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ormal one

위르겐 클롭, 그는 누구인가

by looprevil

위르겐 클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자 롤모델이다. 축구는 손흥민 선수로 입문하였지만 리버풀은 클롭 감독으로 입문했기에 나는 그의 축구가 너무 좋았다. 내가 축구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된 것도 클롭 감독의 영향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오늘은 내 롤모델이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인 클롭의 감독 일대기를 써보겠다.



선수에서 감독으로

위르겐 클롭은 마인츠에서 1990년부터 2001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였다. 그가 선수 인생 대부분을 보낸 마인츠는 34살의 클롭에게 공석인 감독자리에 앉아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렇게 그는 선수은퇴와 동시에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시즌 도중 부임에 어떠한 코치 경력도 없었기에 마인츠 입장에서는 도박수에 가까웠다. 하지만 우려와 반대로 클롭은 마인츠를 강등 위기에서 구해냈고 잔류에 성공시켰다. 클롭의 마인츠는 다음 시즌 1부 리그 승격까지 바라볼 수 있었으나 승점 1점 차로 아쉽게 실패하고 만다. 그다음 시즌마저도 아쉽게 승격에 실패하며 1부 리그를 향한 좌절만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03/04 시즌 마침내 마인츠는 창단 99년 만에 1부 리그 승격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이뤄낸다. 그렇게 1부 리그에서 안정적인 성적을 내던 클롭의 마인츠는 아쉽게도 06/07 시즌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당하고 만다. 클롭은 마인츠를 다시 1부에 올려놓기 위해 다음 시즌에 노력하였지만 승격에 실패하고 자진 사임 의사를 밝히며 총 18년간 몸담았던 마인츠를 떠나게 된다. 클롭은 이때까진 그저 잠깐 반짝하던 어린 감독 중 한 명이었다.




무너진 명가 재건

그가 사임한 07/08 시즌 분데스리가의 명문 클럽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또한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었다. 도르트문트는 예전의 명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저 그런 중위권 클럽이 되었고, 과연 다시 명문 클럽에 올라갈 수 있을지도 장담 못할 수준이었다. 이때 보드진은 마침 좋은 매물로 시장에 나온 위르겐 클롭에게 명가 재건을 부탁하게 된다. 마인츠를 창단 처음 승격시킨 엄청난 성과는 있었지만 아직 검증이 덜 되었다고 생각해 우려 섞인 시선이 많던 시기였다. 하지만 마인츠때와 마찬가지로 클롭에 대한 도박수는 성공이었다.


부임 첫 시즌에는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던 구단의 재정 상태에 맞춰 영입을 하며 리빌딩을 하였는데 이때 영입된 선수 중에는 이영표도 있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도르트문트 재건의 주축이 된 마츠 훔멜스, 피슈체크, 레반도프스키 등을 영입하였고 유스에서 엄청난 재능을 나타내던 마리오 괴체 또한 1군으로 콜업했다.


야심 찬 영입과 함께 10/11 시즌 도르트문트에게 9년 만에 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게 된다. 그다음 시즌 리그 2연패와 함께 23만에 포칼 컵 우승에도 성공했다. 12/13 시즌 도르트문트는 16만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는 엄청난 성과를 이루게 된다. 그렇게 준수한 성적을 내며 순항하던 클롭의 도르트문트는 14/15 시즌 전반기에 17위라는 엄청난 부진으로 고생하지만 순위를 끌어올려 7위로 마무리하게 된다. 결국 2014년 4월 클롭 감독은 자진 사임 의사를 밝히며 시즌이 끝나면 구단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클롭 감독은 사임 의사와 함께 더 이상 도르트문트의 감독으로서 자신이 적합한지 답을 할 수 없고, 현재 도르트문트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그게 지금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존재가 너무 커짐으로 인해 팀이 과거의 영광에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클롭 감독의 사임 의사는 도르트문트의 팬들을 충격에 빠지게 하였다. 성적 부진이 있긴 하였으나 무너진 명가를 다시 재건시킨 주역을 쉽게 떠나보낼 수는 없던 것이었다. 클롭의 도르트문트는 이렇게 끝이 났지만 도르트문트는 현재까지도 리그 상위권에서 꾸준한 성적을 내는 팀이 되었다.



