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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모국경 May 07. 2023

사회적 약자, 단지 오늘까지만 아니었을 뿐

23년 4월 27일 서울에서는 '사회적 약자인 범죄피해자의 일상회복을 위한 공동 학술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발간된 자료에서 이 제목을 보는 순간

범죄피해자가 사회적 약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약자여서 범죄의 피해자가 된 것은 아니고.




난 과거 재난상황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사회적 약자'라는 말 대신 '재난약자'라 쓴다.

재난약자는 사회적 약자와 동일하게 여성, 아동, 노인, 장애인 등 재난에 취약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실제 약자는 아니었다.

그때, 내가 보고 느낀 건 '재난'이 상당히 비겁하고 저질이다는 거

그래서 약자 중에서도 대응조차 힘든 '가난한 자'들만 골라서 피해자로 만들었다는 거 

영화 '기생충'에서 비 오는 날의 풍경(?)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 그대로 보여줬다.

부잣집에서 비 오는 날은 '운치'지만 가난한 집은 '재난'이 된다.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이들 폭력의 대상자들도 재난의 대상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대사처럼 

"난 이래도 아무 일이 없고, 넌 그래도 아무 일이 없으니까".

"아무도 널 보호하지 않는다는 소리야, 동은야"

"경찰도, 학교도, 니 부모조차도"

"그걸 다섯 글자로 하면 뭐다?"

"사회적약자"

 

다시 말해

약자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래서 '약자'라는 단어 앞에  '사회적'이라는 말을 붙여 

사회가, 국가가,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무가 부여되었기 사회적 약자라 하는 것이다.  




이 날 행사에서 고려대 국제법연구센터 정동은 고문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의를 아래와 같이 서술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의는 현재까지도 명확히 확정하기에 어려운 사안입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볼 때 사회적 약자라 함은 경제적, 문화적, 신체적 특징으로 인해 사회의 주류 집단들로부터 차별받기 쉬운, 즉 그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경제의 발전 속도와 비교할 때 시민사회의 역할이 아직까지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아동의 인권 보호와 사회 통합에 있어서 관련 NGO 및 사회단체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 향후 진정한 선진국으로의 도약에 있어서 역시 중요하다고 봅니다.




각종 법령들을 살펴보면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국가나 자치단체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 규정들이 많다.

내가 의무 규정들이 '있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많다'라고 표현한 것은, 있는 것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서다. 충분히까지는 아니어도~ 완벽까지는 아니어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적으로는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다고 본다. 

다만, '~ 하여야 한다.'라는 의무 규정이지만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책임을 묻는 처벌 규정이나 지키지 않았을 경우 자치단체에 예산을 삭감한다는 등의 제재 규정이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할 수 있다'는 재량 규정에 대해선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설치해 달라 강력히 외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교통안전을 위해 속도를 조금만 초과해도 기계가 알아서 자동적으로 범칙금을 발부하고

잠시 주차만 위반해도 단속 카메라가 척척 알아서 찍어주고 과태료를 발부하는데 

이렇게 한 개인의 책무도 성실히 이행토록 법이 잘 마련되어 있는데

국가의 책무에 대해선 아무도 따져 묻지도 않고 벌하지도 않는다. 



왜 아무도 따져 묻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다.

내가 찾은 답은  '나는 범죄 피해자도, 사회적 약자도 아니니까'였다.

앞서 말했듯이 사회가 보호하겠다 해서 사회적 약자라 규정해 두고선 

'나는 아니야'라는 무의식 속에서  살았다.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작동하지 않는 이상 우리들의 무의식적 외면은 어쩌면 당연했다. 

나 역시도 아픔이 없었다면, 업무를 담당하지 않았다면,  '의식'을 깨우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챗봇은 알았다.

'내 일 아니야' 하고 내가 챗봇에게 물었을 때 

챗봇은 답했다.

'내 일은 아니지만 내일 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고


미래사회는 AI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내 '일자리' 빼앗기는 것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내가 진정 빼앗기지 말아야 할 인간성, 그 상실을 어쩌면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사랑하는 누군가는

범죄 피해자도 사회적 약자도 될 수 있다.

단지 오늘까지만 아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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