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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모국경 Jun 26. 2024

6월 25일 20시 3분 석양을 수확한다.

엄마 : 도야 너는 자랑스러운 엄마가 좋아? 부끄러운 엄마가 좋아?


엄마는 초등 3학년에게는 가히 어울리지 않을 만큼 간단한 질문을 했다.

엄마 시나리오에 있는 아들 대답은 마땅히 '자랑스러운 엄마'였다


아들 앞에서만큼은 교양 있는 멋진 엄마이고 싶었던 엄마는, 평소에도 아들 잘못을 직접적으로 꾸짖지는 않았다. 대신 에둘러 질문을 통해 아들을 가르치는 억지를 보여왔다.

이 날도 그랬다.

부끄러운 행동을 한 아들에게 직접적으로 야단치는 대신 '부끄러운 엄마보다 자랑스러운 엄마'가 더 좋은 것처럼, 엄마도 자랑스러운 행동을 하는 아들이 더 좋다는 걸 빗대어 알려줌으로써 아들의 삐뚤어진 행동을 고쳐놓으려 했다.


그런데 엄마의 시나리오는 빗나갔다.


아들 : 나는 부끄러운 엄마도 자랑스러운 엄마도 싫어. 난 평범한 엄마가 좋아. 그런데 엄마는 평범하지가 않고,

(한 템포 숨을 뱉고 느린 톤으로 말을 이었다. ) 내가 엄마에게 평범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야...



무신경해도 되는 '평범'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내 신경을 건드려 올 줄을 꿈에도 몰랐다.

아들에게 평범한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 왜 아들 눈에 난 평범하지 않은 엄마였을까?

'평범'의 쓰임은 '사랑'처럼 뭔가 좋게 쓰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평범은 하찮키까지한 단어다.

게다가 난 평범한 엄마를 넘어 좋은 엄마를 꿈꾸는데 평범한 엄마조차 되지 못한다니

내가 얼마나 좋은 엄마를 갈망하고 노력했는데...

'좋은 엄마 학원'이 없어도 독학으로 좋은 엄마를 공부하고자 읽은 자녀양육서만 해도 어마무시하고, 퇴근하고 옷도 안 갈아입고 아들과 축구를 차고, 다시 밥을 챙겨 먹이고, 아들을 데리고 야간 동화구연사 자격증을 따러 다리고 그렇게 아들을 위해 동화도 지었는데...

동화 제목이 "우리 엄마 사세요?"라서... 동화 제목을 잘 못 지었을까? 어떻게 내가 하찮아서 취급도 안 한 '평범한 엄마'도  되지 못하고 꼴찌 엄마가 된 것인지. 내가 기준한 엄마의 형상에 매몰된 사고를 하고 있었다.


아들 : 엄마는 나를 한 번도 유치원에 데려다준 적 없어


아들에게 '좋은 엄마손'은 동화 쓰는 손이 아니라 자신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가는 엄마 손이었다.

엄마 손이 닿지 않은 곳은 유치원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아침밥은 고사하고 깨워서 학교 보내본 적도 없고 심지어 집에 들어가지 않은 날도 많아서 초등학생 아이 혼자서 잠을 자고, 혼자 일어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설거지를 하고 학교에 갔다. 

함께 잠을 잔 날도 다음날 나는 6시면 출근을 해야 했다. 마야의 노래 '나를 외치다'를 크게 틀고 운전을 한다.


'새벽이 오는 소리  눈을 비비고 일어나 곁에 잠든 너의 얼굴 보면서 힘을 내야지 절대 쓰러질 순 없어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


왕복 150km 거리를  2년간 출근을 해야 했고 또 그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멀어진 왕복 180km 거리를 출근해야 했다.

왕복 150km 출근 마지막날 이번에는 집 가까이 발령받겠지 하던 기대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고 저녁 늦게 혼자 놀이터에 있는 아들을 차에 태우고선 엉엉 울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엄마가 일해서 미안해"

엄마가 우니 아들은 그냥 따라 울었다.

아들의 진짜 울음은 소리가 없다. 정말이지 수사적 표현처럼 닭똥 같은 굵은 눈물만 뚝뚝한다.

그렇게 한참을 둘이서 울었다.  울음을 먼저 멈춘 건 아들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괜찮아 엄마~, 엄마가 일하니까 이렇게 더운데 우리 에어컨 트는 거잖아" 7월 발령이었다.

순간 빵 터졌고 우린 그날 같이 웃었다.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 엄마의 시간도 흐르고 아들이 중 3학년이 되어서야 평범하다 할 수 있는 엄마의 자리로 발령도 받게 되었다. 지나온 시간의 구구절절의 사연은 삼류소설 같아 숨긴다.


평범한 자리 발령으로 이제는 꿈의 실천 목록도 하나씩 행하고 있다.

꿈의 실천목록 중 하나는 우렁이 각시를 흉내낸 '우렁이 엄마'다

점심시간, 한 끼를 굶고 그 시간을 이용해 집으로 간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밥 한 끼 굶는 것만큼 효용성 높은 것도 없다.  

집에 도착하면 아들이 뱀 허물 벗듯 벗어 놓고 간 빨래거리와 부러진 아이스크림 봉지를 치우고, 이불을 털고 깨끗이 환기까지 시키고 나면 1차 작업은 끝난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와 먹을 수 있게 간식을 만들어둔다.

여전히 엄마는 아들의 기상보다 이른 출근이지만 이제는 전혀 게이치 않는다. 언제나 곁에 있다는 든든한 보험 같은 발령이 또 한 번 이리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아들이 축구하다 코뼈가 부러졌다고 연락이 와도 당황은커녕 내 입가엔 미소가 있다. 남들이 보면 계모가 아닌가 하는 의심 들게 하는 표정이겠지만 난 친엄마이고 내 미소엔 위선도 없다.

'아 ~~ 나는 아들 옆에 있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대응할 수 있다.' 이런 안도에서 오는 행복감은 별스러웠던 삶을 산 나의 평범한 수확이다.


평범한 엄마를 동경하던 아들은 이제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엄마의 위치는 평범을 찾았지만 고등학생이 된 아들과의 대화는 여전히 평범하지(다정하지) 않다.

아들은 자신 필요의 말만 하는 합리적 소통 인간이 되었다.

"엄마 머리 자르게 톡으로 돈 보내죠."

"엄마 7시 50분에 학원 데려다죠"

"엄마 김치찌개 햄도 넣어"

이 모든 것이 남들 눈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난 그지없이 좋다... ^^

6월 25일 20시 3분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석양을 느낀다.

이 또한 평범함의 수확이다.

 

가만히 있어도 주어진 평범함이 아니라 잘 견뎌낸 대견함으로 획득한  평범함을 하루에도 몇 번이고 자꾸자꾸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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