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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모국경 Sep 14. 2024

어른의 '말뚝'과 어른의 '말투'

부제 : 청소년 디지털유해환경에 대한 잡념들

납득이 되게

납득, 요즘 들어 머릿속에서 자주 떠올리게 되는 단어다.

아마도 '하지 말라'라는 말을 어떻게 잘해야 하나 고민하다 보니 '납득이 되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오늘도 등교하는 아이에게 "차 조심해~", 한 마디 던지고 나도 출근을 했다.

이 말은 40년도 더 전에 우리 엄마가 내게 해 준 말이고, 지금은 내가 우리 아이에게 건네는 말이다.

버스가 늦게 와서 지각했다고 둘러대기보다 차가 너무 막혀 지각했다는 말이 더 그럴싸할 만큼 차는 아주 많아졌고 덩달아 '차 조심해야 한다'는 말은 여전히 그리고 강하게 유효하다.

 

하지만 출근해 사무실에 앉으면 모든 잔소리가 그러하듯 한마디로는 부족했음에 아차! 싶어 진다.

차뿐 아니라, 친구들이 공부 잘하는 약이라고 건네는 마약도 조심하고, 쉽게 용돈 벌 수 있는 게임이라고 꼬시는 사이버 도박도 조심하고, 키득키득 거리며 우리 장난 삼아해 보자 하는 딥페이크(디지털 성폭력)도 조심하라고 아이에게 신신당부했어야 했는데, 잔소리를 잔소리답게 장황하게 하지 못하고 한 마디로 끝낸 게 영~ 찝찝하다.


그나마 차는 교통안전을 외친 그간의 구호와 교육 덕분에, 녹색어머니의 봉사 덕분에, 교통경찰 덕분에 웬만큼 경각심과 질서도 지켜져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11년째 어린이 교통사망사고 제로라는 데이터로 불안을 덜어주고 있지만, 자나 깨나 휴대폰과 딱 달라붙어 연애하듯 디지털 세상에 사는 아이에게는 디지털 순찰대도 없는 곳에 디지털 환경의 위험성을 납득되게 설명해 주지도 않고 그 위험한 도구를(스마트폰) 손에 쥐어 학교엘 보냈다.



디지털 세상

2007년 애플의 스티브잡스는 검은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심플하게 입고 나와 심플한 물건 하나를 소개했다.

'아이폰'이라 불렀다. 

그리고 2010년 갤럭시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사피엔스가 되었다.


1. 2011년을 기점으로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안전사고에서 고의적 자해(자살)로 바뀐다. 고의적 자해(자살)가 10.8%, 안전사고가 3.9%, 악성신생물(암)이 2.5% 순으로 단연 압도적이다.

(출처 : 2024년 청소년 통계)

 

2. 죽고 싶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로 심리적 불안 및 우울이 40.9%,  가족 간의 갈등(가정폭력, 학대)이 31.7%,  선후배나 또래와의 갈등(학교폭력) 9%, 학업문제 6.1%, 미래(진로)에 대한 불안 5.7%, 기타 순으로 조사되었다. (출처 : 여성가족부, 위기청소년지원기관이용자생활실태조사)


3. 10대 들의 인터넷 주 평균 이용시간도 2014년 14.4시간에서 2022년 24.3시간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고, 청소년 자살자 수 또한 2014년 평균 7.4명에서 2022년 평균 10.8명 동일한 추이를 보인다.

(출처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터넷이용실태조사, 통계청 인구동향조사)


과연 이 데이터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불안 세대'에서 밖에서 친구와 놀기보다 스마트폰, 태블릿을 보며 자란 Z세대를 '불안 세대'로 규정하면서 친구와 대면 활동을 하는 시간이 대폭 감소하는 '사회적 박탈'이 일어났고 우울증, 불안, 집중력 상실 등 청소년 정신 질환이 심화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경찰관이 나의 시선에 포착된 위험의 징후들...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는다. <김수영의 풀>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는다.'

