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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클레어 Oct 10. 2024

리프트 힐의 구간에 있습니다.

수술 대기실에서 후회를 하는 중.

나는 롤러코스터를 좋아한다.

쫄보지만 스릴을 즐긴다.

많은 사람들은 버티컬 루프, 수직 낙하, 90도 이상 낙하, 스피드 힐, 탑햇 등을 스릴 있는 구간으로 선택한다.

나도 스릴 넘치는 이 구간들을 좋아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스릴 있는 구간은 ‘리프트 힐’이다.

열차가 소리를 내며 레일을 올라가는 그 순간, 그리고 언덕 부근에서 “딸깍”소리를 내는 그 순간이 가장 스릴 있다.

난 리프트 힐 구간을 가장 좋아하지만 가장 무서워한다.


아이의 코로나 소식을 들으니 잠을 잘 수 없었다.

저녁에 간호사는 오전 11시쯤 수술실에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암 수술을 받는 나를 더 걱정해야 하는데, 코로나에 걸린 아이의 고열이 더 걱정됐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의 모성애에 대해 의심했던 것이 허무할 정도였다.

아이 걱정으로 잠을 설쳤다,


병원의 아침은 이른 새벽에 시작된다.

간호사가 와서 환자들을 확인하고 약을 주고 수술 스케줄을 말해준다.

“오늘 수술이에요. 금식하고 계속하고 계시고 마음 편하게 계세요.”

수술을 앞둔 나는 금식과 마음의 준비만 필요했다.

불안과 우울함을 티브이, 인스타그램, 유튜브로 달래고 싶었지만 달래 지지 않았다.

아이가 코로나를 잘 이겨내기를, 수술이 잘 끝나기를 기도하며 불안감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대부분 대학 병원 지하에는 천주교, 불교, 기독교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되고 나니 그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나약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아이가 열이 떨어지고 코로나를 잘 이겨낼 수 있게 해 주세요. 수술 잘 끝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아멘.’


오전 9시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고열로 고생하던 아이의 열이 떨어지고 컨디션도 돌아오고 있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코로나에 걸린 아이가 잘 이겨내고 있다니 잘 버텨낸 아이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다행이야~혹시 모르니 해열제 대기하고 있어. 오빠도 해열제 먹고 몸 잘 챙겨.”

아이 걱정이 없어지니 내 수술에 대한 걱정이 밀물 밀려오듯 밀려왔다.

“난 진짜 어른이다. 와~ 대박! 혼자 이걸 견디네. 거지 같은 상황을 이겨내는 걸 보니 멋있군. “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불안감을 잠재우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곧 수술실로 들어갈 것 같아요. 화장실 다녀오세요. 10분 뒤에 다시 올게요.”

간호사는 곧 수술실에 갈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수술실 들어가기 전 보호자는 15~20분 정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난 엄마고 어른이다.

칭얼거리는 건 애송이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날 다독였다.

코로나에 걸린 남편 대신 온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곧 수술실 들어간데. 걱정 말고 있어.”

“딸~엄마 지금 대기실이야. 아빠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딸~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생각해.”

난 애송이가 아니라고 엄마이고 어른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는데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핑 돌았다.

쎈 척하고 있었는데 엄마 목소리에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울고 싶었다.

그런데 울어서 해결되지 않았기에 또 참았다.

남편에게도 전화를 했다.

“나 곧 수술실에 들어가.”

“잘하고 와. 아이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너 걱정만 해.”

‘한 생명을 세상에 나오게 했으니 책임감이 막중하더라고. 그래서 내 걱정만 할 수 없어.’

수술을 잘 끝내고 회복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막중한 이유가 아이 때문이었다.

무책임하면 나라고 생각했는데 육아와 암수술이 날 재평가하게 만들었다.

난 책임감 하나 끝내준다.


30분 후 나는 수술실 이동침대에 옮겨져 수술실로 들어갔다.

엄마와도 잠깐 인사했다.

“엄마~잘하고 올게.”

수술실로 들어갔지만 바로 수술실에 들어가는 건 아니었다.

수술 대기실에 우선 옮겨져 확인을 하고 대기실에서 누워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난 아침에 수술이었는데 수술실에는 창문이 없고 창문이 없으니 햇빛이 없다.

햇빛에 중요성을 수술 대기실에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수술 대기실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띠~띠~” 이 소리만 들릴뿐 다른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환자에게 불안감을 주는 가장 큰 소음은 아마 저 기계소리라고 확신했다.

이동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왜 안 들어가지?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나?’


대기하는 동안 나에 대해 생각했다.

플러스 아이를 생각했다.

‘혹시 수술이 잘못돼서 죽으면 여기서 삶이 끝이네.’

‘내가 죽으면 슬퍼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내가 죽으면 아이는 잘 클 수 있을까?‘

‘내가 없으면 누가 아이를 잘 키우지?’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 나는 화를 많이 냈구나. 왜 그랬지?‘

‘난 뭐 하고 살았던 걸까? 왜 열심히 살지 않았지? 노력은 했는데. 결과가 없네.‘

후회만 가득했다.

“이제 수술실에 들어가실게요.”

“네~”


 수술 대기실에서 들었던 마지막 생각은

‘난 진짜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났어. 50년 전에 태어났으면 바로 죽은 목숨이었잖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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