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행정법원 2014구합250판결) 학교폭력은 폭행, 명예훼손. 모욕 등에 한정하지 않고 이와 유사하거나 동질 한 행위로써 학생의 신체, 정신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 (2024 교육부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사소한 괴롭힘, 학생들이 장난이라고 여기는 행위도 학교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1. 편안하다와 두렵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놀렸다.
게이다 놀리고, 게임을 못한다 놀리고, 쭈쭈바를 먹는다 놀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배드민턴 수업이 있었다. 그날도 '배드민턴을 못한다' 놀림을 받았다.
놀림을 받은 친구는 갑자기 배드민턴 라켓으로 놀린 친구의 머리를 때렸다.
머리를 맞은 친구가 손으로 머리를 막았지만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그 손을 치우고 다시 배드민턴 라켓으로 친구의 머리를 여럿차례 때렸고 결국 머리가 찢어지는 상해를 입었다.
선생님이 오시고 맞은 친구는 병원으로 호송되어 갔다.
그리고 친구들이 몰려와 때린 친구에게 물었다.
"왜 때렸어?"
"응, 쟤는 말로 해서는 안돼. 맞아야 돼"
이 사건 이후로 같은 반 친구인 두 아이들은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서로를 향해 때리는 것도 놀리는 것도 없다.
놀림을 받던 친구는 이제'편안하다' 했고, 배드민턴 라켓으로 맞은 친구는 이제'두렵다' 했다.
2. 언어폭력과 신체폭력
배드민턴 라켓으로 때린 것은 명백한 신체폭력이기에 다툼의 여지없이 학교폭력으로 인정되었다.
'게이다.'라고 놀림받은 피해 주장에 대해서는 놀림받은 학생은 '자신을 향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라고 진술했고, 놀린 학생은 '친한 친구들끼리 장난치면서 한 말이지 그 학생에게 한 말이 아니다'라고 진술함으로써 서로의 진술이 엇갈려 사실확인이 불가능했다. 사실 확인이 불가한 이상 학교폭력의 인정여부는 따지지 않았다. '쭈쭈바를 먹는다. 게임을 못한다. 배드민턴을 못한다'고 말한 사실에 대해서는 양측의 주장이 똑같아 사실로 인정되었다. 하지만 학교폭력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심의위원들의 판단이 엇갈렸고 이 정도의 놀림은 학생들 간에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며 학교폭력 아닌 것에 다수가 손을 들어 다수결로 학교폭력 아님으로 결정되었다.
요즘 어딜 가든 누구와 만나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이야깃거리가 된다. 심지어 중학생 된 이후 수년째 독서와 거리두기 해 온 아들도 나와 통닭을 먹으면서 먼저 꺼낸 말이 "엄마는 채식주의자 읽었어?"였다.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러운 일이기에 누가 말하고 또 누가 말해도 그 자랑스러움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작가는 말한다. '문학의 혼령은 폭력의 반대 편에 서는 것'이라고, '자료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어떤 순간 그 순간들을 제가 따라서 경험하는 그런 방식으로 소설을 썼다'고
난 누구보다도 타고난 경찰관이라고 대놓고 자뻑(잘난 척, 자아도취의 신조어)하며 지금껏 살아왔다. 그런데 학교폭력 심의위원으로, 교권보호 심의위원으로 다니면서 나는 나의 경찰로서의 재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범죄영화에서 보면 주인공으로 나오는 형사는 증거를 따라 범인의 행동을 상상하고 당시 피해자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렇게 한 칸 한 칸 퍼즐 맞추듯 상황을 머릿속에서 재현하면서 합리적 의심 없는 사실로 범죄를 재구성해 나간다. 꼭 한강 작가가 소설 쓰는 방식을 닮아있다.
'자료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어떤 순간 그 순간들을 제가 따라서 경험하는 그런 방식으로'
'증거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어떤 순간 그 순간들을 제가 따라서 경험하는 그런 방식으로'
그렇게 형사는 자신이 아닌 '범인의 경험과 사고'로 실체적 진실을 밝혀간다.
경찰은 이런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나의 경험치에서 사건과 사람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경험치를 상상할 줄 아는 재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다시 학교폭력심의로 돌아와 글을 이어본다.
심의 위원 : "지금 어때?"
때린 학생 : "편안합니다."
심의 위원 : "왜 편안해?"
때린 학생 : "저는 다른 친구들의 시선을 받는 게 싫은데 더 이상 놀리지 않으니까 그 시선이 없어서요"
대개 학폭심의회에서의 가해학생의 모습은 위축되어 있다. 특히나 초등의 경우에는 울먹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이 학생은 편안하다는 자신의 말 그대로 편안하게 웃으며 대응했다. 심의회를 질의를 마치고 나가면서도 해맑게 인사하고 의자까지 단정히 정리하고 나갔다. 일반적으로 가해학생들이 두려워하는 자신의 조치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 보였고 이제는 더 이상 놀림받지 않는다는 안도감만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쟤는 맞아야 하는 얘'라는 식의 폭력의 탓을 더 이상 타인에게 돌리지 않았다. 대신 폭력을 행사한 것은 잘못된 행위임을 인정도 하고 사과도 하고 싶어 했다. 그 사과의 말이 처벌을 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폭력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폭력을 벗은 듯했다.
신체폭력은 찢기고 피가 나고 꿰맨 상황이 제출된 진단서에 고스란히 글자로 남아있었지만 다행히 상처가 잘 치료되어 흉터를 남기진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체 폭력으로부터 파생된 '두려움'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폭력이 아이에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날, 어른들은 신체폭력을 당한 아이의 마음도, 언어폭력을 당한 아이의 마음도 상상하지 못했고 그저 어른의 잣대와 법과 매뉴얼에 따라 판단해야만 했다.
3. 폭력 감수성
'사소한 괴롭힘', '장난이라고 여기는 행위'도 학교폭력이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인식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 우리 어른들은 과연 '폭력'에 대해 '분명하게'~ 알고 있는 걸까?
자식을 위해 고기를 먹이는 행위도 폭력일 수 있음을 노벨상을 받은 작가가 우리들에게 알려주기 이전에 우리가 과연 인식이나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무섭도록 어른을 닮아있고 사회를 닮아있다.
우리가 먼저 폭력이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반성할 때 그때서야 아이들의 학교폭력도 사그라들지 않을까 점쳐보며 가상의 학교폭력을 설정해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