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선생과의 대화
“요사이도 하우스 콘서트가 열리는가?”
선생님은 궁금하시겠지요. 물론입니다. 집이 넓은 어떤 가정에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열리는 경우도 있고, 서울 교외의 고급 빌라 단지에서 작은 오케스트라 연주 소식을 건네 들은 적도 있습니다. 이런 데는 못 가봤습니다만.
선생님을 도산대로 근처 어느 빌딩 B1으로 모십니다. 제가 몇 해 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하우스 콘서트 장소입니다. 어둑어둑한 골목이라고요? 별 간판이 없어도 나름 힙한 동네랍니다. 비록 지하지만 음이 잘 울리고, 연암님이 껌벅 가실지 모르는 커다란 와인 저장실이 딸려 있습니다. 음악회가 끝나고 간단한 시음도 가능하지요. 남산 아래 홍대용 집처럼 고즈넉함은 없지만 음악에 집중하는 시간이니 정원이 부럽지는 않네요.
선생님이 한 여름밤 음악회 글 말미에 짧게 적은 담헌 댁에서의 다른 에피소드는 연암 연구가들이 앞다투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내가 담헌의 집에 갔을 때 담헌은 한창 악사 연 씨와 거문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늘은 비를 머금어 동쪽 하늘가 구름은 온통 먹빛이어서 한번 우레라도 치면 금방 비가 쏟아질 참이었다. 이윽고 긴 우렛소리가 하늘을 지나갔는데 담헌은 연 씨에게 ‘저 소리는 어떤 음에 속할까요?'라고 묻더니 마침내 거문고를 가져와 그 소리에 화답하였다. 나는 이에 감발 되어 [하늘의 우레]라는 노래를 지었다. *
칸느 영화제 단편부문 황금 종려상 후보에 오를만한 장면이어요. 조선의 코페르니쿠스 담헌 홍대용은 천문학자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음(音)에 대한 조예도 깊었을까요? 천둥소리를 현악기로 표현할 생각을 하다뇨. 악기의 달인이자 하늘의 움직임을 연구하던 학자라 이 두 가지를 연결하고픈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걸까요?
거문고 가락과 우레를 동시에 스케치해 놓은 풍경에서 인간이 향유하는 음악과 자연과의 일치성, 연관성을 봅니다. 선율과 천둥과 글쓰기 감성이 함께 등장하니 신선하고 독특하여 마음속에서 뭔가가 꿈틀 했습니다. 선생님이 여기서 의도하신 바 그대로.
연암은 '최고의 독서와 최고의 글쓰기는 자연이다'라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자연의 미묘한 움직임과 변화, 그 생동감과 생기를 잘 읽어 내어 그것을 글쓰기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말하자면 연암은 문학이란 부단히 자연을 통해 자기 자신으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그러고 보니 저도 여러 해 전 비슷한 감각을 가진 일이 생각납니다. 하우스 콘서트가 끝나고 음악의 여운 속에 가로수 길을 걷는데, 한 줄기 차가운 비바람이 낙엽 무더기를 제 얼굴에 흩뜨렸습니다. 마음속 상념에 파문을 일으키면서요. 천둥 번개는 없었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날 저녁의 감흥을 詩로 적었습니다.
11월 17일 밤
1900년대 초
이십 대의 호로비츠가
건반을 두드렸을 때
파리의 살롱에선
자그만 소요가 있었으리라
11월 17일 밤
아이코닉 와인즈***에서
우리는 그네들이 부럽지 않았다
쏟아지는 가을비
허둥대던 낙엽도
이 小樂會를 시샘해서였을까?
엷은 와인 향속에
피아노의 정령들이
모두 깨어나
보석처럼 물방울처럼
부서지고 춤추어
마침내 그려낸
지금껏 세상에서 본 적 없는
달빛(Moonlight)과
찬란한
폭풍우(Tempest)를 보라
쌍둥이 녹턴은
눈물을 흘리고
발라드의 음표들은
처음 만났던 십 대 때처럼
싱그러우니
쇼팽의 연인을 향한 그리움일까?
까마득히 잊어버린 옛 약속?
곧 이루어지려 하는
어떤 꿈 이야기?
공기처럼 샘물처럼
귀한 것은 입장료가 없다
꼬트 뒤 론 블랑과
마주하며
살짝 몽롱한 채
질문을 던지다
11월 17일에 태어난
일리야 라스코프스키
도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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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름밤에 모여 노닌 일을 적은 글>『연암을 읽는다』박희병 지음, 돌베개, 2006년
** 위 책의 127 페이지 박희병 교수님의 해설에서
*** 5-6년 前의 이름이고 요즈음은 아이코닉 미디아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