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시성의 쓸모는 도움이 되겠다는 진실함에 있다.
첩보는 느리고, 목마른 첩보였다.
나에게 닿는 첩보는 모두가 닷새나 엿새 전의 상황이었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듯이, 나는 적의 과거를 부술 수 없었고 미래의 적을 찌를 수 없었다.
나는 현재의 적만을, 목전의 적만을 부술 수 있었다.
적의 현재는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
<김훈 : 칼의 노래 289페이지 문장>
정확성을 추구하고자 때가 지난,
보고서의 쓸모가 상실된 보고를 하는 동료가 있었다. 몇 차례 개선을 요구했지만 오랜 습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동료에겐 적시성을 요구하는 일보다 다른 역할을 발견해 보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반대로
보고 받는 때의 적시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현장의 피드백에 대한 적시성이다.
관계성 범죄(가정폭력. 아동학대. 교제폭력. 스토킹) 신고에 대해서는 모니터링하여 현장 조치의 적합성에서부터 피해자보호까지 소홀함이 없었는지 피드백한다.
하지만 오늘은 휴일이다.
현장이 필요로 하는 적시성보다 나의 휴일이 먼저 보장받게 된다.
그렇게 휴일이 지나서야 때가 지난 피드백을 현장에게 한다.
이는 현장에게는 무의미함을 넘어 쓸모없는 잔소리가 된다. 방해물이 된다.
그러한 피드백의 유용성은
사후에 문제가 발생되거나 발견되었을 때
책임을 회피하는 근거가 되고
헛것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구조물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뿐이다.
결국 365일 24시간 일어나는 현장의 문제를
평일 9시에서 18시 사이 책상 위에서만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만 명확해진다.
임금은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는 갑옷을 벗을 날이 없었다.
그때 나는 임금의 언어와 울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김훈: 칼의 노래 188페이지 문장>
주말 차분히~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다.
내가 차분히~ 현장에 하는 피드백이 쓸모없는 '임금의 울음과 언어'와 무엇이 다를까?...
무엇이 달라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