. 일상의 회복

 

 고요함 가운데 거장들의 작품 속에서 받은(어떤 면으로는 세속에 있는 것 같지 않은) 위로와 감동을 읽어가다 뒷부분에 이르니 다른 기류가 감지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정신 없어지고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사는 저자의 모습이다. 아니나 다를까 달라진 삶의 모습에 대한 작가의 고백이 있었다.


 메트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몇 달을 돌이켜보면 내가 한때 날이면 날마다 말없이 뭔가를 지켜보기만 하는 상태를 그토록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아마 그것은 커다란 슬픔이 가진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날마다 수많은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하는 요즘 같아서는 그렇게 뭔가에 집중해서 사는 삶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6. 예술가의 탄생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충만하며,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만들려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샛노란 옐로캡 택시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서 민들레를 문지른 자국처럼 보일 때면


예술가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의 생각은 분명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읽고 나니 평범한 한 사람이 고난을 통과하며 어떻게 예술가로 탄생하는지 그 여정을 본 것 같다.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지독한 상실과 슬픔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그곳에서 담담히 낯선 일을 감당하고, 매일 느끼고 발견한 경이롭고 아름다운 것들을 써 내려갔다. 큰 바위 얼굴을 늘 바라보며 기다려왔던 어니스트의 얼굴에서 큰 바위 모습이 보인 것처럼, 예술작품에서 진솔하게 배움을 이어간 저자가 부지불식간에 예술가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본다. 자신은 겸허히 부인하겠지만.  


<감청색 글씨는 본문 인용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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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의 그림 사진:

Peter Paul Rubens <Romulus and Remus> 1616, oil on canvas, Pinacoteca Capitolina R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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