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따구의 한탄
하이랜드 깔따구(미지 midge)를 인터뷰하겠다는 내 소원을 위해 마봉드포레님이 챙겨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최고급 기피제, 두 번째는 투명 망 가리개. 덕분에 그물망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어떤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적당한 거리”라는 것은 사람 사이뿐 아니라 다른 종(種) 간에도 대화를 순적하게 하나 보다. 미지는 오랜만의 대면 만남에 여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역시 색안경 끼지 않고 우릴 보는 이는 시인 밖에 없어요.”
“난 시인이 아니야. 시인 지망생이지.”
“그렇게 내숭 떨지 마세요. 히드가 오늘 아침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왜 그리 단체로 떼 지어 등산객을 못살게 굴어?”
“못살게 군다고요? 대대적인 환영식인데….”
“환영 인사라고?”
“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이 이처럼 쓸쓸한 곳에 왔는데. 어떻게 가만있을 수 있어요? 몇천 몇만 대열을 갖춰서.”
“…”
“호수도 산도 점잖만 빼고 있잖아요. 우리라도 춤추며 날뚸야죠? 스펙터클한 군무(群舞)로.”
“그럼 물지를 말던가. 우리나라 깔따구처럼 얌전히.”
“우리 같은 열정파는 가만 못 있어요. 스킨십을 나눠야죠. 일종의 간지럼이랄까. 사람들도 서로 간지럼 태우지 않나요?”
“많이 친하고 나서 애기지. 피부를 물어 피도 빨아먹는다며?”
“모기처럼 깊이 침을 박지 않고 질병을 옮기지도 않아요. 고작해야 빨갛게 부어오르는 건데.”
토실한 고등 동물과 2-3mm 미물의 의사소통 먹통(communication failure)을 어찌하면 좋을까? 이 실랑이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로버트 번즈는 어땠어?”
미지(midge)도 그 이름이 나오자 다소 안색이 변하며 언짢아했다.
“저 아니면 하이랜드 시(詩) 못 썼어요. 뭇 도널드 이야기며 차알즈 스튜어트 군대며.”
“사연들이 네게서 나왔단 말이지.”
“흥! 고약한 생쥐 녀석. 허구한 날 훔치기만 하는 놈이.”
미지도 히드처럼 갑자기 얼굴이 벌게지며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쥐가 왜 나와?”
“번즈는 도대체 의리라고는 없다니까요. 가련미로 단장하고 불쌍한 척 하니. 주인공으로 스카우트해주질 않나.”
번즈의 대표작 <생쥐에게> 때문인가?
“저희는 미움만 받게 방치하고선.”
셀럽(Celeb)은 애정 표현을 함부로 하면 안 되나 보다. 삐딱해진 미지의 심기를 어떻게 풀어주나 고민하는데.
“그의 결정적인 비밀을 알아요. 이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비밀?”
“그는 사실 로우랜드 사람이에요. 하이랜드가 고향인 척 여러 가지 시를 지었죠. 내 마음은 하이랜드에 있네 어쩌네. 흥.”
로버트 번즈가 로우랜드 사람인 것을 전혀 몰랐다. 그렇다면 시 속의 하이랜드를 향한 마음은 여행과 방랑 시절을 향한 그리움일까? 셋의 삼각관계를 생각하느라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미지(Midge)의 탄식>
내 신세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보다
못하다네
그는 사람들이 보기는 했으니까
나와 눈도 마주치기 전에
배낭객은 손을 휘젓고
소문만 듣고서 미리 피하네
바라보기는커녕
그물망과 독한 냄새로
저 멀리서부터
내쫓으려 하지
미물(微物)에 그토록 자비로운
마봉드포레 님조차
창검으로 대적하고
쏜살같이 가버렸어
내가 뭘 잘못했을까?
꿔서는 안 될 꿈을 꾼 것?
나비가 되고
거미가 되어
소녀의 팔에 살포시 내려앉아
사랑스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꿈
거미줄을 짓는 척
그 검은 눈망울을
가만히 쳐다보는 꿈
잘못이라면 아마도
시인의 사랑을 빼앗긴 죄
그렇지 않았다면
다수 동정표가
모두 내 것일 텐데
그가 월동(越冬) 걱정까지 하며
이렇게 부드럽게
사과했을 텐데
*진심으로 미안하구나,
그대를 깜짝 놀라게 해서,
인간의 주권이
자연의 사회적 결속을 깨서,
그런 나쁜 견해를 정당화해서,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삶을 사는 동료일 뿐인데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대도 때로는 흡혈을 했겠지
혹 그렇다 해도,
그게 어쨌단 말인가?
불쌍한 곤충이여, 그대도 살아야 하는데!
페트병 네 개 정도에서 0.1ml 실핏줄쯤이야
집도, 살림살이도 없이
겨울철의 진눈깨비와 거친 서리가 있는
추위를 견뎌내야 할 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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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부터는 번즈의 시구를 옮겨 온 것입니다.
조금 변형한 구절도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대도 때로는 도둑질을 했겠지. 혹 그렇다 해도,
그게 어쨌단 말인가? 불쌍한 짐승이여, 그대도 살아야 하는데!
스물네 개의 볏단에서 낟알 한 톨쯤이야
『로버트 번스 시선: 휘파람을 부세요』 로버트 번스 지음 윤명옥 옮김, 유페이지 2004년
<생쥐에게> 중에서
마봉 작가님의 [백수 스코틀랜드 여행기]를 읽고 적어본 댓글 픽션입니다. 여러 정보와 표현들을 그곳에서 빌렸습니다.
https://brunch.co.kr/@mabon-de-foret/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