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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모국경 Oct 26. 2024

편집된 꽃

생일잔치에 갔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왔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만큼이나 꽃바구니도 생각보다 많았다.

생일의  주인공은 그중 가장 탐스러운 꽃바구니 하나를 빈 손으로 축하장에 간 나의 손에 들려주었다.

사양하고 싶지 않았다.

물건에도 기운이 있다고 믿는 나에게 그날의 꽃은 단순히 아름답고 풍성한 꽃으로만 여겨지지 않았고 좋은 기운까지 함께 전해받는 것 같아 '고맙습니다.'하고 넙죽 받아 챙겨 왔다.


그렇게 이동한 꽃바구니를 우리 집 거실을 놓고 보니  향은 더욱 진하게 풍겼고 아름다움은 풍성했다.  '장미 너는  실로 꽃의 여왕답구나'~찬탄하며  평소 수국을 좋아했던 나의 마음에 잠시나마 외도가 찾아왔다.

하지만 외도답게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순수하지 못해서였을까? 곧장 꽃바구니의 꽃들이 편집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무리 장미 동산의 장미라 해도 꽃바구니의 꽃들처럼 색깔 맞혀 분별력 있게 모여 피어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꽃바구니 꽃은 최대한 아름다울 수 있도록  미적감각을 동원해 옹팡지게 모아 둔 편집된 꽃이었다.


사실과 다르게 편집하고 왜곡하는 건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쪽에 속한다.

하지만 아무도 꽃바구니의 편집된 꽃들에게 바람직하지 못하다 비난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최대한 멋지게 편집된 꽃을 선물 받길 원한다.

나는 꽃을 선물할 일이 있으면 한 송이라도 제대로 이쁘게 포장하는 꽃 가게를 찾는다.

얼마 전 회사 가까이서 급하게 산 선물용 꽃이 손재주 없는 플로리스트를 만나 꽃이 꽃답지 않게 변해버린 적이 있다. 새로 살 시간이 없었고 맘에 들지 않는 꽃을 그대로 선물했다. 아니나 다를까 꽃을 선물 받는 쪽의 반응 또한 "어머나 어쩜 이리 예쁜 꽃을~~~"하며 호들갑스러운 반응 따위는 없이 그저 의례적인 '고맙습니다.'에 그쳤다.

아름답도록 치장하는 일이 누군가를 더욱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그걸 두고 진실하지 못하다 비난대신 도리어 예의롭다 말하고 싶다.


그렇게 꽃으로부터 터득한(?) 편집의 선한 영향력이 사람의 생각도, 감정도, 그리고 그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말에도, 진실한 마음과 배치된  약간의 편집과 왜곡이 있다한들 그걸 가지고 정직하지 못하다 비난하지 않을 것 같아서... 도리어 인간에 대한 배려와 예의 같아서...

진실 속에 숨겨진 진실한 진실 같아서...


고2의 긴장감도 없이 늘어지게 늦잠 자는 아들에게

'해가 중천에 떴다'라는 진실된 날카로운 소리 대신에 '고기 구웠다'로 편집된 아부의 말로 휴일 아침 아들을 벌떡 일으켜본다.



양귀자 <모순> 300페이지에서 훔친 문장

'진실'은 좀 식혀서 마셔야 하는 뜨거운 국물과 같다. 그러므로 숱하게 썼다 지웠다 하는 글쓰기에나 담아야 어울리는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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