클롭의 게겐프레싱은 이때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하였다. 처음엔 센세이션 한 전술이었으나 그의 도르트문트 커리어 막판 리그팀들은 파훼법을 찾아내며 경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점점 어렵게 되었고, 아마 그곳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이다. 게겐프레싱의 등장으로 클롭 감독은 자신만의 명확한 색채를 가진 감독으로 더 발전하게 되었다.




I'm the normal one.

도르트문트에서 사임한 후 당분간 축구에서 떨어져 지내고 싶다는 뜻을 밝힌 클롭 감독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던 중 리버풀의 보드진에게서 리버풀의 감독이 되어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그가 부임한 15/16 시즌 리버풀은 브랜든 로저스 감독이 이끌며 엄청난 성적 부진을 겪고 있었고, 브랜든 또져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 또한 가지게 되었다. 그 시기 리버풀은 유럽을 재패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조롱거리로 삼아지던 시기였던 만큼 리버풀 팬들은 클롭의 부임을 간절히 원했다. 마인츠와 도르트문트에서 이미 엄청난 성공을 거둔 만큼 기대도 컸다.


15/16 시즌 로저스 감독의 중도 경질 이후, 2015년 10월 8일 리버풀 감독직에 부임하며 그의 리버풀 커리어가 시작된다. 그는 리버풀 선수들과의 첫 미팅에서 TEAM이라는 글자를 적어 보여줬다.


T - Terrible to play against (상대하기에 끔찍한)


E - Enthusiastic (열정적인)


A - Ambitious (야심)


M - Mentally-strong machines (정신적으로 강인한 기계)



상대하기 끔찍한 열정적이고 야심차며 정신적으로 강인한 팀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첫 기자회견에서 '무리뉴는 자신을 스페셜원(special one)이라고 하였는데 당신은 뭐라고 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I'm the normal one'이라는 답을 했다. 클롭 감독의 재치 있는 답변으로 이 기자회견은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그는 4년 안에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한다면 스위스로 가겠다는 말을 하였다.


클롭의 첫 시즌은 중도부임인만큼 거창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리그는 8위를 기록했지만 유로파리그와 카라바오컵 준우승이라는 믿기지 않는 성과를 내었다. 이렇게 또 한 번 증명한 그는 다음 이적시장에 호베르투 피르미누, 조 고메즈, 제임스 밀너 등의 훗날 리버풀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스쿼드를 완성해 나갔다. 바로 그다음 시즌인 16/17 시즌 리그 4위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하면서 자신을 증명해 냈지만 아직 우승컵을 들지는 못했다. 그 후 여름에는 모하메드 살라, 앤드류 로버트슨을 영입하였고 겨울에는 버질 반다이크를 영입하며 리버풀 왕조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17/18 시즌 마침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지만 베일의 엄청난 오버헤드킥과 리버풀의 골키퍼 카리우스의 치명적인 실수들이 연발하며 레알 마드리드에게 3대 1로 패배하면 다시 한번 준우승을 하게 된다. 그 후 카리우스의 폼은 하락하며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AS로마에서 알리송 베케르를 영입하며 마침내 리버풀 1.0을 완성하게 된다.



