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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Jul 18. 2024

살아있는 그녀를 찾아

김소민 작가님 『여기, 저 살아있어요』를 읽고

"여기, 저 살아 있어요~"

 비바람에 실려 어디선가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뿐 아니라 몇몇 브런치 작가님도 들었다 한다. 궂은 날씨의 연속이지만 우리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기로 했다. 의기투합하여 소민 님을 찾아 나서기로. 그녀가 무시무시한 괴물에게 납치된 지도 벌써 몇 년 째다. 이름이 길고 낯설어 전부 외우지는 못했지만 씨알어쩌고 하는 그 녀석은 21세기에 가장 잔혹한 종(種)이라고 한다.  

 목소리가 실려 오는 방향으로 걷고 또 걷다가 드디어 소민 님의 자전거를 발견했다. 근처에는 그녀가 좋아할 만한 운치 있는 통나무집이 보였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집안을 덮쳤으나, 집은 이미 비어 있고 얼마 전까지 사람이 체류한 기운이 느껴졌다. 소민 님이 괴물과 육탄전을 벌인 듯한 흔적 사이에서 글벗 한분이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일기 같은 메모가 있어요.” 반가운 표정도 잠시 그는 글을 읽다 말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뼈가 꺾이면서 부러져 나가고, 못이 박히는 것 같다.

살 점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

발가락 위에 수십 개의 바늘이 박혀 있는 것 같음     

“괴물 녀석 생각보다 잔인하네요.”

 우리는 서둘러 다시 숲길로 나섰다. 문을 나서다 근처에서 나뒹구는 마우스피스를 하나 발견했다. 그녀가 통증을 견디기 위해 이를 악물었던 도구인가 보다. 소중히 주머니에 넣었다.

    

1. 유혹하는 도깨비     

거센 바람을 동반한 폭우에 우리의 걷기는 도무지 진척이 없었다. 지쳐서 자신들 가누기도 힘들어지자 커다란 바위 아래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모두들 기진맥진 거기서 깜박 잠이 들었다. 무슨 웅성거림 때문에 눈을 떴는데, 먼저 깬 글벗님이 쉬잇 하는 손짓을 했다.

바위 위에서 들려오는 대화.

“도깨비 1! 아직도 소민이를 못 데려와? 도깨비 2, 3는 모두 작전 성공인데….”

“소민 양은 워낙 긍정적이어서요.”

씨알어쩌고 녀석이 충분히 녹다운시켰다는데?”

“둘레에 천사들이 철옹성이라….”

“어서 가 다시 작전 개시! 도깨비 사단은 스스로 목숨 끊는 미션엔 일등 놓치면 안 돼.”

 도깨비들 대화를 듣고 보니 시간이 없었다. 괴물의 고문에 도깨비 유혹이 더해지면 언제 부지불식간에 소민 님을 잃을지 알 수 없다. 우리는 피곤을 이겨내고 계속 앞으로만 가기로 했다. 마침 비도 그치고 숲의 가장자리인 듯 먼 곳에서 햇살이 비추었다.   

  

2. 일상의 나라 수복(收復)     

 숲을 벗어나자마자 웅성웅성 사람들 음성이 들렸다. 단(壇) 주위로 군중이 모여 행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젊은이들이 꽤 있고 상 받는 단 위의 주인공을 부러워하는 눈치다. 상장의 내용을 크게 낭독하는 음성이 들렸다.

 귀하는 먹고 자고 하는 일상의 나라를 탈환하여 상장을 수여한다. 동료들은 잠은 죽어서나 자는 거야라며 포기를 종용했으나 지난 몇 년간 목숨을 걸고 이 나라를 되찾았다. 하루를 보내기 위해 86400초를 힘겹게 세는 일을 졸업하고 1시간, 혹은 2시간 통잠 자게 됨을 치하하.     

 우리는 상 주는 이의 의복이 무척 희게 빛나는 것에, 통잠의 정의가 한두 시간인 것에, (나는 통잠이 4-5시간이라 정의하며 스스로 불면증 전공으로 여겼던 터라) 상장의 주인공이 소민 님이라 놀랐다. 이렇게 무사한 소민 님을 이리 빨리 찾을 줄이야! 모두 기뻐서 무리를 헤치고 계단을 내려오는 소민 님에게 다가갔다.

