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놀이

by 소설가 서기주

송씨는 단풍이 절정인 가을 어느 날, 오리털 패딩 점퍼를 입은 채 지하철 안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어디론가 가는 중이지만, 목적지는 뚜렷하지 않았다.

옆 좌석에는 네 명의 중년 부인들이 앉아 소곤거리고 있었다. 단풍놀이를 가는 모양이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들뜬 기운이 섞여 있었다. 지하철 객실 안은 한가로웠다. 일터로 향하는 사람, 놀러 가는 사람, 각자의 사정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송씨는 잠시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앞줄에 앉은 일곱 명 남짓의 승객들이 일제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자기만의 화면 속으로 빠져 있었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이런 날, 나도 단풍놀이를 갈 수 있을까?’

하지만 함께 갈 친구가 없다. 어디가 좋은지, 어디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젊었을 적엔 관광버스며 기차를 타고 단체로 여행을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함께 가자는 사람도, 막걸리 한잔 나누자는 친구도 없다.


“밥 한번 먹자.”

한때는 그런 말을 주고받던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언제 한번 보자’며 대충 웃고 넘겼다. 결국 그런 빈말조차 주고받을 사람이 사라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자존심이 문제였다.

술자리를 ‘쓸데없는 일’이라 치부하며 멀리했던 자신. 이제는 외로울 때 불러줄 이 하나 없는 자신.

그는 스스로를 외톨이로 만들어왔다.


송씨는 요즘 종종 생각한다.

‘그래, 의형제가 필요하다.’

삼국지의 유비·관우·장비는 도원결의를 맺고 “비록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는 날은 함께하자”고 맹세했다. 그 의리로 천하를 얻었다.

거리의 건달들이나 조직폭력배들 역시 목숨을 걸고 형제를 맺는다. 세상은 그처럼 뭉친 자들이 움직인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송씨는 안다. 세상은 결국 무리를 이루는 자의 것이다. 함께 힘을 모으고, 이익을 나누며, 세력을 만드는 자들이 성공한다.

그는 젊어서는 그런 것을 무시했다. 알량한 자존심 하나로, 사람들과 어울리길 거부했다. 그러나 이제야 깨닫는다.

그 무리 속에서 나누는 말 한마디, 술 한잔이 사실은 세상을 지탱하는 ‘관계의 기술’이었다는 것을.


지하철이 터널을 빠져나오자 창문 밖으로 붉은 단풍이 스쳤다.

순간, 송씨는 핸드폰을 끄고 눈을 감았다.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엔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