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드꽃에게
벤 네비스 산의 중턱에는 평지처럼 보이는 언덕이 있다. 억센 관목들 사이에서 종종 만나는 마가렛과 엉겅퀴는 그리 반가울 수 없었다. 거친 곳에서 꽃의 자태는 더욱 빛난다. 조금 지나니 물결치는 보라의 향연이 펼쳐졌다. 광야의 공주 히드(heath)다. 그녀는 마봉드포레 님이 하이랜드에 올 때면 자신들 집에 묵는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로버트 번즈 이야기를 꺼내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그의 많은 시에 출연하지 않았나요?”
“우리는 여러 날들을 함께 했어요. 비바람 치는 날엔 피할 곳을 알려주고 순록 좇을 때는 내가 사슴 발을 미리 걷어 차 주었죠.”
그녀는 휴 한숨을 쉬며 표정이 잠시 부드러워졌다.
“추억을 많이 만들었군요.”
“많이 만들다마다. 한데 늘 조연이었어요. 세상에, 하이랜드에 살지도 않는 장미에게 그 큰 영광을 주다니. 말이나 돼요? “
히드 양이 갑자기 험악한 낯빛으로 소리를 꽥 질렀다. 아, 번즈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친 그 시 <A Red, Red Rose>를 가리키는 모양이다.
오, 내 사랑은 6월에 갓 피어난
붉고 붉은 장미 같다네
O my Luve is like a red, red rose *
That’s newly sprung in June
1794년에 발표해서 내 대학 시절 교양과목에서도 배우고 지금까지 애송되고 있으니 이 시의 유명세는 대단하다. 장미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 준 것이 못내 분한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번즈가 왜 그랬을까 싶다. 어떻게 해서든 히드 양을 달래주고 싶었다. 오늘 밤만이라도 그녀가 편하게 잠들 수 있도록. 궁리 끝에 詩는 詩로 막아 보기로 했다.
황야의 히드 (heath)
네가 사랑했던 시인이 장미에게 갔다고
슬퍼하는 히드야
그 옛날
아도니스의 피는 장미를 물들이고
전쟁터 사병의 피는 히드를 적셨으니
장미는 금수저, 자신은 흙수저
태생부터 다르다고
체념도 하는 히드야
맨 처음 창조주가 황무지를 보고
누가 저곳을 지킬까
큰 한숨 쉴 때
우람한 떡갈나무조차
모른 체 할 때
"제가 그곳을 지키겠습니다"
작고 여린 네 선조가
손을 들었다고 해
단단한 줄기와 인동초 향(香),
예쁜 꽃잎 하사 받으니
고독한 벌판의 부드러운 벨벳이
속은 어찌 그리 강인한지
네 속에서 잠드는 요정부터
산과 호수, 먼 북해 바다까지
너는 그들의 자랑
유일한 사랑
네 분홍향기 한 줌 챙겨
기나긴 겨울
에일 듯한 찬바람을 견딘다
들리지 않니?
벤 네비스 산의 속삭임
오, 내 사랑은 2월에 막 피어난
하양, 핑크빛 히드 같아라
O my Luve is like a pink, white heath
That’s newly sprung in February
네스 호수도 덩달아
오, 내 사랑은 7월에 갓 피어난
연보라, 남빛 히드 같아라
O my Luve is like a purple, violet heath
That’s newly sprung in July
시인의 사랑은 덧없어
시를 바치고도
여인의 곁을 종종 떠났다더라
하이랜드는 그렇지 않아
그 고백은 변함없고
앞으로도 영영
그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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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ve(사랑)의 철자가 Luve로 표기된 것: 중세 스코틀랜드 방언을 사용하고 청각적 시각적 운율을 얻기 위한 번즈의 의도임.『로버트 번스 시선: 휘파람을 부세요』 로버트 번스 지음 윤명옥 옮김, 유페이지 2004년
마봉 작가님의 [백수 스코틀랜드 여행기]를 읽고 적어본 댓글 픽션입니다. 여러 정보와 표현들을 그곳에서 빌렸습니다.
https://brunch.co.kr/@mabon-de-foret/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