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는 노처녀 였다. 35살이면 아직 ‘노’는 붙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회사에서 받은 생일 축하화환에는 ‘실바타운 임박’이라고 쓰여있었다. 10년 동안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딱히 연애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아니 흥미는 있어도 감정소비 할 생각만으로도 피곤했고 여자들끼리 있어도 꺄르르꺄르르 재밌기만 했다. 하지만 노처녀라는 분위기 탓인지 소개팅 제의가 많이 들어왔고, 나라는 사람 자체에 거절기능이 미탑재되어 몇번 거절하는 것도 곤역이었다. 그때 동료가 남편의 직장상사와 소개팅을 제안했고 나는 수락했다.
소개팅 당일, 왜 이렇게 나가기가 귀찮은지 처리할 일을 핑계로 취소하고 싶었지만 직원들이 알아서 하겠다며 등을 떠밀어서 겨우 약속장소로 향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 오늘 소개팅해요’ 하는 복장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부끄러웠다. ‘내가 왜이리 불편한 자리에 나와있나. 오늘 같은 불금은 알싸한 깻잎 두장에 약간 불었어도 양념이 잔뜩 밴 당면과 야채곱창을 듬뿍 올려서 쌈장, 마늘으로 데코하고 차디찬 소주와 함께 먹으면 캬~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릴텐데’ 마음과는 달리 7센티 구두와 조금만 먹어도 불편할 것 같은 허리띠는 자꾸만 집에 가고 싶게 했다.
약속시간이 1시간이 지났는데 남자는 올 생각을 안했다. 카톡으로 조금 늦을 것같다고 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내 성격에 오고 있는 사람을 두고 가버린다?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이 남자가 처음부터 시간이 많이 걸릴것 같다고 했다면 좋게 말할 거리를 찾았겠지만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볼때마다 거의 다 왔는데 앞에서 막힌다는 답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미련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할 사람을 만나려고 그랬네 하지만 운명적인 기다림은 아니었다. 기다린 시간이 있어 가기도 애매하고 고객들에게 받았던 부당하지만 익숙한 대우가 나를 그 자리에 있게 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뜻하지 않게 여유시간 되어 나를 위함도 있었다.
두 시간쯤 기다렸을때 차라리 잘됐다. 피곤한 인간관계를 추가로 만들 필요 없으니. 하며 집에 가겠다는 연락을 하려던 찰나 전화가 왔다. 도착했다는 전화였다. 무심코 주위를 돌아보니 내 이상형과 다른 너무나 왜소한 체구의 한 남자가 휴대폰을 귀에 대고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주변인들에게 항상 얘기하는 순간이지만 나는 아닌 척 뒤돌아서 가고 싶었다. 첫눈에 반한 상대를 만나면 머릿속에 종이 울리는 로맨스 소설의 로맨틱한 순간은 없었다. 이 남자를 만나 기다림을 끝내기보다 나 혼자 누리는 여유시간이 지속되길 바랄 뿐. 그러나 미안함이 목소리에서까지 느껴지는 그에게 나는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착하고 친절한 회사에서의 내가 나타나 늘 그렇듯 불편한 마음에도 웃고 말았다. 남편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