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마지막 밤에
2주간의 스페인 여행 마지막 날(2019년 10월 13일)에는 아무 스케줄이 없었다. 동생과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셈으로 호텔 근처에서 쌀국수로 저녁을 때우고 고딕 지구에 있는 카테드랄 (바르셀로나 대성당) 부근을 걷기 시작했다. 그동안 소매치기를 만나지 않아서인지 긴장감이 없어져서 처음으로 여유로운 마음이 되었다.
이처럼 붐비는 곳에서는 가방을 단단히 붙들고 낯선 이를 조심해야 한다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성당 앞 광장을 즐기는 무리 중에 수상쩍은 사람은 없어 보였다.
고풍스러운 성당 모습에 매료되어 걷고 있을 때 동생이 지붕 쪽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기! 저기 좀 봐.”
그 주인공은 첨탑 사이로 쑤욱 얼굴을 내민 커다란 보름달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행 중에 달이 점점 차올라서 스페인에서 보름달을 보고 떠나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와! 마지막 밤의 운치를 더하네.”
동생은 세모난 지붕들과 진노랑 원이 만들어 낸 정경을 핸드폰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중에 한 폭의 그림으로 탄생시킬 만한 멋진 구도였다.
“나는 사진을 좀 더 찍어야겠어. 언니는 성당 저편에 가봐. 무슨 성가대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으니.”
성당 다른 편이라 해도 외관은 비슷비슷했다. 동생의 진짜 의도는 이제부터 각자 행동하자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실제로 성당 오른쪽 귀퉁이에서 무슨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싶어 혼자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가갈수록 점점 커지는 소리는 클래식 성악곡이었다. 까테드랄 성당 벽과 골목이 만들어 낸 공간에서 이십여 명의 사람들을 앞에 두고 두 남성이 힘차게 노래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붉은 목도리에 체격이 좋았지만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고 다른 한 사람은 작은 키에도 성량이 풍부했다. 실력 좋은 쪽은 베레모를 쓰고 흰 셔츠에 검은색 조끼로 무대복장 비슷한 연출을 했는데 테너 기량도 전문가 솜씨였다.
앰프의 반주에 맞추어 마이크 없이 노래하는데 커다란 성당 벽과 높은 담장 사이로 생긴 좁은 공간 때문인지 울림이 좋았다. 두 사람은 <돌아오라 소렌토로> <축배의 노래>에 이어서 제목을 알 수 없는 아리아 몇 곡을 우렁차게 불렀다.
둥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여느 바르셀로나 명소에서처럼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있고 밤이라서 그런지 젊은 커플이 많았다. 다들 예사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돌담 벽에 기대어 서거나 혹은 바닥에 앉아서 열중하고 있었다.
테너들과 좀 떨어져서 관중들 가까이 놓인 네모난 철제 박스에는 동전들이 수북했다. 목소리와 성량이 흡족해서 5유로 지폐를 찾았는데 나도 하필 2유로 동전밖에 없었다. 동생이 사진을 다 찍었는지 날 찾아서 골목에 접어들었다가 거리 공연을 발견하고는 놀랍다는 표정을 하며 옆에 앉았다.
리골레토 중의 <여자의 마음>이 나왔다.
“에디뻰찌에르, 에 --- 디뻰찌에르~”
내 옆에 앉은 십 대 커플이 서로 웃으며 후렴을 따라 했는데 가만히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부르고 있었다.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가 비슷해서 인가, 사람들 문화 수준이 높은 것일까?
맞은편에서 돌로 된 턱에 앉아 줄곧 첫 구절부터 모든 가사를 함께 부르고 있는 삼십 대 여성이 눈에 띄었다.
‘성악곡을 엄청 좋아하나 보다.’
내 나름의 추측을 하고 있는데 잠시 후 틈이 생기자 그 여자가 두 테너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대화 중에 ‘토스카’라는 단어가 언뜻 들려서 그 오페라 중의 어느 곡을 신청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반주가 나오자 두 남자와 이야기하던 그녀가 조금 앞으로 나오더니 노래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음색이 곱고 성량이 풍부한 소프라노였다.
허름한 반바지 차림으로 진지하게 부르는 아리아는 토스카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였다. 사람들이 놀라며 감탄의 박수를 보냈다. 그녀도 전문가임에 틀림없었다. 이제 세 명의 주인공을 갖춘 본격적인 오페라 무대가 된 셈이다. 소프라노가 끝나자 실력 좋은 쪽 테너가 토스카의 간판 곡 <별은 빛나건만>을 들려주었다.
별은 빛나고, 대지는 싱그러웠지.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그녀가 다가와 (…)
사랑의 꿈은 영원히 사라지고
이제 절망 속에 죽는구나.
이토록 삶을 아쉬워한 적이 있었던가! 이토록!