김수영의 시 <풀>을 볼 때면 풀은 어떻게 바람이 불어올 줄 알고 바람보다 먼저 누웠을까? 궁금해진다. 풀은 어떤 데이터, 어떤 징조를 읽고 강풍이 올 것이라 예견했을까' 궁금해진다. 내가 풀의 이런 능력을 부러워하고 궁금해하는 것은 시적호기심에서 우러나오는 문학적인 것이 아니라 나의 일에서 마주하는 막막한 마음 때문이다.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전일 112 신고철을 보며 위험의 메시지, 위험의 징후를 읽어내는 일이다. 징후는 말 그대로 낌새는 풍기되 눈에 보이는 뚜렷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예방은 바람이 눈앞에 나타나기도 전에 알아차리고 풀이 누웠듯이 미미한 조짐을 가지고서도 알아차리고 막아야 하는 것이 예방이다. 그런데 증명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기 전까지는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고 설령 낸다고 해도 미적지근한 소리로 취급받기 일쑤다. '예방해야 합니다. 보호 법규가 있어야 합니다. 교육해야 합니다...' 이런 미지근 소리에 되돌아오는 대답 또한 응당 미지근하다.  

"앞으로 필요는 하겠지만 아직은..."





어른의 말뚝

그렇게 '아직은...' 하는 사이, 스마트폰을 쥔 내 손안에 범죄들은 바이러스 번지듯 아이들 속으로 타고 들어갔고 뜨뜻미지근하던 데이터도 어느새 높은 수치로 탈바꿈해 사회를 뜨겁게 달구더니 급기야 각종 전쟁까지 선포하게 했다.

'마약과의 전쟁', '딥페이크와의 전쟁' 그 전쟁들에서 우리 아이들이 적군이 된 듯 '체포(검거)' 되었다. 그리고 '~범죄자', '~사범'의 명찰이 붙여졌다.


마약범죄 신분위장 수사 허용 법안 발의 (2024. 09. 06. 뉴시스)

특히 10대 마약사범은 1477명으로 전년 481명 대비 약 207%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딥페이크 수사' 피의자 79%가 10대 (2024. 09. 12. 동아일보)

딥페이크 성범죄로 검거된 피의자, 연령대별로 구분하면 10대 7.9%를 차지했다.

딥페이크 범죄가 10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등을 중심으로 확산되자 (중략)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을 중심으로 딥페이크 관련 범죄를 철저히 추적해 범인들을 검거하겠다는 방침이다.


청소년 도박 10명 중 7명 '중, 고생'때부터... 금품갈취로 자금 마련 (2024. 9. 12. 뉴시스)

도박사범 3명 중 1명이 10대... 9세 초등학생도 (2024. 04. 25. 중앙일보)

'청소년 대상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을 벌여 청소년 1035명을 포함한 2925명을 검거했다.

전체 도박 사범 3명 중 1명은 청소년인 셈이다.


범죄를 저질렀으니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물리적 유해환경에 대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법과 제도를 만들었듯 디지털 유해환경에서도 안전망 즉 말뚝을 박아 우리 아이들을 보호했는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환경  

유럽연합(EU)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불법, 유해 콘텐츠 제거 의무를 지게 하는 '디지털 서비스법(DSA)'을 도입했다. 앞서 5월에는 세계 최초로 포괄적 성격의 AI규제법을 최종 승인했다. 딥페이크로 만든 이미지에 'AI로 조작된 콘테츠'라고 표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한국에는 플랫폼에 책임을 지우는 법은 없다. 게다가 2021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영상물이 발견되면 수사기관이 이를 즉시 삭제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회의 만료로 폐기됐다.


 교육

우리 아이들이 사이버상의 범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제대로 된 교육도 병행되어야 했다. 학교보건법 제10조에 교육의 의무가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법에 의무적 명시한 것으로만은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위한 말뚝으로는 부족하다.  

아이들에게 단순히 '하지 마라' 또는 '위험하다' 수준의 교육이 아니라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 왜 위험하다고 말하는지 아이들 시선에서 아이들이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과 방법으로 '납득이 되게' 알려주어야 한다. 아니  최소한 마약인 줄 몰라서, 도박인 줄 몰라서, 성범죄물인 줄 몰라서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고 범죄자가 되는 일은 없도록 막아주어야 그것이 어른의 말뚝이다.  


