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상 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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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눈보라가 흩날렸다. 바람은 살을 에듯 매서웠다. 독립공원 언덕 위, 서재필 동상이 그 바람을 묵묵히 맞고 서 있었다. 동상은 세월을 품은 채 의연했다. 독립협회를 이끌었던 그의 삶처럼,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서재필은 조선의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한 사대부였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서양의 기독교 정신을 받아들여 조국의 근대화를 꿈꿨고, 미국 시민권을 얻어 미국 의회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았다. 워싱턴 D.C.에는 한국인 최초로 그의 동상이 세워졌으며, 한국 정부는 건국훈장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모셨다.
남자는 눈발 속에서 동상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동상에 꽂혀 흔들리지 않았다. 서재필은 남자에게 단순한 역사 속 인물이 아니었다. 마치 집안의 큰 어른 같았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동서양의 길을 고루 품었던 사람. 그는 그 삶을 존경했다.
남자의 몸은 축 처져 있었다. 며칠 전부터 목이 따갑고 기침이 잦았다. 머리도 무겁게 지끈거렸다. 설 명절이 끝난 뒤 몸살에 쓰러지는 아낙네들처럼, 남자의 몸도 긴장과 피로에 짓눌려 있었다. 몇 달 전 그는 독립문역 근처의 작은 아파트를 계약했다. 지금보다 평수가 더 좁았다. 정년퇴직 후 생활비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계약부터 이사까지 매 순간이 조마조마했다. 눈은 침침하고 기억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처리해야 하는 절차가 버거웠다.
“왜 그렇게 걱정만 해요?”
아내는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은행과 법무사가 알아서 처리할 일을 괜한 걱정으로 부풀린다고 나무랐다.
“조심해야지. 잘못되면 내가 다 떠안아야 하잖아. 이 나이에 사고라도 나면 얼마나 비참한 꼴이 되겠어.”
남자는 TV 뉴스에서 본 다세대주택 사기 사건을 떠올렸다. 자신이 그런 피해를 감당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리고 이 나이에 가장 큰돈이 오가는 중요한 일이잖아. 걱정이 없겠어?”
그는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바쁜 아내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아내는 대꾸하지 않고 짐을 정리하며 던지듯 말했다.
“신발장에 안 쓰는 물건들 좀 정리해요.”
이번 이사는 평수를 더 줄이려는 결정이었다. 지난번에도 방 하나를 줄였는데 이번에는 그보다도 좁았다. 아파트는 무려 25%나 작아졌다. 피아노, 골프채, 화분 같은 큰 물건은 물론이고 평생 품어온 전공 서적과 논문 자료까지 버려야 했다. 물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버릴지 말지 망설였지만, 결국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차마 옷장과 신발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뤘다.
“2~3년 안 쓴 물건은 과감히 버려요.”
아내는 단호했다. 알뜰한 성격이었지만 남자만큼은 아니었다. 남자는 물건을 쉽게 버릴 수 없었다. 40년 전 형이 일본에서 보내준 니콘 카메라, 동생이 미국에서 보내준 프린스 테니스 라켓, 이웃이 건넨 성모상까지… 그의 손길이 닿은 물건들은 기억이었다. 남자는 그 기억들을 놓지 못한 채 오래도록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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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옮겨 가는 이사였다. 그러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사는 물건을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삶의 무게와 기억을 옮기는 일이었다. 이사 날짜를 정하는 순간부터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니, 이 집에 은행 대출금이 이렇게 많아?”
남자는 등기부 등본을 받아 들고 눈을 크게 떴다. 손끝이 떨렸다.
“요즘 은행 대출 없는 아파트가 어딨어요.”
부동산 직원은 무심하게 말했다. 마치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잔금 치르고 집주인이 은행 빚을 갚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지 마세요. 계약서가 있잖아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잘못되면 법원으로 가야겠지… 그거참.”
그는 이미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전 재산을 잃고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의 사연이었다. 정년퇴직한 자신에게 이 아파트는 전부였다. 요즘은 다세대주택에서 은행 대출금으로 집값이 깡통이 되어버리는 일이 흔했다.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경매로 쫓겨나는 안타까운 소식이 연일 들려왔다.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모든 일을 신중히 살피고 조심스레 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형님은 이 동네가 좋은가 봐요. 여길 벗어나지 않으시니….”
동생의 말에 남자는 짧게 웃었다.
“이 동네가 인왕산 명당이야. 풍수지리에서 양택지라고 하지.”
남자는 독립문 근처가 좋았다. 인왕산 자락이라 공기가 맑고, 공원이 많아 걷기 좋은 둘레길도 많았다. 지하철역과도 가까워 오가기도 편했다.
“이 집은 햇볕이 잘 들어서 좋아요. 게다가 독립공원까지 바라볼 수 있잖아.”
남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독립공원에 우리 집안 어른 서재필 박사가 계시니 더더욱 좋지.”
“저도 서재필 박사를 존경합니다.”
“그분은 북촌에서 살았어. 종로구 재동이라고 하지.”
