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동이 뜨는 이유는?

연암 선생과의 대화

by 램즈이어

서울에 오면 맨 먼저 '청년 연암'의 흔적을 따라 서대문과 마포주변으로 모시겠습니다. 역시 연암님이 남긴 학문의 기운은 꽃이 활짝 피었답니다. 이 일대에 연대 이대 서강대 홍대 등 인기 대학이 운집해 있으니까요. <강거만영(江居漫詠): 강가에 살며 한가로이 읊다> 연작시를 읽고 난 후에 이곳 대학가의 문예부흥도 선생님과 관련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이 지역은 제가 대학생 때 이후로 나날이 변천을 거듭하고 지금도 현재 진행 중입니다. 혹시나 이 일의 배후에 연암 선생이 계시지 않는지요?

1980년대만 해도 홍대 인근은 신촌 상권에 밀렸습니다. 이대 앞은 패션과 미용의 선구자였고, 연대 앞에서 신촌 로터리로 이어지는 거리는 젊은이들의 낭만으로 가득했죠.

점점 번성하는 홍대 앞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이대가 ECC*를 지으며 그 앞에서 사진 찍는 중국인 관광객 인파로 북적이고, 기욤 뮈소는 자신의 소설에 이대 도서관을 등장시키기도 해서 이곳의 영화(榮華)는 계속될 줄 알았습니다.

홍대 입구가 여러모로 문화의 중심이 돼 가는데도, 젊을 적 선입견에 묶여 인정하지 않고 있었는데요. 돌연 어떤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사실 그전부터 낌새를 느끼기는 했지요. 아이들 봉사활동을 위해 십 년 이상 빌려오던 오케스트라 연습 홀이 인디 밴드용으로 바뀌는 바람에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하는 등이요.

어느 날 후배 동료와 홍대 앞에서 점심 약속을 했는데, 그 음식점은 유난히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주택가와 구별되지 않을뿐더러 간판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였지요. 애써서 찾았는데, 처음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뻔했습니다. 내부에 의자가 있기는 한데 전혀 레스토랑 분위기가 아니어서요. 어떤 공장 건물의 창고인가? 할 정도로, 천정은 마감을 덜 해 놓은 듯 둥근 관들이 지나가고 심난했습니다.

“아직 공사가 안 끝난 거야?”

거친 나무 재질의 테이블에 자리하고 미심쩍은 표정으로 질문을 하던 내게 후배는 일침을 놓았습니다.(왜 그리 촌티 내느냐는 뉘앙스로)

“요사이 이런 인테리어가 대세인 거 모르세요?”

“부러 이렇게 한 거라고?”

나의 놀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정쩡한 실내장식 가운데서 내 인생에 다시는 먹어 보지 못할 가지 요리가 나왔으니까요. 그렇게 천연 보랏빛을 간직하면서 맛나고 예쁘게 구워진 가지는 처음이었습니다. 가지에 홀랑 빠져 파스타 맛은 생각이 안 납니다. 그날 홍대 앞에게 한방 펀치를 얻어맞고 즉각 항복했습니다. 신촌을 하야 시키고, 마음속 낭만장소의 옥좌로 극진히 모시며.

몇 년 전에는 다른 후배와 홍대 앞에서 저녁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날 약속 장소를 찾아가 보니 분명 홍대 부근에서 먹기로 했는데 상수역 근방의 음식점이었습니다. 중년은 우리뿐이며 젊은이들의 시끄러움이 가득하고.

6호선에 상수역이 생길 때까지 ‘상수’라는 단어를 들어 보지 못했지요. 그날도 홍대 앞이 세가 비싸서 그곳에 개업하나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계속 상수동 이곳저곳에 뭔가가 들어섭니다. 홍대의 끝자락으로 번영을 누리는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비슷한 또래인 연남, 망원 등을 앞서네요. 뉴트로 및 힙한 상권이 새록새록 만들어지면서.

상수동은 왜 번성하는 걸까요? 문화의 중심지는 왜 자꾸만 강 쪽으로 움직이는 걸까요?

연대 신입생들이 송도 캠퍼스로 가는 바람에 1학년 (freshman) 중심의 신촌 문화가 쇠락하고 그 수요를 대신 얻게 되었다. 이름으로 봐서도 대(大) 성수동의 동생뻘이니 점점 핫한 곳이 되는 게 자연스럽다. 등등 여러 가설이 있지만 저는 연암 선생의 기운이라고 감히 주장합니다.

압구정동의 부귀가 한명회를 연상시키고, 서촌의 고즈넉함이 겸재 정선의 유산인 것처럼요.


강가에 살며 멋대로 읊다


우리 집 문밖은 바로 서호(西湖) 나루(서강) 근처 / 我家門外卽湖頭

쌀 사려 소금 사려 몇 곳의 배들이냐 / 米鬨鹽喧幾處舟

가을 기러기 한번 울자 일제히 닻을 올리고 / 霜鴈一聲齊擧矴

강에 가득 밝은 달 비추일 때 금주(김포)로 내려가네 / 滿江明月下金州


당신이 30대 초반 상수동 근처에 머물던 때는 비록 몹시 가난했지만 문학적 동지들(이덕무, 박제가, 백동수)이 결집하고 시적 감수성과 실학적 통찰이 싱그럽게 꽃피던 시절 아니던가요? 그 열정이 지금까지도 이곳을 데우고 있다고 봅니다.

대학가 답사를 마친 후에는 <빈 브라더즈 커피하우스 서울점>으로 모시겠습니다. 와우산로와 교차하는 토정로의 8층 건물로 한강이 바라다 보입니다. 서강대교를 향하고 밤섬이 지척인 이곳은, 선생님이 그 시절 강의 물살을 느끼며 배와 버드나무를 바라보고 시를 지었을 그 터가 분명하니까요.

창가에 자리하면 코 앞으로 강변북로의 자동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갑니다. 열하일기에서 중국의 수레들을 그렇게 부러워하던 선생님 한을 풀어드리려는 듯이요. 멀리 여의도 공원 위에는 애드벌룬 '서울 달'이 떠 있네요. 절로 시 한 수를 읊으시겠죠?


"서강의 달밤에 배 띄우고 노닐던 일이 생각난다~" **


저는 밀크티 맛인 <쑥 블러쉬>를, 선생님 거로는 차 <곶자왈의 밤>을 주문할 겁니다. 제주의 청보리순과 금목서의 꽃, 루이보스와 레몬밤이 섞여 풀내음 가득 달콤한 맛이 나는. 꽃차 향기를 음미하며 선생님이 건네실 문장은 금방 짐작이 갑니다.


"와우산 기슭에서 꽃 보며 술 마시던 일이 어제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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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자대학교의 ECC(Ewha Campus Complex)는 '이화 캠퍼스 복합단지'의 약자로,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계곡 모양의 건축물입니다. 2008년 "땅을 파서 건물을 심는다" 개념으로

프랑스의 세계적인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가 설계했습니다.


** 연암의 산문 가운데 따온 문장인데 자세한 출처는 찾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