 디지털 순찰대

디지털 유해환경이 아이들에게 침투하지 못하도록  디지털세상에서도 순찰을 돌아야 한다.

그리고 발견하면 차단하고 삭제하는 시스템 또한 재유포될 시간이 없도록 바로 기술적으로 자동화 처리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눈과 손이 부족하면 AI의 눈과 손을 가져다 365일 24시간 순찰(모니터링) 하고 더 이상 유포되지 않도록 차단(예방) 해야 한다.

2023년 서울시는 AI 디지털 성폭력 삭제지원 시스템을 개발, 행안부 혁신 대상을 수상했다. AI를 도입한 지 7개월 만에 총 45만 건의 영상물을 모니터링했으며, 이는 AI 도입 전 사람(삭제 지원관)이 직접 모니터링했을 때와 비교하면 무련 1,265%나 상승한 규모이다.

또한, 키워드 입력부터 영상물 검출까지 사람이 직접 했을 때는 평균 2시간이 소요됐던 것에 비해, AI 기술은 3분이 소요돼 검출시간이 97.5%가 단축돼 피해영상물 삭제 지원 역시 2배로 늘었다.

그러나 서울시에서 개발한 시스템이기에 이런 혜택은 '국민'이 아닌 '서울시민'만 받을 수 있다.  나는 서울시에 살고 있지 않다. 2023년 우리 지역 디지털성범죄물 삭제 지원은 0건이었다.

   

혁신의 시스템은 혁신의 제품만큼이나 삶의 질에 변화를 가져온다.

특정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혜택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할 혜택이 되어야 하며 디지털 성폭력뿐 아니라 자살유발정보 등 각종 청소년 유해 환경을 단속하고 차단하는데 기술적 적용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새로운 정책들 앞에 걸림돌이 된 말투인 '아직은...'도 변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한다.



어른의 말투

'아직은'에 하나 더 보태어 달라졌으면 하는 말투가 있다.

유니스트(UNIST) 정지범 교수는 한국인의 위험인식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중 하나로 국가에 대한 재난의 책임을 과도하게 부과한다는 것이다. 재난에 자발적인 예방과 대처방안을 강구하기보다는 정부의 정책에만 기대 정부에 책임을 전가시킨다는 것이다.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은 자발적인 시민의식의 형성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출처 : 도서 '실수하는 인간 되풀이 되는 재난')


범죄도 재난과 다르지 않다.  

삼삼오오 모여 쑥덕쑥덕하던 것을 이제는 SNS상으로 옮겨와 와글와글 거리며 정부의 미온적 대책을 탓하고 신속한 검거를 떼쓰듯 마구 부르짖는다.  

정부나 기관 또는 다른 누군가의 책임과 의무로 던지는 말투보다는 내 안에서 샘솟는 말투가 있었으면 한다.

내 아이가 공부를 가장 잘하는 방법이 자기 주도형 학습이듯 우리 사회가 가장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자기 주도적 예방(관심)과 대책 그리고 '그럼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물음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우린 이 해결법을 역사로부터 배웠고, 이미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우리DNA에 박여 있다.



어제 한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표지 '윤동주 시인의 판결문'이 새겨져 있었다.


                         "피고인 윤동주는 조선 독립을 위해 실력을 키우고

              조선인의 능력과 민족성을 향상시켜 독립운동의 소질을 배양해야 하며,

        일반 대중의 문화 아양과 민족의식의 유발에 힘써야 한다고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대동아전쟁 반발에 직면한 일본의 패배를 꿈꾸며 그 때 조선 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

                          이로 인해 일본이 망한다고 하는 신념을 굳게 하였다.


                                                 - 1944년 3월 31일 교토지방재판소 제2형사부 판결문 중에서      



따라서 나는, 이번 전쟁에서도 '우리의 미래를', '우리의 소년을' 지킬 것이라 의심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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