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윷놀이 대회

by 소설가 서기주


마룻바닥에 떨어진 윷가락이 나무를 긁는 소리를 짧게 남겼다.

사람들의 숨이 한순간 얇아졌다. 겨울 외투에서 배어 나온 먼지 냄새와 체온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눈빛들이 조용히 바닥 위로 쏠렸다.


정월 대보름날, 무악동 윷놀이 대회였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한 판씩 윷을 굴렸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를 잘 모른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같은 라인 사람들 정도만 얼굴을 익힌다. 예전 농촌 마을에서처럼 이웃의 집안 사정을 훤히 아는 풍속은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밤새 편히 주무셨어요?”

“아, 통장님. 오늘 고생이 많네요.”

무악동 노인회 김회장은 통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통장은 마을 어른들에게 늘 예의가 바르다.

“동네 아이들 보시면 좋으시죠.”

“그럼요.”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모여들었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윷판을 벌였다. 낯선 이웃들 사이에서도 어머니를 중심으로 모인 가족의 풍경은 오래된 정겨움을 남겼다.


“회장님, 모다아아!”

김회장이 윷가락을 굴리자 말판 앞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제길할! 윷가락은 만세하듯 가슴 위로 던져야지. 여기가 볼링장인가?”

상대편에서 불만이 튀어나왔다.

“말이야 막걸리야.”

승부에 집착하자 분위기가 거칠어졌다.

‘이런, 소인배들.’

김회장은 이마를 찌푸렸다.

함부로 반말을 내뱉는 것도 거슬렸고, 쌍소리를 들으며 어울려야 하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대보름날이니 동네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이번 지방선거에 시의원으로 출마하려 합니다.”

무악동 구의원이 명함을 건네며 인사했다.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라 말투가 한결 편안했다.

“안녕하세요. 종로구 구의원 후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곱게 차려입은 여성 후보자는 밝은 미소로 명함을 내밀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은 자연스럽게 존대말이 되었다.

우리나라 말은 말투를 보면 관계가 보인다.

김회장은 동네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행사마다 내빈 소개 인사를 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동장을 비롯한 마을 지도자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정치인들은 경쟁하듯 얼굴을 비춘다. 그 사이로 선거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58번!”

“여기요!”

“저기 회장님께서 행운권 추첨에 당첨되셨습니다.”

부녀회가 준비한 점심에는 돼지머리고기와 장수막걸리가 나왔다. 마지막에는 기념 타월을 받았다. 거기에 행운권까지 당첨되었다.

정월 대보름날, 운수대통이었다.

이런 행운이 올 한 해 내내 이어지기를 김회장은 조용히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