“으악! 괴 괴물!”

 뜻밖에 소민 님은 그림자처럼 씨알어쩌고 녀석과 함께였다. 둘의 분위기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는데, 눈이 휘둥그레지는 우리를 보고 소민 님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함께 지낼 만 해. 애가 내 삶을 집어삼킨 것이 아니라 그저 건강에 흠집을 냈을 뿐이야.”

 소민 님이 되찾은 일상은 먹는 것과 자는 것이 소박했으나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대단한 긍정 에너지를 품은 것이다. 아마도 이 나라를 되찾기까지 눈물 흘리며 훈련한 열매이리라.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모습.     

나는 내가 못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현재 누릴 수 있는 넘치도록 행복하고 감사한 삶을 바라본다.

부정적인 감정은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

흐릿한 빛이 비쳤던 그 순간을 떠올리고 더욱 밝고 선명하게 만들어 본다. 

    

3. 우아한 백조 혹은 어느새     

 소민 님은 괴물에 덮친 사람의 세계를 건너 조금씩 건강한 사람들의 세계에도 왕래하고 있었다. 괴물 뉘앙스를 엷게 하고 최대한 깔끔히 보이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 엄청났다. 수면아래서 쉼 없이 발을 움직이며 우아한 모습을 유지하는 백조처럼.

“소민 님은 백조가 되었군요.”

“제가 새라면 이름이 어느새 랍니다.”

“그런 새도 있어요?”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날들이 어느새, 영영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어느새

도착해서요. 날마다 어느새 어느새 하고 있으니까요. “

 소민 님은 우리에게 줄 게 있다면서 아빠 회사인지 어딘지 갔다 오겠다고 했다. 그 사이 자신에게 상을 준 흰옷 입은 이에게 우리를 맡겼다. 그분은 성경나라에서 온 천사장이라고 한다.   

  

4. 성경 나라 수목원     

 우리는 천사장님을 따라 울창한 수목원을 구경했다. 나무를 좋아하는 우리에게 딱 어울리는 곳이다. 초록가지와 갈색 줄기가 가장 선명한 어느 나무 아래 박사님처럼 생긴 분이 부지런히 푯말을 만들고 있었다. 기준 표본목(새로운 식물을 발견하여 처음 이름을 붙이게 되는 나무)이라는 안내 표시였다.

이름: 소민나무

특성: 씨알어쩌고 괴물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싱싱하게 자라 꽃을 피움.

 어째 나무이름도 특성도 소민 님과 비슷하니 이건 꿈인가? 알쏭달쏭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무사이에서 두 인물이 등장했다, 꿈속 성경나라인가 보다. 두 사람 모두 소민 님을 찾았다.      

: 소민씨는 제 숨겨논 베푸예요. 친구 중에 하나님께 야단맞지 않은 유일한 애. 우리가 늘 함께 하던 합창이 42장 5절인데….

다윗: 소민 님께 명장(名將)의 영예를 양보하려고요. 제가 어릴 때 때 움킨 사자나 청년시절 맞힌 골리앗이나 씨알어쩌고 에 비하면 귀여웠죠.   

  

5. 건강을 선물하는 이     

 어쨌든 우리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앞에 견과 바가 가득 쌓여 있었다. 그 사이 소민 님이 우리를 위해 가져다 놓은 거다. 자신이 직접 빚었다 한다. 배가 고파 인사도 건성 정신없이 여러 개를 해치웠다. 몸 안에서 신비한 기운이 느껴진다. 튼튼해지는 것도 같고, 생기가 돋는 것 같기도 하다. 고난을 통과한 옥(玉) 같은 손이 빚어서일까, 기도의 영성 때문일까? 남은 것은 집에 가져가라며 살뜰히 챙겨주기까지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괴물에 납치되어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 소민 님을 구하러 나섰는데. 오히려 선물까지 받고 돌아오다니. 각자 건강의 복주머니를 주렁주렁 메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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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PS(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복합부위통증증후군) 7년 차 환자로 통증을 버텨내며 누군가의 희망의 조각이 되길 바라며 쓴 책, 김소민 작가님『여기, 저 살아있어요』의 독후감입니다. 많은 표현들을 거기서 빌려 픽션 형태로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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