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광화문 한글 현판 공개

by 소설가 서기주

삼일절 아침이었다.

경복궁 처마 아래 검은 천 위에서 금빛 ‘광화문’ 세 글자가 바람 속에서 조금씩 흔들렸다. 현수막이 스치는 소리가 낮게 울렸고 사람들은 두터운 외투 속에서 숨을 고르며 서 있었다.

“국회의원 ○○○님께서 참석했습니다.”

박수 소리가 일어나자 몇몇 국회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한글학회 이사장과 지역 회장들의 이름이 차례로 불렸다.

“종로구 무악동 자치위원장님께서 참석했습니다.”

남자는 두 손을 들어 인사했다. 세종마을 회장의 부탁을 받고 주민 대표로 이 자리에 서 있었다.

남자는 문득 생각했다.

자기 집 문패도 없는 사람이 경복궁의 문패를 한글로 달자고 이 자리에 서 있다.

행사장 한쪽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명함을 돌리고 있었다. 남자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집 대문에는 작은 문패가 달려 있었다. 서울 변두리의 낡은 집이었지만 이름은 또렷했다.

그러나 그는 서울 한복판에서 살면서도 문패를 달지 않았다.

그가 평생 문패를 달아본 것은 단 한 번이었다.

공무원 교육기관에서 근무하던 시절, 정부기관 지방 이전으로 십 년 동안 주말부부로 살았다. 그때 교수 연구실 문 앞에 작은 문패가 걸렸다.

그 방 안에서는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의 이름만 존재했다.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자.”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정문에 한글을 걸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광화문 현판은 오래도록 바뀌어 왔다.

한문이 되기도 했고 한글이 되기도 했다. 흰 바탕이 되기도 했고 검은 바탕이 되기도 했다.

남자는 생각했다.

언어도 권력이다.

힘이 바뀌면 글자도 바뀐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한글을 천하게 여겼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영어 간판을 더 좋아한다. 상점의 이름도 상품의 이름도 대부분 영어다.

그래도 남자는 자랑스러웠다.

광화문에 한글 현판이 걸린다는 것은 이 나라 말이 스스로 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부에서는 한자와 한글 두 개의 현판을 함께 만들 예정입니다.”

누군가가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통과 현실을 함께 세우는 일.

둘을 함께 세우는 길.

그것이 중용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남자는 다시 광화문을 올려다보았다.

자기 집에는 문패가 없지만

오늘 이 나라의 대문에는

한글이라는 이름이 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