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사나이를 향한 양가감정

연암 선생과의 대화

by 램즈이어

<연암집> 글을 읽다가 또 깜놀한 대목을 만났습니다. 선생님 산행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요. 선생님은 팔도의 유명한 산을 섭렵하셨지요? 가야산 속리산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못 가보는 묘향산 금강산까지도. 선생님 문장이 기개와 생명이 넘쳐남도 울창한 산세를 닮아서인 것 같았습니다. 늘 글쓰기의 비결을 자연에서 배우라고 하셨지요.

<총석정에서 일출을 보다>의 시(詩)를 읽으면 절절히 그 가르침이 와닿습니다.

조금 뒤에 수면에 작은 부스럼 생긴 듯

용 발톱에 잘못 긁혀 독기로 벌겋더니

그 빛이 점점 커져 만리를 비추누나

물결 위에 번진 빛 꿩의 가슴 비슷 하이 ---

산호나무 누가 베어 참숯을 만들었나

부상 나무 뒤이으니 더욱더 이글이글 ---

육만 사천 년이나 둥글둥글 내려왔으니

오늘 아침엔 동그라미 고쳐 어쩌면 네모 될라 *(부분발췌)


유람(遊覽)하면 놀 유(遊) 볼 람(覽) 자이니 문자 그대로 놀며 구경하는 것 아닙니까? 한가로이 등반하며 글을 구상하거나 시상(詩想)을 떠올리면서요. 요즈음으로 치면 당근 트래킹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무릇 이름난 산에 노닐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지극한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어려움을 물리치지 않으면 절경을 찾아낼 수 없다. 나도 평상시에 지난날의 발자취를 추억할 때면 벌벌 떨면서 스스로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산에 오르게 되면 전번의 다짐이 어느새 온데간데없어지고, 험준한 바위를 딛고 깊은 골짜기를 내려다보았다. 썩은 잔교(棧橋)와 앙상한 사닥다리에 몸을 의지하기도 하고, 왕왕 천지신명께 속으로 빌면서 다시 돌아가지도 못할까 벌벌 떨며 두려워하기도 하였다. *

알고 보니 선생님은 모험을 즐기며 아슬아슬하게 산을 타는 사람(Alpinist)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을 향해서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솟아납니다. 첫 번째는 사나이답고 멋지다. 두 번째는 아, 이렇게 위험천만한 일을 하다니 아찔하다. 모르는 사람이거나 관계가 멀면 전자의 감정이 크고, 가까운 사람이거나 가족이면 후자에 가깝습니다. 선생님의 독자라면 정신적 연대가 끈끈하여 누구라도 가슴 철렁 외마디 소리를 지를 겁니다.


“세상에나! 그 시절에 나이키 운동화도 없이 치렁치렁한 양반 복장으로...”

위의 문단이 있는 글은 <머리 기른 중을 찾아서>*인데 제목에도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스님이 아닌 방랑자이자 모험가인 왈짜** 김홍연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선생님은 험한 산중, 아무도 다녀가지 않을 법한 무너진 벼랑, 갈라진 바위 위에 홀로 새겨진 세 글자를 처음 만났었지요. 외지고 깊숙한 곳일수록 남겨진 그 이름을 발견하고는 무서움 중에 안심하며 나중에는 일종의 동지애까지 느끼셨고요.

지리산의 가장 험준한 봉우리인 천왕봉 등정 스토리를 올렸던 글벗이 있습니다. 등반을 잘 안 하는 사람이 식사도 챙기지 않고 준비 없이 떠난 산행이라 우리가 얼마나 마음 졸이며 읽었던지요? 글벗들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는데, 나중에 어머니께 크게 혼이 났다고 합니다.

저도 선생님 산문의 이 부분을 읽고 사모님께 일러바치고 싶었습니다. 가만 생각하니 아내가 힘없던 시절이라 연암님 어머니라도 꿈속에서 나타나 한마디 하셨으면 하는 바람이었고요.

저희 막내아들도 군대 시절 마라톤을 시작해서 잠시 산악, 사막 마라톤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한라산에 이어 알프스와 아타카마 사막을 누비니, 처음에는 자랑스러웠으나 갈수록 말리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요. 고만두는 날만 고대하다 일 때문에 다시 평지 마라톤으로 돌아오니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릅니다.

21세기는 사제(師弟) 간이 수평이므로 선생님이 서울에 도착하면 다짜고짜 제자(자칭)로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그렇게 위험스레 산을 타시면 어떡한답니까? 하마터면 저희가 열하일기 못 읽을 뻔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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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박지원 지음 김명호 편역, 돌베개, 2007년

** “왈짜란 대개 민간에서 방탕하고 물정 모르는 자를 일컫는 말인데, 이른바 검객이나 협객의 부류와 같소.” (p 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