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강당 한가운데서 대통령과 참모들이 파란 배경 아래 업무보고를 진행한다. 그 주변은 ㄷ자 형태의 회의 테이블이 감싸고, 정장 차림의 참석자들이 빽빽하게 둘러앉아 있다. 화면 밖의 사람들은 말한다. “공공기관의 방만함과 업무 파악도 못 하는 지도자들을 국민이 목격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행사다.”
그런데 저 장면이 낯설지 않다. 대통령의 업무보고나 동네에서 매달 하는 업무보고나, 근본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 살림과 동네 살림은 규모로 비교할 수 없지만, 항아리든 종지든 담긴 물을 흘리지 말아야 한다는 원리는 같다.
문득 상상해 본다. 우리 동네 자치회의나 아파트 동대표 회의를 주민들에게 생중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부끄럽고 창피하다.
젊은 시절, 나는 초급간부로 있을 때 서무계장으로 지겹도록 업무보고를 맡았다. 살림이 싫으면 접시를 깨뜨리고 주방을 떠나면 된다고들 했지만, 나는 뜨거운 불과 매캐한 연기를 견디며 질기게 버텼다. 그 덕분에 직무교육기관의 교수가 되었고, 정년퇴직한 지금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약장사처럼 강의를 이어 간다. 이게 잘하는 짓인지, 쓸데없는 짓인지 나조차 헷갈린다.
그래도 퇴직 뒤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동네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한다.
며칠 전에는 동네 아동보호기관 회의에 위원으로 참석했다. 의무적으로 앉아 있다가 준비된 회의서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소꿉장난처럼 보이는 작은 조직이든, 거대한 대학교 같은 교육기관이든 기획하고 선발하고 교육하고 평가하는 절차는 결국 같은 원리로 굴러간다. 여선생님 한 분이 두툼한 회의서류를 꼼꼼하게 작성해 두었다. 얼핏 보아도 며칠을 붙들고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젊은 시절 서무 업무가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질문 한마디 하지 못했다. 공연히 물어보면 실례가 될 것 같았다. 동네에서 벌어지는 회의는 대개 그렇게 지나간다. 살펴보기만 하고, 고개만 끄덕이고, 다 알겠다는 듯 넘어간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업무보고를 보면서, 요즘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업무보고 자리에서 내가 했던 행동들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보고’는 늘 거기에 있는데, 정작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