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설가의 밤

by 소설가 서기주

아무도 큰소리로 웃지 않는 저녁이었다. 회색 커튼이 벽을 만들고 그 위에 녹색 배너가 물결처럼 걸렸다. 난 분화가 보랏빛 점을 찍었고, 흰 연단 앞에 마이크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의자들은 검은 마침표처럼 줄지어 있었다. 나는 작가포럼 국제협력팀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가방엔 영문 초청장과 되돌아온 회신, 번역해야 할 메일이 섞여 있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나는 내 직함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되뇌일수록 외로움과 초라함이 짙어졌다.

1부가 시작되자 회장이 무대에 섰다. “소설가는 가난합니다. 장편은 1년을 써도 자비로 책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이 끝나자 앞줄의 원로 작가 한 분이 몸을 가누며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옆의 딸이 등을 살짝 받쳤다. 마른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나는 진행 스태프에게 눈짓했다. “잠깐만요. 1부 끝나면 안내해 드릴게요.” 퇴장하려던 자세가 멈췄고, 딸은 작은 미소를 남겼다. 그 미소가 오래 남았다. 누군가는 “소설가는 빨리 죽는다”라고도 했다. 종교인이나 정치인보다 먼저 지치는 직업이라고.


간식 시간에 내빈 소개와 떡 케이크 커팅이 있었다. 칼날이 흰 떡을 가르자 얇은 김이 올랐다. 박수 사이로 이 선배가 낮게 말했다. “한국문협 회원이 1만 6천 명이래. 열 개 분야로 나뉘어 있는데, 소설가 모임은 많지 않아.” 그의 말은 통계처럼 들렸지만, 내 귀에는 ‘우리는 흩어져 있다’는 문장만 선명했다. 흩어진 사람을 이어 주는 건 결국 이야기뿐인데, 그 이야기를 쓰는 우리가 왜 이토록 입을 다물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홀의 공기가 달라진 건 낭독극 때였다. 배우가 문장을 읽을수록 커튼 주름 사이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말로 붙잡히지 않는 것, 설명을 거부하는 실재가 연단 앞 떨림으로 드러나는 듯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형식이 없으면 내용도 없고, 내용이 없으면 형식은 빈 장식이라 배웠지만, 그날은 배너와 꽃, 리본 같은 ‘색’이 오히려 ‘공’의 길잡이로 보였다. 의례가 비워 놓은 자리에 문장이 흘러들었다. “편견이다. 집착하지 마라.” 속삭임이 귓가를 스쳤다. 상과 직함, 서열과 사진의 순서, 박수의 길이에 집착하는 순간 실재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고.


2부는 제9회 ‘아름다운 소설가상’ 시상식이었다. 사회자가 이름을 불렀고 김 선배가 무대로 올랐다. 꽃다발이 어깨를 덮었다. 상금 삼백만 원의 봉투가 건너갔고, 제자들이 일어나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가 공중에 따옴표를 만들었다. “스승님, 여기 한 번만 더요!” 사진 속 그는 스승이었고, 상 위에서는 수상자였고, 무대 아래에서는 다시 한 명의 소설가였다. 수상소감은 짧았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도 문장을 포기하지 않은 제자들에게 고맙습니다. 저는 오늘도 빈 페이지 앞에서 졸았습니다. 졸지 않으려 더 사랑하겠습니다.” 박수가 이어졌다. 나는 공자의 말을 떠올렸다. 인불지이불온, 군자호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고, 좋아함으로 공부를 잇는 마음. 오늘의 무대가 그 말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런데도 인정욕구는 남아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자 마음의 바닥에서 작은 수치가 발끝을 건드렸다. 등단 뒤 첫 책을 냈을 때의 초라함이 떠올랐다. “너의 자존심은 체면이냐, 경계냐.”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흐렸다. 체면은 남이 만든 껍질이고, 자만은 내가 부풀린 그림자였다. 나는 자주 그 둘을 섞어 들고 다녔다. 오늘은 그것을 구분해야 했다. 건강한 자기존중은 문장을 지키는 경계였고, 체면은 사진 속 미소의 각도였다. 자의식은 그 둘을 비교해 불안을 만들었다. 상처받기 쉬운 체면으로 자존을 오해하지 말자는 문장이 마음속에서 또렷해졌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아까의 원로 작가가 딸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일어섰다. 딸은 거듭 인사를 건넸고, 나는 복도까지 따라 나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원로 작가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오늘 낭독, 좋았어요. 오래된 문장이 오늘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 살더군요.”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라고 말하자 딸이 미소 지었다. 그 뒷모습이 문장처럼 조용히 닫혔다.


홀은 금세 비었다. 끝자리 테이블에 떡 몇 조각과 일회용 컵, 구겨진 프로그램 북이 남았다. 나는 의자를 밀어 넣고 쓰레기 봉투를 묶었다. 일을 마치자 고요가 들렸다. 실재의 기척은 이런 뒤처리에서 더 가까웠다. 공은 빈 공간이 아니라 비워 내는 행위라는 것을 손이 먼저 이해했다. 폰으로 홀을 찍었지만, 사진 속 홀은 내가 방금 본 홀과 달랐다. 냄새도 온기도 없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찍힌 것이 곧 비어 있고, 비어 있음이 곧 다시 찍힌다. 글쓰기는 그 두 세계를 왕복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밖으로 나오니 초겨울 공기가 목에 얇게 걸렸다.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광고판은 새 책을 약속했다. 나무들은 잎을 덜어 내는 중이었다. 나는 작은 공책을 꺼내 오늘의 자존을 점검하기 위해 세 문장을 적었다.


내가 지금 지키려는 건 가치/경계인가, 이미지/평판인가.


내 주장에 타인에 대한 존중이 남아 있는가—단호하되 무례하지 않게.


증명하려 들기보다 표현하고 협의하는 데 에너지를 쓰고 있는가.


세 문장을 쓰고 나니 허기가 가셨다. 나는 누군가의 상을 축하했고, 누군가의 퇴장을 붙들었고, 누군가의 문장을 다시 들었다. 그 사이사이 나의 편견을 조금씩 비워 냈다. 집착은 다시 오겠지만 비워 내는 법을 알게 된 사람은 덜 흔들린다.


홀의 불이 꺼지고 유리문에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나는 낮게 말했다. “자존심은 체면이 아니라 문장을 지키는 경계다.” 그리고 주머니 속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쓰지 못한 첫 문장의 방향을 마음속으로 몇 번 더 고쳤다. 비워야 채워지는 밤, 내가 갈 곳은 집이 아니라 책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