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콘서트의 원조 (1)

연암 선생과의 대화

by 램즈이어

연암집 가운데 <한 여름밤에 모여 노닌 일을 적은 글>*을 읽었습니다. 조선의 명망 있는 집에서 종종 악회(樂會)가 열렸다고 하지만 선생님이 자주 갔던 홍대용 댁 모임을 하우스 콘서트의 원조로 쳐 드리고 싶습니다. 양금, 생황, 거문고, 퉁소 등등 악기가 여러 개 모여 앙상블을 이루고, 연주자와 청중의 수준이 높았으며, 예술적 기운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두 악기만 등장하는 그날 밤** 풍경이 마치 영화처럼, 단원 풍속도의 한 폭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집니다.


담헌(홍대용)이 슬(瑟)을 연주하자 풍무(김억)는 거문고로 화음을 맞추고 국 옹은 갓을 벗어던지고 노래를 불렀다. 밤이 깊어지자 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져 더위가 건 듯 물러나 거문고 소리가 더욱 맑았다. 좌우에 앉은 사람들이 고요하니 말이 없는 게 마치 도가(道家)의 단(丹)을 닦는 이가 생각을 끊고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같고, 참선 중인 승려가 전생을 문득 깨치는 것 같기도 했다. *

홍대용의 저택 유춘오(留春塢)에서 열린 ‘남산골 살롱’ 모임인 거죠. 양반뿐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고 실력 있는 중인 계급도 함께 했다니 규모는 작지만 열린 음악회네요. 진지하게 예술 삼매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인상적입니다. 공해 소음 없는 남산의 공기 가운데 가득 울려 퍼진 청아한 선율이라. 글 읽는 제 마음에까지 와닿는 듯합니다. 아쉬운 점은 워낙 가부장 시대여서 조르즈 상드처럼 어떤 여장부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이요.

담헌이 벽에 모셔만 두었던 양금을 거문고 소리를 참고해서 음(音) 조율하여 처음으로 연주에 성공하던 날도 알고 계셨지요. (그날 함께 하셨을 수도 있고요.)

『열하일기』를 읽으면서는 여러 차례 놀랐는데 망양록에서 또 그랬습니다. 잘 차려온 양고기 요리를 음식이 식기까지 까마득히 잊게 만든 주제가 ‘음악’이었다니. 짧은 기간 악기를 -구라철사금 (양금)- 배웠더래서 이때 중국 친구들 앞에서 한 곡조 뽑을 뻔도 하셨지요? (둘레에 양금이 없어서 무산되었지만) 곡담의 말을 빌어 등장하는 음악 예찬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부분입니다.

음악이란 아득하고 그윽한 가운데 슬며시 나무라고 깨우쳐 주며, 황홀한 가운데 힘이 불끈 솟게 해, 소리를 감추면 적막하다가 소리를 발하면 성대하고 조화롭습니다.

음악의 소리는 모발의 숲 사이를 감돌고 혈맥의 살결을 통과해서, 들려올 때는 어렴풋이 손님을 마중하는 것 같고, 사라져 갈 때는 가물가물 쫓아갈 수 없을 듯합니다. 만져도 손에 걸리는 게 없고, 보아도 눈에 뜨이는 게 없습니다만, 사람의 삭신을 시큰거리고 슬프게 만들며 애간장을 녹입니다.

대저 음악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까닭은 빠르되 호들갑을 떨지 않고, 드러내되 노골적이지 않으며, 심오하되 어둡지 않으며, 부드러우면서도 능히 의연할 수 있고, 곧으면서도 능히 완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언어와 문자 밖의 것으로, 말하기 어려운 말과 문자화할 수 없는 문장을 따로 개척한 것입니다. ***

세분이서 음악의 역사를 아우르며 동양 음악만을 가지고도 이토록 깊고 넓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때 만약 서양에서 활약하던 하이든, 모차르트까지 알았더라면?

북경에서 천주당(南天主堂)을 방문했을 때는 화재로 없어진 파이프 오르간을 아쉬워하셨지요?**** 노가재 김창업의 기록과 홍대용의 체험을 회상하며 그 서양 풍금이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자세히 설명하는 부분에서 찔렸습니다. 파이프오르간 팬이면서도 저는 한 번도 그 원리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으니까요. 아, 연암님 같은 분이 쾰른 대성당에서 바흐의 미사곡을 들었더라면! 그 천상의 소리가 또한 대단한 시(詩)와 문장을 탄생시켰을 텐데요.


이 시대의 화려한 여러 악기를 만난다면 양금대신 어떤 악기를 선택하실까요? 아마도 바렌보임이나 정명훈, 장한나처럼 한 가지 악기를 마스터하고, 최종적으로는 오케스트라에 눈독 들일 거 같습니다. 절대 음감도 있고 광대한 악기들의 하모니를 놓칠 분이 아니니까요.

선생님이 지휘자가 되신다면?

카라얀처럼 카리스마 넘치고, 번스타인처럼 깨가 쏟아지겠지요. 요즘이라면 두다멜, 메켈레를 제치고 유럽, 미국을 종횡하며 박지원, 박지원 하는 소리를 몰고 다닐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이런 눈에 보이는 요란한 인기에는 티끌만큼도 관심 없을 분입니다.

문학과 음악, 철학에의 조예가 두루 있으시니... (지휘 쪽은 홍대용에게 맡기고)

차라리 바그너처럼 어떤 종합예술을 창조하고자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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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암을 읽는다』 박희병 지음, 돌베개, 2006년

** 1772년 전후의 (36세 전후의) 음력 5, 6월 22일

*** 『열하일기』중 망양록에서, 박지원 지음 김혈조 번역, 돌베개, 2017년

**** 『열하일기』중 황도기략에서, 박지원 지음 김혈조 번역, 돌베개,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