남자의 기억이 북촌으로 향했다. 조선 후기의 지식인들이 모여 살던 곳.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의 손자 우의정 박규수를 중심으로, 담 너머로는 영의정의 아들 홍영식, 그리고 갑신정변의 주역들인 김옥균과 서재필, 서광범이 이웃해 살았다. 이들은 모두 양반가 자제들이었지만, 조선 최초로 부르주아 혁명을 일으킨 개화파였다.
“그 사람들, 결국 삼일천하 아니었습니까?”
동생이 묻자 남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
“준비가 부족했지. 조금만 더 치밀했더라면… 조선을 입헌주의 국가로 개화시킬 수 있었을 텐데. 일본처럼 근대화를 이룰 기회였어.”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은 그들에게 참혹한 비극을 안겼다. 서재필의 가족은 역적으로 몰려 부모와 형, 아내는 음독자살했고, 동생은 참형을 당했다. 두 살 된 아들은 굶어 죽었다. 그 잔혹한 운명을 떠올리며 남자는 다시 다짐했다.
‘모든 일은 신중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준비가 끝난 뒤에야 발을 내딛는 거야.’
남자는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인생의 길 위에, 바람결처럼 스며드는 그 다짐은 오래도록 그를 붙들었다.
*
독립공원 곁 남동향 아파트. 이사 온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남자는 서재 발코니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고 놀랐다.
“와… 여기까지 햇볕이 들어오네.”
그는 두 손을 벌려 환한 빛을 맞았다. 그동안 집 안은 뒤죽박죽이었다. 가구며 살림살이가 마구 뒤섞여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삿짐센터가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상자들은 집 안 구석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형님,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우리 집도 이삿짐 정리하는 데 두 달은 걸렸어요.”
동생의 전화 위로가 건너왔다. 그러나 남자는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에게 맡기고 있었다. 매일 늘어만 가는 물건들을 바라보다가 결국 양쪽 발코니에 창고 문을 달았다. 그리고 선반 열댓 개를 벽에 만들었다. 그제야 집안은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흐린 날이 이어지더니, 이날은 오랜만에 맑았다. 남자는 발코니에 서서 따사로운 햇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마음속이 환하게 열리는 듯했다. 그때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이리 와서 성모상을 좀 보세요.”
남자는 거실로 나가고는 숨을 멈추었다. 거실장 위에 올려둔 성모상 위로 무지갯빛 아우라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햇살이 마치 성모를 감싸듯 빛났다.
“세상에… 성모상에 아우라가…”
그는 경이로움에 말을 잃었다. 마치 묵은 걱정과 근심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작은 축복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며칠 뒤, 집을 찾아온 동생도 성모상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형님, 이건 정말 축복이에요. 형님께 내리는 기적 같아요.”
남자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젠 근심 내려놓고 감사하며 살아야지.”
그는 지난날을 떠올렸다. 늘 조심스러웠다. 작은 일에도 불안해했고 쉽게 나서지 못했다. 그만큼 신중했다. 남자가 처음 이 동네로 이사 온 것은 10여 년 전이었다. 새 아파트로 처음 입주하던 날 밤, 그는 꿈에서 호랑이를 보았다. 나중에 주역을 공부하면서 알았다. 그것이 ‘이호미 부질인’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호랑이 꼬리를 밟고도 물리지 않으려면 조심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지난 10년 동안 그의 삶을 지탱해 주었다.
그리고 이번 이사는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성모상에 비친 아우라는 축복이자 새로운 길의 표식처럼 다가왔다. 꿈속에서 무의식으로 깨달았던 진리를 이번에는 눈앞에서 직접 마주한 셈이었다. 남자는 마치 성리학의 길에서 시작해 기독교의 세계로 이어지는 긴 여정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신은 저기 서재필 박사님을 꼭 닮았어요.”
아내는 집 앞 독립공원을 지날 때마다 그렇게 말했다. 남자는 능청스레 웃곤 했다.
“그래, 재필이 형은 우리 형님이야.”
서재필은 남자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조선시대 거의 마지막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를 한 인물.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시민권을 얻고 미국 의회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은 인물.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려 했던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가족은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서 다시 시작했고, 끝내 한국의 근대화를 위해 큰 발자취를 남겼다.
남자는 중용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한쪽으로만 치우쳐선 안 돼.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배울 점이 있고, 고칠 점도 있지.”
그는 중용 제6장을 마음에 새겼다.
“양쪽 극단과도 손을 잡고 소통해야 한다.”
이번 이사는 단순히 집을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꿈속의 호랑이와 눈앞의 아우라는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그것은 지난 세월을 조심스럽게 살아온 자신에게 건네는 다짐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표식 같았다. 남자는 서재필 박사의 정신을 떠올렸다. 균형을 잃지 않는 삶, 흔들리지 않고 한 걸음씩 꾸준히 내딛는 삶.
햇살이 가득한 서재에서 그는 성모상을 바라보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경외와 평안이 차올랐다. 그의 새로운 삶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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