부드러운 선율에 비장함이 실려 오자 여러 모습의 골목길 사람들이 전부 숨을 죽이는 것 같았다. 극적인 클라이맥스에 이어서 테너가 마지막 절규를 할 때, 모두 함께 비통함에 젖어 막 박수로 마무리하려는 순간 엉뚱한 소리가 터졌다.
“탕!”
붉은 목도리의 테너가 토스카 남자 주인공을 쏜 것이다. 다행히 장난감 권총으로. 노래를 불렀던 테너가 실제 오페라에서처럼 총알에 맞은 듯 돌바닥에 엎드러지자 나는 그만 까르르 웃고 말았다. 숙연한 장면인데 실수했나 잠시 당황했지만 곧 사람들의 박수에 묻히고, 다행히 내 쪽은 길이 어두워 얼굴이 보이지 않을 듯싶었다.
가끔 울리는 성당의 청동 종소리도 영롱하게 박자를 세며 한몫을 했다. 몇 백 년 되었을 가로등도 조명을 담당한 듯 주인공들을 비추고 실루엣을 만들었다.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어 그 젊은 소프라노가 다시 앞으로 나왔다. 테너들이 부지런히 어떤 곡의 반주를 찾아 틀어 주었는데 푸치니 <쟌니 스키키>에 나오는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였다.
반지를 사러 가겠어요. 오! 그래요. 그럴 생각이에요.
아리따운 소프라노의 호소가 골목길의 돌 벽에 부딪쳐 밤공기를 타고 하늘로 퍼져나갔다.
‘이분 실력이 좋은 걸까? 이 공간의 울림이 좋은 걸까?’
크고도 자연스러운 선율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여주인공 라우레타의 다음 고백을 - 만약 자신이 헛되이 사랑한다면 베키오 다리로 달려가서 아르노 강에 몸을 던질 거라는 - 고대하고 있을 때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좋은 일에는 방해가 있기 마련인가 보다. 로맨틱한 선율에 흙탕물을 튀기려고 작정이나 한 것처럼 키가 큰 어느 젊은이가 큰 소리로 떠들며 골목길 무대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우리 모두는 그가 잠시 지나가는 것으로 믿었고 소프라노는 아리아를 계속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골목 끝에서 가던 길을 가지 않고 동전 박스 옆에 서서 한참을 지껄여댔다. 크게 말했지만 스페인어여서 무슨 내용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 소리에 묻혀서 몇 소절을 더 노래하던 소프라노가 결국 포기하며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두 테너는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화가 난 관중들이 모두 소리를 모아 “우~”하며 그에게 퇴장을 종용하는 야유를 보냈지만 방해꾼은 사라질 의향이 전혀 없어 보였다.
소란함이 꽤 이어지고 얼마 후 경찰차가 나타났다. 두 명의 남녀 경찰이 차에서 내리자 나는 그 사람이 끌려가는구나 생각하며 마음이 고소했다. 그런데 경찰은 방해꾼과는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두 테너에게 다가갔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니 공적인 장소에서 허가 없는 콘서트를 열고 있는 쪽이 더 혼이 날 법했다.
두 사람이 경찰과 한참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소프라노를 다시 듣는 것도 이 밤의 골목 음악회가 이어지는 것도 이제 끝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얼마나 여유 있고 멋스러운지! 경찰이 돌아가자마자 두 사람은 짐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곡 반주를 틀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마지막으로 아리아 한 곡을 허락해 준 것 같았다.
하필 마지막은 <넷슨 도르마>였다. 그해 여름 그 공연을 본 후로 줄곧 내 마음속에 메아리쳤던 곡이다. 성당 돌담 사이에서 ‘아무도 잠들지 말라!’며 외치는 음성은 오페라 무대 위에서 보다 훨씬 호소력이 있었다. 고풍스러운 벽 사이에서 노래하니 그 옛날 투란도트의 왕궁 앞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빈체로! (승리하리라)”
이 극적인 후렴은 그 밤의 콘서트를 마무리하기에 적당했다. 사람들은 진심 어린 갈채와 휘파람, 브라보로 화답했다. 테너들이 짐을 챙길 때, 차마 가까이 가서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다. 열창과 더불어 무대 장면까지 연출해 주었건만 남성들이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돌 턱에 앉아 있는 소프라노에게는 다가가 영어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훌륭한 목소리로 여기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셨어요. 그 방해꾼만 없었더라면 쟌니 스키키를 끝까지 듣는 건데…. 무척 아쉽습니다.”
“언젠가 들려 드리지요.”
그녀는 미소를 띠며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마지막엔 불어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달은 보이지 않았다. 동생은 하늘 가득히 낀 구름을 쳐다보며 서운한 표정이었다. 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생했던 아리아의 여운으로 보름달빛 보다 더 환하게 마음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대문 사진: 내 핸드폰에 찍힌 두 테너분. 초상권 침해일지 모르겠는데 너그러이 봐주시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