안필드의 기적과 4년 만에 지켜진 약속

18/19 시즌 리그에서는 맨시티에게 승점 1점 차로 2위에 그치며 또다시 준우승을 했지만 챔피언스리그는 달랐다.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바르셀로나에게 3대 0 대패를 당하며 또다시 우승에서 멀어지는듯 했으나 2차전에 안필드로 바르셀로나를 불러들인 리버풀은 달랐다. 원정팀의 무덤이라 불리던 안필드는 그 명성을 다했고, 경기 시작 후 6분 만에 기적형 공격수 디보크 오리기의 선제골로 시작한 경기는 53분에 바이날둠의 추가골에 이어 2분 만에 또다시 바이날둠이 득점을 하며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78분 그 유명한 코너킥 득점이 나오면 바르셀로나를 4대0으로 이기는 기적을 만들게 된다. 클롭 감독은 2차전 경기 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일반적으로 현 상황에서 역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너희들이기에 분명히 특별한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안필드에서 기적이 펼쳐진 후 만난 결승 상대는 마찬가지로 4강에서 아약스를 기적적으로 꺾은 토트넘이었다. 기적의 연속이었던 4강과 달리 결승은 경기시작 1분 만에 시소코의 핸드볼과 살라의 페널티킥 득점으로 리버풀에게 승기가 잡혔다. 결국 87분 오리기의 추가골이 나오며 2대0으로 승리하며 04/05 시즌 이스탄불의 기적 이후 14년 만에 안필드로 빅이어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클롭이 입단 당시에 했던 4년 안에 우승하겠다는 말은 딱 4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30년의 기다림

18/19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였지만 리버풀 팬들의 오랜 염원인 리그 우승은 아직 이루지 못하였다. 맨시티에게 승점 1점 차로 준우승을 한만큼 더 간절했다. 19/20 시즌 32승 3무 3패로 마침내 팬들의 오랜 소원이었던 리그 우승을 이뤄낸다. 리버풀의 레전드인 스티븐 제라드도 하지 못했던 리그 우승을 드디어 이뤄낸 것이다. 리그 개편 이후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던 리버풀은 30년 만에 리그 우승을 하며 클롭 감독의 리버풀을 승승장구를 하였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무관중 경기 진행으로 인해 팬들과 즐길 수 없었던 터라 팬들과 함께 우승을 축하할 수 있게 다시 한번 우승을 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21/22 시즌 리그는 또 아쉽게 맨시티에게 승점 1점 차로 밀렸지만 관중들 앞에서 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된다. 관중들 앞에서 그렇게 바라던 우승 트로피를 다시 들게 된다.



리버풀 2.0

2024년 1월 26일 리버풀 sns에 클롭의 인터뷰 영상이 올라온다. 내용은 클롭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리버풀을 떠난다는 것. 클롭은 번아웃이 왔고 구단에는 이전에 사임의사를 전달했었다고 한다. 또한 클롭은 리버풀 왕조를 이끌었던 주전 선수들의 이적과 노쇠화로 리빌딩을 진행했고, 리버풀 2.0을 만드는데 필요한 마지막 단계는 본인의 자진사임이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시즌 카라바오컵에서 우승하며 팬들에게 마지막까지 우승 트로피를 남기고 떠났다.



클롭이 남긴 유산들

"당신이 들어올 때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떠날 때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클롭 감독이 도르트문트를 떠날 당시에 했던 말이다. 처음 리버풀에 왔을 때 그는 그저 유망한 젊은 감독이었지만 리버풀을 떠날 때는 리버풀의 전설이 되어 떠났다. 패배에 익숙해진 팬들을 승리에 익숙해지게 만들고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으며, 무너진 리버풀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클롭 감독이 부임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리버풀이 지고 있자 경기시간이 남았음에도 팬들이 경기장을 떠나는 것을 보고 인터뷰에서 팬들에게 골을 먹히자 팬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자신은 외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지금은 경기에서 지더라도 자리를 지키는 팬들이 대다수가 되었다. 그가 떠날 때 리버풀 팬들에게 클롭 감독은 단순한 명장을 넘어 팬들의 지주가 되어주었다. 현재 클롭의 게겐프레싱은 유럽 축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전술이 되었고, 수많은 팀에서 게겐프레싱을 모티브 삼아 전술을 만들고 있다. 그렇게 그는 리버풀을 비롯해 그가 맡아왔던 도르트문트, 마인츠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가 감독했던 모든 클럽들의 응원가는 you will never waik alone을 쓰고 있다. ynwa의 가사를 가장 잘 따른 감독이라고도 생각한다. 앞으로도 클롭 감독의 커리어를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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